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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승권 Jun 15. 2021

도망친 여자, 영화에서 새벽까지

홍상수 감독. 도망친 여자


정신 나간 고등학생 같애.


아 네 고양이를 무서워하신다니 정말 안됐네요.


나중에 후회할 걸, 저렇게 산 걸.



감희(김민희)는 영순(서영화), 수영(송선미), 우진(김새벽)을 각각 순서대로 만난다. 감희는 셋 모두에게 자신은 남편과 5년 동안 떨어진 적이 없다고 말한다. 감희의 말속엔 이런 사랑을 받고 살아서 너무 행복한 삶인 거 같다는 뉘앙스가 녹아 있다. 남편과 헤어지고 다른 여자와 사는 영순과는 고기를 구워 먹으며 채식주의에 대해 이야기한다. 낯선 남자가 영순의 집에 찾아와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지 말아 달라고 한다. 그럴 수 없다. 남자의 억양이 고압적으로 바뀐다. 요구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허풍을 떨며 등을 돌린다. 영순과 감희 사이에는 종종 낯선 기류가 흐른다. 현실 대부분의 관계가 그렇듯. 둘은 술을 마시고 잠에 든다. 감희는 영순이 자신에게 비밀이 있다며 서운해한다. 날이 밝은 후 감희는 떠난다.


수영의 집에선 산이 보인다. 내부도 예쁘다. 수영은 감희에게 자주 가는 술집에서 만난 남자 이야기를 한다. 감희는 수영에게 옷을 선물한다. 수영은 감희에게 파스타를 해준다. 맛이 없을 거라며 미안해하고 감희는 엄청 맛있게 먹는다. 수영의 집에 낯선 남자가 찾아온다. 남자는 지난 대화를 꺼내며 주절거리고 수영은 불쾌한 표정으로 남자에게 가라고 다그친다. 그도 술집에서 만났고 수영은 그를 알게 된 걸 후회한다. 집값 이야기를 몇 번 한다. 집까지 같이 걸어온 남자 이야기도. 부지런히 살며 돈을 많이 모았다고 말한다. 감희는 액수를 듣고 놀란다.


감희는 우진이 운영하는 곳에서 우진을 만나고 영화를 본다. 우진은 감희의 손등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며 조심스럽고 정중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미안하다고 한다. 그곳에서 감희는 아는 남자를 만난다. 그는 우진의 남편(권해효)이다. 둘은 어색하게 조우한다. 영화를 다 본 후 도망친 여자가 감희일까 생각했다. 그렇다면 남편과의 이야기는 거짓말일까 의심이 들었다. 감희는 예쁘고 상냥하며 지난 홍상수 영화의 김민희가 연기한 수많은 캐릭터와 연결 선상에 있는 것처럼 보였다. 조금 달랐지만 지난 캐릭터들 사이에서 도망칠 수 없을 것 같았다. 닭, 소, 고양이, 낯선 남자들 사이에서 감희가 머물 곳은 없어 보였다. 여성 지인 사이에서도. 감희는 다른 나라에서 온 것 같았다. 감희만 알고 누구에게도 발설하지 않을 곳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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