레니 에이브러햄슨 감독. 룸
모든 것을 경험할 수는 없다
모든 곳을 가볼 수도 없고
모든 음식을 먹어볼 수도
모든 사람과 만나볼 수도
모든 음악을 들어볼 수도
모든 영화를 관람할 수도
모든 책을 읽어보거나
모든 꽃을 맡아볼 수도
없다
불행의 시작점이다
애초 없는 것을
가능하지 않은 것을
탐하려는 마음이
현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하지만,
없는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
완전이나 완벽은 도달할 수 없음을
전제로 두고 만든 개념일 뿐
인간의 삶은 적정한 수준이라는 게 있다.
자신도 타인도 다치지 않는 선 안에서 누릴 수 있는
자유, 권리, 행복, 여유, 다양한 감정과
관계에서 비롯되는 부수적이지만 간과할 수 없는
조각들.
기본.
기본을 갖추기로 인류는 법제화시켰다.
기본을 갖추는 것이
인간다운 삶을 사는 것이며
그것이 세상을 돌아가게 하고
미래를 대비하고 현재를 가능하게 한다고
강력한 의지를 보였다.
이것이 모두가 사는 길이라고.
이것을 방해하는 것은 곧 모두의 합의를 깨는 길이고
법과 처벌로 다스릴 부분이라고.
기본의 영역에 놓여있지 않는다면 비교되었고
자신의 삶이 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쉽게 깨달을 수 있었으며
그렇게 채워지지 않는 갈증을 안고 살아가야 했다.
처음부터 없었으면
불편함도 느끼지 못할 거라는 인식은
인간의 감각기능을 과소평가한 부분이다.
인간은 눈을 뜬 순간부터
손에 닿는 모든 것에 자신을 적용시킨다.
자신의 관점 안에 환경을 배치한다.
잭에게 룸은 전부였다.
창이 없는 벽
작은 유리가 끼워진 천장
침대 하나
의자 두 개
세면대와 변기
좁은 옷장과 작은 식탁
하지만
이 모든 것을 합친 것보다
훨씬 크고 사랑스러운
전부보다 더 전부인
엄마
잭은 그곳에서 5년을 지냈다.
10대 때 납치된 엄마가 7년을 감금된 곳이었다.
어디로도 나가지 못 했다.
최소한의 생필품은 밖에서 안으로 전달되었다.
비밀번호는 영영 알 수 없을 것만 같았다.
잭은 그곳에서 단어를 익히고
티비를 보며, 오직 상상력에 의지한 채
자신의 삶을 진전시킨다.
벽과 천장, 침대로 이뤄진
세상, 룸
엄마는 말과 글을 깨우쳐 가고
사고가 확장되어 가는 잭에게
다른 삶을 선물하기로 한다.
죽음을 연기하며 바깥으로의 이탈을 시도한다.
잭이 '진짜' 하늘과 처음 마주한 순간,
잭은 자신이 무엇을 몰랐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룸의 세상과 룸 속의 티비 속 세상과
목숨을 걸고 도망쳐 나온 바깥세상이
얼마나 달랐는지 그리고 이 설렘과 기대와 두려움을
공유하고 해소할 사람을 다급히 찾는다.
엄마
엄마가 있어야 했다.
룸 속에서 그랬듯
처음의 세상에서 그랬듯
엄마가 함께 곁에 있어야 했다.
엄마가 잭을 살려 내보냈듯
잭도 엄마를 죽을 듯이 불렀다.
납치 감금 그리고 탈출.
당사자들의 비극이
바깥세상에서는 뉴스였다.
환호는 고막이 찢어질 거 같았고
햇빛은 망막을 부숴 버릴 것 같았다.
시간이 필요했다.
처음의 공간
처음의 사람
처음의 공기
처음의 움직임
처음의 소리들
모두.
룸 안에서는 결코 경험할 수 없었던 것들.
엄마와 잭은 생성과정이 그랬듯
앞으로도 영영 떨어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지겨운 비유지만,
룸이라는 자궁 속에서 빠져나온
하나의 영혼을 가진 두 개의 육체와도 같았다.
누구도 홀로 설 수 없었다.
엄마와 딸
여자와 여자
인간과 인간으로서
둘은 새로운 세상에서
서로의 생존을 도왔다.
잃어버린 것들을 무시하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오랜 시간 갇히지 않아도 살기 힘든 세상에서
둘은 만신창이의 몸과 마음으로 세상과 격돌했다.
다시 룸에 찾아갔을 때
모든 것이 작아져 있었다.
우리가 정말 여기서
그 오랜 시간 살았을까 싶을 정도로.
잭은 그곳에서 과거와 작별한다.
그렇게 비로소
룸 밖의 세상을 껴안는다.
엄마와 함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