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
4년 전 신춘문예 소설 부문에 당선되었다. 상금은 2백만 원이었다. 제주신라호텔 3박을 예약하고 비행기를 탔다. 숙소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도로시는 도착하자마자 실내 수영장에 잠깐 들어갔다가 감기에 걸렸다. 비둘기들이 투숙객들이 잠시 비운 베드 위의 치킨을 뜯어먹던 곳이었다. 비도 그치지 않은 상황, 계획은 조금 더 축소되어 룸서비스로 볶음밥만 시켜 먹었다. 하지만 여러 근사한 기억과 한 권의 사진집으로 남아있다. 다음 해 다시 계획을 잡았다. (전에 두 번 가도 좋았던) 괌을 가려다가 제주로 변경했다. 도로시 감기가 그치지 않았다. 제주 일정을 다시 변경했고 다시 변경하다 결국 숙소와 티켓 모두 디데이를 앞두고 취소해야 했다. 전조였나. 이직을 앞둔 시기였고 새로운 회사에서는 많은 것들이 어긋났다. 이후 다시 이직한 회사에서 제주 숙박권에 당첨되었다. 계열사 리조트, 어림 계산해도 80만 원 상당. 일정 변경이 불가능했고 취소해야 했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 불안을 무시할 도리가 없었다. 2020년이었다.
이번 제주 여행은 5월부터 예약되어 있었다. 1달 전부터 날씨를 확인했다. 그 사이 제주 숙박권이 당첨되었다. 일정이 겹쳐 숙박비를 아낄 생각에 기뻤다. 도로시 방학 기간과 여름휴가 일정을 맞췄고 옷과 상비약 등 짐을 꾸렸고 공항까지 밴을 예약했다. 김포공항 도착. 짐을 부치고 착석했다. 비행기는 무사히 이륙했다. 제주 국제공항 착륙 전 도로시는 기내 창가에서 구름과 바다, 해변과 도심을 찍고 있었다. 결과물을 보고 깜짝 놀랐다. 단숨에 아내와 내 아이폰 배경화면으로 바꾸고 며칠 후면 도착할 이번 제주 여행 사진집 커버 사진으로 정했다. 공항에서 내려 렌터카를 찾았다. 준중형 세단을 오랫동안 다루고 있고 수년 전 해외여행에서 대형 SUV를 렌트한 적은 있지만 제주도에서 경차 렌트는 처음이었다. 캐스퍼, 5일 동안 여기저기 운전하고 다녔다. 첫 번째 리조트로 주소를 찍었다. 핸들의 움직임이 단단하고 앞유리가 가까우며 허리를 세우고 좌석을 조금 당겼더니 범퍼카 같았다. 물론 사고 나면 농담은 안 나오겠지. 짐칸에 캐리어 두 개가 꽉 채워 들어갔다. 소노벨에 짐을 풀고 1층 어멍에서 돔베고기와 해물뚝배기로 허기를 채우고 함덕 해변으로 향했다.
과거 기억 속 제주 어딘가의 해변은 한적하고 여유로웠는데 지금 여긴 작은 해운대였다. 파라솔을 하나 잡고 선글라스 쓴 남성에게 값을 지불하고 모래로 향했다. 도로시와 바닷물과 모래만으로 2시간을 놀았다. 철퍼덕 앉긴 뭐해서 쭈그려서 놀다가 일어났더니 현기증이 일었다. 방으로 돌아와 정리하니 힘이 없었다, 어두워지기도 했고. 비비큐에 포장 주문을 하고 찾아왔다. 동네 특성인지 밤 분위기도 해운대와 비슷했다. 차들 속도만 조금 느렸을 뿐. 다음날 아침 오드랑에서 빵과 커피를 사 가지고 와서 먹었다. 점심은 살찐 고등어를 가려다가 조기 마감으로 차를 돌려 근처 피자집에 갔다. 도로시가 좋아하는 고르곤졸라+꿀을 시켰고 꿀맛 빼고는 그저 그랬다. 여러 가지로 별로였지만 이제 시작된 여행 무드를 균열 내고 싶지 않았다. 다음 숙소로 향했다. 휘닉스 섭지코지 체크인. 애초 스위트를 잡았고 룸 업그레이드를 통해 기대보다 나은 객실을 안내받았다. 세화 해변에 갔다. 물과 모래 위에 사람들이 가득했고 우리 외에 마스크 쓴 사람을 거의 못 봤다. 2시간 정도 갑각류들의 모래집과 수영장을 만들어주다가 도로시의 결정으로 모두 풀어주고 돌아왔다. 저녁은 휘닉스 해랑에서 먹었다. 도로시 고등어 발라주고 해물 돌솥 먹는 내내 감탄했다. 다음날 오전은 코지에서 조식 뷔페를 먹었다. 아내는 식사를 도로시와 나는 디저트를 담았다. 도로시가 좋아하는 치즈를 이것저것 썰어 담고 케이준 포테이토, 블루베리 요거트, 에스프레소를 가져왔다. 시동을 걸고 빛의 벙커로 향했다. 하늘과 거리는 검었고 폭우를 닦아내느라 와이퍼가 보이지 않았다.
