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무서웠다
성숙한 여성만이 겪는 고통의 영역이 있다. 대부분이 겪지만 통증은 제각각 다르다. 아내는 심한 편이다. 그리고 이번이 가장 심했다. 주말 밤 산부인과를 수소문하며 응급상황과 대처방안을 문의한 것도 처음이었다. 야간진료를 담당하는 간호사가 답했다. 진통제를 먹어도 나아지지 않는다면 진통주사를 맞는 방법도 있지만 의사의 상담과 처방전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금 오신다고 해도 바로 주사를 처방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라고. 힘드시다면, 차라리 응급진료가 가능한 곳을 알아보셔서 조치를 취하시는 게 나을 거라고. 아내는 한참 전부터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응급실 경험에 비춰보면 머리가 복잡해졌다. 이동시간은 둘째치고 도착 후 접수하고 대기하고 진료받고 다시 대기하고 주사 맞고, 몇 시간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대기인원이 많다면 반나절이 소요될 수도 있었다. 당장 숨이 넘어갈 듯한 상황에서 알면서도 고난을 자초하는 건 어리석었다. 혼잡한 그곳 상황이 지금 침대 위보다 절대 나을 리 없었다. 차가운 의자 위에서 몸을 식어가게만 할 뿐. 하지만 방도가 없었다. 나아지기만을 기다려야 하나. 이러다 갑자기 기절이라도 하면 어떡하지? 잔병치레가 많은 아내는 평소 자기 몸을 병의 위협에서 지키는 법을 알았다. 환기, 청결, 온도 유지 등 실내와 주변의 상태를 늘 최적으로 맞추려고 노력했다. 인내심 또한 높아 쉽게 드러내지 않았다. 주의를 기울여야만 사태의 심각성을 알아차릴 수 있을 정도. 그런 아내가 목구멍 깊숙한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통증을 떨리는 소리로 토해내고 있었다. 전신의 피를 마르게 할 듯한 격렬한 고통이 지나가고 있었다.
눈의 떨림이 멈췄다. 곧은 몸의 움직임이 잦아들었다. 떨고 있던 전신, 몸살이 찾아와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였는데. 고요했다. 침대 위에 뉘인 긴 팔다리가 더욱 길고 가늘어 보였다. 왼쪽 눈의 왼쪽 끝과 오른쪽 눈의 오른쪽 끝으로도 그 길이가 다 담기지 않을 정도. 집안의 모든 불빛을 소등했다. 안정을 위한 어떤 빛의 방해도 주고 싶지 않았다. 옆에 앉아 있었다. 언제 내가 필요할지 모르니. 움직이지 않는 순간에도 가장 가까이에 있어야 할 사람은 나였다. 10분이나 지났을까. 나를 부르고 손을 흔들었다. 잡아달라는 신호. 침대 바깥쪽의 한쪽 손을 잡고 그렇게 오랫동안 있었다. 물을 달라고 했고 목을 축였다. 땀에 젖어 이마에 붙은 머리카락을 넘겨주고 머리 매무새를 만져주었다. 물으니 통증이 조금 내려갔다고 했다. 8시경부터 시작된 격한 찡그림이었다. 아이가 앙상해진 뺨 위의 눈을 떴을 땐 11시가 5분을 남겨두고 있었다.
성과 신체구조가 다르다는 것은 공감의 영역을 절망에 이르도록 차단시킨다. 수컷인 내겐 자궁이 없다. 그러니 출산 시 산통과 유사하다는, 일차적 월경통(생리통)의 원인인 자궁근육의 과도한 수축에 따르는 통증을 알리 없다. 꼬리뼈 부위의 통증이 동반되거나 앞쪽 허벅지까지 통증이 뻗어갈 수 있고, 동시에 구토, 메스꺼움, 설사 등이 나타날 수 있으며, 드물게 실신에 이르는 경우도 있다는 신체적 변화를 체감할 길이 없다. 다시 말해, 고립된 고통의 영역에 두고 그걸 지켜볼 수밖에 없다는 이야기. 이런 외로움을 어떻게 견딜 수 있을까. 무력하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더할 일이 벌어질지 우리는 모른다. 다만, 살며 이러한 한계와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 한탄스러울 뿐이다.
무서웠다. 행여나 내가 아직 가보지 못한 곳으로 먼저 가버릴 까 봐. 정말 무서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