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이의 환각에 휩싸인다
아까 도로시가 무서운 일을 겪었다.
바로 수습할 수 있었고 안정 되었으며
안전과 생명에 지장이 없었지만.
도로시의 무서워 하던 표정이 지워지지 않는다.
도로시는 처음 보는 긴급한 표정으로
도움을 호소하고 있었다.
이후 어깨와 목을 껴안고 놓지 않았다.
내 품에서 벌어진 일이라 내내 미안했다.
내게서 시작되지 않았고
막을 수 있는 일도 아니었지만 그래도
순간 도로시의 표정에서 많은 것을 읽을 수 있었다.
지쳐 잠들었고 다시 웃는데 조금 시간이 걸렸다.
어제처럼 다시 고백했다.
사랑한다고.
나는 도로시의
인형, 탈것, 장난감, 시리,
갑옷, 방패, 히트텍, 케이터링,
드론이 되어줄 수 있고
도로시는 내게 오직
도로시이기만 하면 된다.
도로시는 딸 나는 아빠
이런 사전적 상투적 관계는
잘 떠올리지 않고 적용하지 않는다.
도로시는 내게 전부가 아니다.
전부란 표현으로 내게
귀속시킬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다만 모든 것을 동원해 상처를 막고
온전한 속도로 자신의 생을 키워나가길,
그 과정에 도움을 주고 싶다.
길을 안내하고 주림을 면하게 하며
눈을 밝히고 외로움에 적응하도록
함께하고 싶다.
시도 중이다.
도로시가 곁에 있을 때
반짝 뜬 눈동자와 마주하고 있을 때
동그란 뺨의 탄력을 느낄 때
작은 입술에 젖병을 물리고
과장된 연기로 책을 읽어줄 때
벽의 그림과 바깥의 풍경을 설명해줄 때,
경이의 환각에 휩싸인다.
시간을 멈출 수단을 간구한다.
독점의 열망으로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이런 감정을 두번째로 느낄줄 몰랐다.
아내에 이어 아내의 피조물이 다시
인생 전체를 뒤흔들줄 미처 알지 못했다.
문명화되지 못한 생명의 모든 표정과 움직임,
소리와 반응이 이토록 아름다울줄,
알았더라도 알 수 없었으리라.
다짐, 약속, 용기, 희망…
과거의 쓸모를 자랑했던 어떤 단어들도 부질없다.
이미 존재하고 있고 과거현재미래가 눈앞에서
소용돌이 치고 있다.
아름다움을 지키기 위해
어떤 더러움도 감당할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래야 한다.
도로시는 잠들었고 다시 깰 것이다.
해야할 것들을 하고
필요한 것들을 고민해가며
생의 기운이 모조리 꺼질 때까지
곁에서 기능을 다하고 싶다.
다시 말하지만 도로시를 전부라는 말로
어떤 대상과 범주에도 한정짓고 싶지 않다.
전부라는 개념이 존재한다면,
도로시는 모든 전부의 초월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