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이 별로일 때 글을 쓰지 않는 이유

by Glenn


기분이 별로일 때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던 것 같다. 몇 번 정도 문장으로 옮겼던 것 같은데 언제 어떤 글이었는지 굳이 찾지 않았다. 기분이 별로일 때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최신 버전으로 다시 설명하자면 기분이 별로였던 시간을 굳이 기록으로 남기고 싶지 않고, 추후 우연히 읽었을 때 혹여나 그때의 별로였던 기분으로 되돌아가고 싶지 않으며 기분이 별로일 때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기분이 별로일 때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은 강렬하다. 글로 남길만한 감정이 돌출하는 경우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이건 결코 부정적인 면이 아니다. 기분이 별로여서 남긴 글이 많아진다면 그만큼 기분이 별로였던 시간이 많았다고 확인하게 될 텐데 그게 과연 현재와 미래를 위해 현명한 일인가. 당장의 별로인 기분을 해소하기 위해 별로인 단어와 별로인 조사와 별로인 문장을 지어내어 별로인 문단으로 엮는 게 과연 가치 있는 일인가. 아니라고 결론 내렸기 때문에 기분이 별로일 때 더 이상 글을 쓰지 않기로 언젠가부터 정하고 별로인 기분이 들 때마다 글을 쓰려는 내면의 유혹을 뿌리친 것이다. 기분이 별로였던 이유에 대해 글로 옮기기 위해서는 기분이 별로인 원인과 진행 과정, 관련된 인물과 대화 또는 사건들을 정리해야 하는데 굳이 이런 수고의 기여도를 따져볼 때 쓰지 않는 걸로 정했다. 이건 신경과 근육에 남아있는 중독 물질의 활성화를 매번 막는 듯한 번거로움이 필요하다. 겨우 잠근 문을 비집고 들어오려는 쥐떼의 발톱과 이빨로 긁는 소리를 견뎌야 한다. 부정적 에너지의 구체적인 분출을 막기 위해 그만한 에너지를 들여야 한다. 망각에 대한 신뢰가 없었다면 부질없었을 일이다. 잊히고 다시 뭔가가 진행되고 잊히고 다시 진행되고 잊히고 잊혀서 기분이 별로였던 순간들의 비중을 낮춘다. 기분이 별로였던 원인과 후유증을 묽게 희석시킨다. 이걸 누적시켜 조금 덜 별로인 기분들이 쌓여간다면 그걸로 의미가 있다고 판단하기로 한다. 결국 이렇게 기분이 별로일 때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기분이 별로일 때 쓰게 되었지만 기분이 별로였던 원인과 구체적인 팩트를 나열하며 구체적으로 확장하지 않았으니 다행으로 여기기로 한다. 바람에 불쾌한 기운이 실려와 감각을 거슬리게 만들었다면 그 바람이 지나갈 때까지 조금 기다리면 된다. 이 글은 그 바람과 바람 사이에서 웃음기 지운 표정으로 쓰인 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