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하는 여자

그녀의 삶은 그녀 것이다

by 백승권

우리는 직장에서 만났다. 열아홉 살 여자아이와 스무 살 남자아이의 일터. 아르바이트였다. 남자가 군대를 가고 남은 학기를 마치고 직장을 구하는 동안, 여자는 아르바이트를 몇 년 더 하고 다른 직장으로 옮겨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을 했다. 서울로 거주지를 옮기며 여자는 다시 직장을 옮겼고 남은 학기를 마치고 직종도 바꾸었다. 남자를 만나는 동안 여자는 내내 일을 하고 있었다. 쉬지 않았다. 늘 어딘가에 소속되어 일정 직위를 얻고 일을 하고 있었다. 20대 내내 그녀는 직업인이었다.


남자는 서글펐다. 모든 여자들이 그러진 않으니까.


생활을 위해서든 꿈을 위해서든 직업과 직장은 늘 그녀의 이름 앞뒤에 붙어있곤 했다. 남자는 열아홉 여자아이가 스물다섯 살이 되고 다시 서른 살이 되는 내내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점점 자신이 해줄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궁전과 마차로 상징되는 것. 오래전부터 모든 필요들이 돈으로 환산되기 시작했다. 결혼을 하면서 더욱 절실해지는 부분이기도 했다. 남자는 종종 자신의 상대적 무능함을 자책했다. 굳이 TV를 켜고 잡지를 펼치지 않아도 일하지 않는 여자들은 지천에 널려 있었다. 정확히 말하면 일하지 않고도 남편이 가져다주는 부를 관리하며 여유를 누리는(것처럼 보이는) 여자들은 많고 점점 많아지는 것 같았다. 남자가 그런 생각에 빠져 있는 동안에도 여자는 남자보다 이른 시간에 출근을 하고 빨리 퇴근하여 가사를 챙기고 있었다.


남자는 외출복을 갈아입지도 않고 주방에서 저녁을 준비하는 여자의 등에서 애잔함을 느끼곤 했다. 뒤에서 안아준다고 해서 여자가 내일 회사를 쉬어도 되는 것은 아니었지. 100일 단위로 기념일을 챙기고, 알음알음 용돈을 모아 선물을 사준다고 해도 여자가 당장 회사를 때려치우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스트레스. 하지만, 여자는 의연했다. 저녁마다 자신의 남자에게 회사에서 있었던 일과 회사 사람에게 들은 이야기를 종알종알 이야기해줬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뺨을 만지고 머리를 쓰다듬고 반짝거리는 눈을 쳐다보며 신기해했지만 마음 한 켠의 미안함까지 떨치진 못했다. 남자는 직장에서 일을 하고 집안에서도 소소한 일들을 했지만, 여자의 직장과 집안에서의 일들은 남자보다 더욱 전투적이었다. 남자에게 응당 맡겨진 일들이라면 여자에겐 하루하루가 버거운 과정이기도 했다. 그 안에서 관계한 인간의 종류는 친구보다 악마가 더 많았다. 악마는 남자가 볼 수 없는 곳에서 여자를 울리고 지치게 만들었다. 그녀의 세월을 깎아먹고 자존감을 훼손했다. 아프고 병들게 하여 남자를 분노하게 만들었다. 남자는 때가 되었다고 여겼다. 오랫동안 담아둔 말이었다.


“그만둬.”


남자를 위해서가 아니었다. 우리를 위해서도 아니었다. 여자의 삶. 남자와 함께 할 여자의 남은 삶은 길어야 했다. 아니 여자로서의 온전한 삶은 더 존중받을 가치가 있었다. “더 이상 스스로에게 어떤 책임도 부담도 주지 마. 오로지 너만 생각해봐. 넌 아주 오랜 시간 쉬지 않고 일해왔어. 누굴 위해서가 아닌 너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휴식을 취할 자격이 있어. 아니 자격 같은 게 아니라, 너 스스로를 존중해줘야 할 필요가 있어. 더 이를 악물면 더 꾹 참으면 더 버틸 수도 있겠지. 하지만 길게 보면 그게 무슨 도움이 될까. 너 자신에게 널 아끼는 사람들에게 그게 얼마나 큰 의미가 될 수 있을까. 네가 쉬어야 해. 네가 괜찮아야 한다고. 내 말 알아들어? 내가 무슨 말하는지 알 거야. 고집부리지 말고. 이제 그만 놓자. 3개월 아니 6개월, 아니 몇 년이 돼도 좋고 아예 하지 않으면 더 좋아. 그만 두자. 너 자신을 위해, 이제 쉬어. 회사 그만둬.”


말없이 듣던 여자는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못 아두기 위해 남자는 며칠 후 같은 내용을 한번 더 길게 말했다. 여자가 일을 시작하고 처음, 병가를 낸 시기의 일이었다. 겨우 며칠 집에 있었는데도 여자의 얼굴엔 온기와 미소가 돌았다. 회사에 연락해 알리고 병가에서 복귀하고 또 며칠, 오늘은 그녀의 마지막 출근일이다.


감히 상상하지 못한다. 그녀의 눈 앞을 지나갈 주마등에 어떤 그림들이 채워져 있을지. 여자는 같이 일하던 여러 명의 친구와 소수의 악마들에게 인사를 전한 뒤 남자와 저녁을 먹을 것이다. 누군가 그랬다. 남자의 부담이 커지겠다고. 이해력이 부족한 건지 난 이 말의 정확한 의미를 잘 모르겠다. 여자의 이름으로 입금되던 월급이 남자의 통장으로 옮겨가는 것은 물론 아니다. 경제적인 수입은 한 사람으로 제한된다. 하지만 그게 부담의 영역인지는 모르겠다. 난 낮엔 직장 다니고 밤엔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할 것도 아닌데 내가 왜 부담을 느껴야 하나. 내가 하는 일의 총량이 늘어나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지출이 상향 조정될 것도 아닌데. 난 나의 일을 하면 되고 나의 수입을 우리의 생활에 맞게 배분하면 될 것이다. 부담이라니. 여자의 마른 얼굴과 지친 마음을 지켜보는 시간들이 더 고역이었고 부담이었다. 아직 덜 살아봐서 모르는 거라고 혀를 차고 싶다면 (소모적이더라도) 전 생애를 걸쳐 당신의 쓸데없는 오지랖에 반박해줄 용의도 있다.


생활이란 이름 아래, 타인의 폭언과 무례에 상처받는 일은 여기까지. 사회적 공간과 지위의 무게 아래 신음하던 날도 오늘까지. 긴 시간 동안 일과 직장에 시간과 노력을 바친 여자에게 어떤 보상이 적절할지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근사한 선물을 사주고 싶다. 해방감이 옅어지기까지 얼마나 걸릴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당분간 그녀의 삶은 그녀 것이다. 소속되지 않은, 오로지 그녀의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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