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백승권 Sep 16. 2021

세인트 모드, 신과 함께

로즈 글래스 감독. 세인트 모드

모드(모피드 클락)는 간호사였다. 사고가 있었고 개인 간병인으로 직업을 바꾼다. 환자는 죽음을 앞두고 있었다. 죽음은 서서히 확실하게 죄어 오고 있었고 환자 아만다(제니퍼 엘)는 지독한 지루함을 견디며 기다리고 있었다. 모드는 이 만남을 신이 정한 운명이라 믿었다. 아만다가 숨을 거두기 전까지 신을 받아들이고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자신의 소명이라 여겼다. 신과의 끝없는 대화를 통해 얻은 확신이었다. 신은 계획이 있었고 모드는 그 계획을 이행하기 위한 도구였다. 이 계급의 차이를 모드 자신보다 더 잘 알고 있는 인간은 이 세상에 없었다. 하여 누구도 이 계획을 방해할 수도 관여할 수도 없었다. 모드는 늘 신과 함께였다. 쇠약해지는 모드가 자신의 부탁에 따라 함께 기도하며 신을 만난(만났다고 믿은) 날이 가장 기쁜 날이었다. 모드는 이 계획을 완수하고 싶었다.


신의 계획을 이행하는 과정이 순탄할 리 없었다. 저항과 갈등, 광기와 고독이 쉼 없이 덮쳐오고 있었다. 하지만 어떤 고난도 신을 향한 모드의 의지를 꺾을 수 없었다. 모드의 사지가 어둠 속에서 뒤틀리며 꺾여나갈지언정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만다를 천국에 보낼 수 있다면 신의 영광스럽고 사랑스러운 옆자리는 따놓은 당상이었다. 하지만 시련은 예상보다 거셌다. 아만다는 신의 사자를 자청하는 모드의 '전도'가 부담스러웠다. 죽음을 앞둔 무신론자에게 모드의 간절한 강요는 짜증을 유발했다. 밀집한 인파 속에서 모드가 아만다에게 모욕과 비아냥을 당한 날, 둘의 계약 관계는 파기된다. 좌절감에 사로잡힌 모드는 잠시 신의 의도를 의심한다. 재정비가 필요했다. 모드는 다시 아만다는 찾아간다. 그 자리에서 사탄과 만난다.


(이하 스포일러)


사탄은 아만다 몸속에서 흉측한 얼굴과 끔찍한 혀로 모드를 공격한다. 모드의 심리적 치부를 헤집으며 나약한 믿음을 공격한다. 모드는 이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모드는 신의 사자였고 신과 대화하는 자였으며 신의 계획을 이행하는 자여야 했다. 모드의 흉기가 사탄의 몸을 파고든다. 빠르고 강력하게 사탄의 숨을 끊어놓는다. 아만다의 침대가 피로 물든다. 사정없이 찢긴 아만다의 몸과 옷과 함께. 모드는 그제야 자신의 등에 천사의 날개가 돋아났음을 느낀다. 신의 계획을 완성했음을 자각한다. 성취감과 희열감이 전신을 떨게 한다. 이제 이승에 잔류해야 할 모든 이유가 사라졌다. 신의 곁으로 가면 그만이었다. 가연성 액체가 모드의 온몸을 적신다. 주변에서 만류하는 목소리들이 오간다. 어리석은 인간들. 너희는 절대 나의 기쁨을 알지 못해. 선택받은 자의 등에 돋은 날개를 보지 못해. 난 더 이상 너희 사이에서 번민할 이유가 없어. 너희에게도 구원받을 기회가 올지도 모르지. 그때가 되면 내 뒤를 따르게 될 거야. 거대한 불길이 모드를 감싼다.


외로움의 원인은 제각각이지만  외로움이 신을 통해 해소될  따라오는 위험은 걷잡을  없다. 보이지 않는 존재에 대한 열망은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닮고 싶게 만들고 따라서 자신 역시 보이지 않는 지위(형태)에 이르도록 욕망하게 만든다. 천상에서 (그토록 바라던) 신을 만날  있다는 확신만큼 자실을 향한 강력한 동기부여는 많지 않다. 다른 세계, 다른 관계, 다른 지위까지. 한없이 광활했단 외로움이란 공간을 절대자의 존재로 채우는 순간부터, 내면은  개의 자아가 동시에 작동한다. 명령하는 자아와 순종하는 자아, 한없이 관대한 자아와 한없이 칭찬받는 자아,  안의 신이  안의 다른 나를 인정한다.  안의 거대한 권력이 과거의 비루했던 나에게 희망과 용기를 부여한다. 세상에서 한없이 보잘것없던 나에게 이런 특급 대우가   이야. 신이 만든 세상에서 내가 신을 안다면 그것만큼 거대한 권력이 어딨겠나. 신의 권능이 나를 통해 세상에 전해지는 것만큼 엄청난 기쁨과 희열이 어딨겠는가. 어떻게 그의 목소리를 거역하겠는가. 어떻게 하잘것없는 존재들이 그와 나의 위대한 계획을 방해하도록 방치하겠는가. 모드에게 이승에서의 (타인과 자신을 대상으로 하는) 살인은 입단 테스트 같은 거였다. 이제 재가  몸으로 요단강을 건너가 신의 칭찬을 받을 일만 남았다. 신이 있다면.




이전 08화 도망친 여자, 영화에서 새벽까지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