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의 기간, 연애의 농도, 연애의 끝

시간의 덫에 걸려 육체의 이별을 말하지 못하고

by 백승권

연애의 기간이 연애의 농도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제대로, 생각해본 적, 없다. 타인의 연애를 주의 깊게 들여다본 적 없고, 그럴 필요도 없다고 느껴서도 그렇지만 비교 대상은, 판단 기준은, 늘 우리 자체. 우리의 시간. 우리의 기간. 우리의 농도. 우리의 연애. 늘, 우리가 기준.


뭐랄까. 좀 편협하고 독단적이며 이기적인 관점이고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 타인들의 연애에 대한 이야기들을 들으며 그들의 교감, 그들의 싸움, 그들의 정서 등, 사실 지루했다. 이미 지나간 경험들의 범주를 벗어난 것이 없었다. 지금의 우리가 수십만 장의 사진들이 모여 만든 사진이라면, 타인의 사연들은 그중 같은 구도로 찍혔거나, 표정이 비슷하거나 장소나 배경이 비슷하거나 정도?


쓰기에 옮겨지는 것도 정체되었다. 정체라니, 달리 표현하면 안정, 제자리. 더할 나위 없는 제자리. 세상에서 가장 높은, 타인에게는 가장 다다르고 싶을지도 모를 정점의 끝부분. 늘 그 자리에서 어딘 갈 내려다보거나 그곳의 낭만과 쾌락을 향유하거나 그러고 있었다. 물론 망각이 진행되고 있으니 지워진 기억들 속에서 새로운 것들을 찾아내는 재미와 뭉클함은 있다. 그건 우리들만의 것. 침범하지 못하고 공감할 여지를 전혀 줄 수 없는 비밀의 화원.


우리는 우리를 넘어서지 않을 것이고 극복하지 않을 것이며 의식하지도 않고 그저 우리로써 남고, 남고 싶다. 초연할 수 있다면 초연하게, 흔들리는 경우가 온다 하더라도 그것이 어떤 기반을 해치지 않도록 해주는 겹겹의 보호막, 믿음, 눈빛, 껴안음. 미안할 일도 아니지만 그래서 난 아직까지 정말 눈부시게 재미있는 연애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없다. 상처받고 아프고 죽고 쓰러지고, 그런 피투성이는 자극적이긴 하지만 결국 가학적인 영역이라 반갑지 않다. 누군가는 실제로 아플 수도 있단 소리니까.


공감능력이 무디다는 말이 더 가까울 것 같다. 지상에서의 이별을 겪은 적 없으니까. 음. 다만 주변의 다양한 기간을 거치며 커플을 이어온 이들에 대한 표피적인 기억만 살려보면 기간을 가지고 연애의 농도를 따지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 남들이 5년 10년 숫자만 듣고 “와, 진짜 장난 아니다! 엄청 오래됐네! 우린 게임도 안되네!” 이런 반응은 지겹고 성의 없으며 지루하다. 차라리 말로 표현되지 않는 언뜻언뜻 비치는 서로에 대한 태도나 눈빛의 교차가 더 흥미진진하겠지.


어떻게 시간만으로 연애의 농도를 따지나. 그게 가능한가. 오히려 시간이 가진 숫자를 무겁게 여기는 사람들을 많이 보았다. 시간에 굴복해야 한다는 압박을 가지고 앞선 커플들이 지나온 절차를 순차적으로 밟는 듯한 모습도 느껴졌다. 프랜차이즈 같이. 들은 말들과 보아온 모습들이 미리 그려 놓은 순서도에 맞춰 관계의 틀을 정하고 형식을 갖추고 규격화시킨다. 나의 관찰력은 미약하니 앞서 말했지만 편협한 시각일 뿐이다. 쉽게 말하고 판단하고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좋은 수단.


시간의 덫에 걸려 육체의 이별을 말하지 못하고 영혼이 다 죽을 때까지 같이 다니다가 신기루처럼 헤어진 커플도 많이 봤다. 완전할 수 없는 개인들이니까, 완전할 수 없는 관계를 할 수밖에 없는 거지만 상대를 위한답시고 시간을 지체해오다가 결국 서로를 모두 죽이고 나서야 추억까지 찢어 놓는 사태는 당사자들은 알겠지만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을 텐데. 눈치는 있었지만 손과 발이 느렸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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