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처음과 만났다
도로시의 100일이다. 아내는 수척해졌다. 원체 가녀린 여자였다. 그런데 더해졌다. 미모는 사그라들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늘 애잔하다. 내가 회사에서 밥을 퍼먹고 커피를 마시고 농담을 주고받고 아이디어를 쏟아내고 카피를 적고 하늘을 멍하니 쳐다보고 마음에도 없는 말을 하는 동안 아내는 도로시의 기저귀를 갈았다. 도로시의 분유를 타고 젖병을 입에 물렸다. 우는 도로시의 까닭을 살피고 재우고 재우고 깨면 또 재웠다. 노래를 불러주고 웃고 웃어주고 웃고 웃어주고 말을 걸고 장난감을 흔들어주고 동화책을 읽어줬다. 도로시에게 먼지 한톨이 해를 입힐까 창문을 열어 실내외 바깥의 공기를 바꿔주고 청소기를 밀고 도로시의 옷과 겉싸개와 이불과 수건과 수건과 수건을 세탁하고 세탁하고 또 세탁했다. 도로시가 눈 뜨면 같이 눈 떴고 도로시가 눈을 감으면 도로시 눈에 보이는 세상을 정리했다. 깨끗이 닦고 털어냈다. 도로시를 오염시키는 것들에게 보호하려 적당한 온도의 물로 머리를 감기고 몸을 씻기고 로션을 발라주었다.
도로시는 아내에게 어떤 지시를 명확하게 내리지 않았고 그럴 수 없었지만 아내는 모든 것을 먼저 알고 먼저 판단하고 먼저 움직여서 불행의 모든 가능성을 차단했다. 자신을 철저히 도구화시켰고 그 안에서 뜨거움을 놓치지 않았다. 미안해했다. 도로시에게. 더 알아주지 못하는 자신을 한탄하기도 했다. 도로시의 요구를 혹시 몰라주거나 놓친 것은 아닌지 무척이나 자주 미안해했다. 그렇게 서서 밥을 먹고 수시간 화장실을 못 가고 잠을 거의 잘 수 없었다. 그런 아내의 삶을 도로시는 알았겠지만 도로시도 어쩔 수 없었으리라. 도로시의 한계는 도로시가 원한 것도 의도한 것도 아니었을 테니.
도로시가 처음 나를 통해 아내의 몸을 통해 그렇게 우리를 통해 세상으로 나와야 했을 때 아내는 두려워했다. 기다림과 두려움의 관계는 결코 반비례가 아니었다. 아내는 두려움에 모두가 잠든 시간에 울고 모두가 깨어있는 시간에 힘들어했다. 도로시의 조건에 자신을 맞추려 무던히 애썼다. 누구도 어떤 어머니도 첫 자녀에게 준비되어 있기란 만무할 텐데 그런 세간의 상식과 보편성은 아내에게 무의미했다. 도로시는 현실이었고 눈앞이었으며 문제적인 상황이 발생한다면 해결시켜줘야 할 대상이었다. 또렷했고 불가피했다. 그때까지 서로에게 의지하며 삶을 지탱하던 두 남녀는 자연스레 등을 굽혀 도로시의 방탄조끼, 도로시의 우산, 도로시의 헤드기어, 도로시의 방패, 도로시의 의사, 도로시의 간호사, 도로시의 집사, 도로시의 자동차, 도로시의 심리학자, 도로시의 친구, 도로시의 인형, 도로시의 청소기, 도로시의 이불, 도로시의 수저, 도로시의 식판, 도로시의 샤워기, 도로시의 비누, 도로시의 도로시의 도로시의 모든 생활과 삶과 시간과 호흡의 책임자가 되어줘야 했다.
책임이란, 그러했다. 도로시가 황량한 사막에 버려져 홀로 생을 마감하지 않도록, 그렇게 보이지 않고 그렇게 될 모든 전조를 차단시키도록, 기능해야 했다. 그게 누가 부르지 않아도 결국 엄마와 아빠라는 타이틀을 얻게 된 두 남녀의 사명이었다. 적어도 아내는 이 사명을 주어진 육체와 혼을 부서뜨려 가며 이행했다. 나는 아니었다. 나는 늘 핑계가 있었으니까.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보다 더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처럼 그렇게 존재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돌보려 했지만 돌봐지지 않았고 시간을 쏟아부으려 했지만 시간을 확보하지 못했다. 삶과 사회가 주어진 최소의 시간 동안 내가 도로시에게 해준 일은 각인이었다. 적어도 엄마 다음으로 오래 네 곁에 있는, 있어줄 사람이라는 각인을 새겨주고 싶었다.