빛의 벙커 주차장이 만석이었다. 한참 떨어진 다른 주차장을 안내받았지만 해녀박물관으로 계획을 변경했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한 길은 점점 더 좁아지고 있었다. 주변 차량들은 사라지고 폭우에 잠기거나 토사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산길이 계속 나오고 있었다. 농담이 줄고 불안해졌다. 도로시는 즐거워졌다. "아빠 엄마 우리 모두 하늘나라 가는 거야?" 침수된 도로를 지날 때 바퀴 움직임이 힘겨웠다. 아내는 차를 돌리자고 말했다. 유턴할 공간마저 좁았다. 후진한 후 공간을 찾아 회귀했다. 사방이 초행길, 일단 큰 도로를 찾기로 했다. 그런데 이마저도 내비게이션은 "경로를 이탈"하며 좁고 가파르며 더 낯설어 보이는 길로 돌리고 있었다. 여러 차량들이 다니는 4차선으로 돌아왔을 때 우린 모두 이야깃거리가 하나 생겼다며 서로 흥분해서 난리 쳤다. 빛의 벙커 가려다 지옥의 골짜기로 빠져 제주 사건사고 소식에 등장하는 줄 알았다. 불안의 잔여물이 가시지 않았지만 해녀박물관에 내렸다. 비는 그치지 않았지만 조경이 넓고 아름다워 관람을 마친 도로시와 한참 거닐며 놀았다. 근처 한림칼국수에서 닭칼국수를 먹었고 불안과 피로에 지친 몸을 달래기엔 기대 이상이었다. 다시 빛의 벙커로 향했다.
동일한 콘셉트의 미디어아트 전시를 매해마다 봤었는데 제주 빛의 벙커가 기원이라고 들었다. 처음 입장했을 때 생각보다 공간이 크지 않아 의아했는데 둘러싼 모든 면에서 플레이되는 명화는 스케일과 색채감으로 입장객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서성이고 앉은 모든 이들을 한 점의 색료로 만들고 있었다. 앉아서 보는 것도 기존 갤러리 같은 관람방식으로 괜찮겠지만 움직이면서 보는 게 -관람객에게 여지를 남기지 않은 채 모든 공간을 장악하는- 이런 전시에 더 어울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장우산을 들고 다니느라 움직임이 좀 더뎠지만 도로시는 충분히 즐거워했고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 누구도 이 정도 스케일의 색채의 융단폭격 속에서는 감성적으로 흠뻑 질식할 수밖에 없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 서귀피언 베이커리에 들렸다. 공간은 드넓었고 창과 바깥 풍경이 경이로웠다. 숙소로 돌아와 먹은 빵도 모두 맛있었다. 잠이 오지 않았고 깨어있는 내내 천둥 번개가 리조트를 쪼개버릴 것 같았다. 창밖은 번쩍이고 비바람은 거셌다. 새벽 4시가 되어서야 잠잠해졌다. 다음날 오전은 해왓에서 고등어와 갈치구이를 먹었다. 현지 음식을 이래서 찾나 싶었다. 맛있게 비우고 말을 타러 갔다. 목장까페 밭디에 내렸다.
실제 풍경은 블로그나 SNS의 어떤 사진보다 경이로웠다. 걷고 걸어 언덕 위의 초대형 그네에 올랐다. 우리 뒤에 아무도 오지 않아 한참을 사진 찍고 놀았다. 내려와 도로시는 조랑말에게 당근을 먹이고 우리는 말안장에 올랐다. 생각보다 들썩임이 격렬했다. 내가 이렇게 느낄 동안 옆에 도로시는 방방 날아다니고 있었다. 긴장이 역력한 표정으로 도로시는 말 위에서 조심스럽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2층 카페에서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그렇게 행복해 보일 수가 없었다. 저렇게 좋아하는데 매일 사주고 싶지만 목과 코 때문에 난리 날까 봐 늘 조심조심한다. 돌아와 전동카트를 빌려 유민 미술관, 바람의 언덕, 글라스하우스 곳곳을 돌았다. 카트를 타는 동안은 바람을 만끽하느라 모든 것이 좋았다. 내려서 글라스하우스 주변 산책로를 걷는 동안 배를 내밀고 죽은 쥐를 보았다.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염소 우리에 들렀다. 도로시는 한참을 염소를 바라보고 있었다.
피로에 지친 서로에게 외출을 금하기로 합의하고 저녁을 시켜먹었다. 마늘 후레이크가 있는 소스가 담긴 돈가스와 닭 가라야게. 제주스럽지 않다고 생각해 기대 안 했는데 꽤 맛있었다. 이날도 잠이 오지 않았다. 다음날 도로시가 원하는 대로 다시 코지에서 조식 뷔페를 먹기로 했다. 도로시는 이틀 전처럼 과일과 마시멜로우를 담았고 토스트, 베이글을 더 담아 엄마 아빠와 나눠먹었다. 제주에서의 최후의 만찬이었다. 캐스퍼를 반납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기상악화로 착륙이 지연되었고 김포공항은 비바람으로 가득했다. 집에 오는 길도 정체가 심했다. 돌아와 사진을 정리했고 지금은 사진집을 기다리는 중이다. 이번 제주는 아쉬움이 없었다. 다음엔 서쪽을 휘젓고 싶다. 폭우와 깊은 산속 침수된 도로를 조심 또 조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