그렇게 아내를 흉내 냈다. 얼마나 보잘것 없었을까. 24시간 동안 하는 일을 2.4시간 동안 마스터하려는 모양새란. 적어도 엄마만 있는 아이처럼 도로시를 남겨두고 싶지 않았다. 먹이고 재우고 달래고 달려가고 들어주고 말소리를 들려주고 노래를 같이 듣고 같이 춤을 추고 내가 먼저 알게 된 주변 곳곳의 지식들을 알려주고 책과 나무와 하늘과 흙과 들풀이 왜 존재하고 밤과 낮이 바뀌는 동안 무엇이 같이 달라지는지, 계절의 변화에 우리가 해야 할 것들은 무엇인지, 나의 하루는 어떠했고 너는 오늘 나와 같이 있지 않는 동안 어떤 일을 겪었는지 묻고 들려주었다. 도로시는 들었을까. 단언컨대 단 한마디도 놓치지 않았을 것이다. 도로시의 새로운 삶과 욕구에 적응하기 위해 나와 아내는.
잠시 멈춰 생각해보면, 도로시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모든 것이 많이 다르게 해석되고 이해되고 느껴진다.
100일 동안 세상의 모든 처음과 만났다. 엄마의 뱃속에서의 10개월, 엄마를 뚫고 나오면서 묻은 이마의 피, 나오는 동안 겪은 힘겨움, 낯선 빛, 낯선 소리, 낯선 촉감, 낯선, 낯설고 낯선 모든 것의 바람들. 작은 침대에 실려 이동하고 그전에 아비라 주장하는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던 어느 성인 남자의 품에 잠시 안기고 다시 잠들고 울고 울고 다시 잠들고 피를 닦고 얇은 이불이 몸에 감기고 잠들고 다시 잠들고 자신을 품고 있던 이가 주는 모유를 입에 물고 모유를 빨고 모유를 삼키고 다시 잠들고 시간의 흐름을 알고 있었을까. 꿈을 꾸었을까. 처음의 공간, 처음의 수면, 처음의 흔들림, 처음의 대화, 처음의 자신, 처음의 타인들, 처음의 TV 소리들, 산후조리원이라는, 아직도 생경한 이름의 공간을 벗어나 집으로 처음 집으로.
거기서, 여기서, 하루와 일주일과 달을 넘기며 여름과 가을과 겨울을 넘기며 바람과 달과 별과 해를 넘기며 구름과 나뭇잎과 빗소리를 넘기며, 도로시의 100일이 엄마의 100일이 아빠의 100일이 이모의 100일이 할머니의 100일이 할아버지의 100일이 모두가 같지만 누구도 같지 않은 100일이, 그렇게 지나갔다.
그 사이 도로시는 아침엔 30분에서 1시간씩 서너 번, 저녁엔 한 번에 8시간을 자기도 하고 다리에 힘을 주며 조금 서기도 하고 분유를 먹으면서 웅얼거리기도 하고 자고 일어나면 우리를 알아보곤 웃기도 하고 하루에도 몇 번씩 까르르 울기도 하고 목을 오랫동안 세우며 어리둥절하기도 하고 모빌을 오랫동안 쳐다보기도 하고 동화책을 읽어주면 가만히 듣기도 하고 한번 말문이 터지면 음절과 어절을 구분하며 한참을 뭐라고 전달하려고 노력하기도 하고 그러다 서글픈 표정으로 울먹거리기도 하고 자가다 무서운 꿈을 꾼 듯 소리를 지르기도 하고 응아를 하면 멋쩍기도 하고 카메라를 들이대면 가득 몰입한 눈빛으로 쳐다보기도 하고 유모차를 처음 타고 외출할 땐 긴장하기도 하고 찬바람에 아랑곳없이 품에서 잠들기도 하고 선 채로 재워주길 바라며 앉으면 칭얼거리기도 하고. 그렇게, 지금은 자고 있겠지. 아빠를 기다리며. 오늘은 도로시의 100일이다. 2015년 9월 4일에 태어났다. 오후 1시 53분, 검은색 빌딩 안에 있는 산부인과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