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록될 필요 없는 나에 대하여

by Glenn

혼자 있는 시간은 없다. 과거엔 있다고 여긴 적도 있었다. 지금은 다르다. 나를 구성하는 요소들이 온전히 나일 거라고 인식했던 시절에는 혼자 있는 시간이 성립하는 것 같았다. 지금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그동안 부가된 역할로 인한 관계에 대한 강력한 연대감 때문만은 아니다. 혼자 있는 시간을 인정하지 않기로 한 이유 중 하나는 혼자인 나에 대하여 기록할 필요가 거의 느껴지지 않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아의 소멸이 아니다. 확장한 자아로 인해 자아를 다루는 법을 바꾼 셈이다. 혼자를 혼자로 인식하며 기록하는 일은 대부분 부정적인 감정의 퍼즐 맞추기와 같았다. 하나씩 하나씩 끼워 맞추다 보면 거대한 암흑으로 가득한 그림이 완성되곤 했다. 그래 늘 그랬듯 혼자인 나는 이렇게 어둡고 뒤틀리고 앞이 보이지 않지. 이런 과정을 어떤 해소로 여기기도 했다. 기록하면 두뇌와 체내에 쌓여있던 불순물들이 같이 씻겨 내려가겠지. 정화된 정신으로 새 삶을 조금 더 이어갈 수 있겠지. 지금은 나에 대해 기록하지 않는다. 오직 나에 대해 기록하는 일에 대한 효용과 가치의 평단을 높게 쳐주지 않는다. 적절한 시간도 주어지지 않지만 무엇보다 영원의 관계로부터 분리된 나에 대한 지위를 현저히 낮게 평가하게 되었다. 남편과 아빠와 작가와 카피라이터는 별개의 직업군이 아니다. 하나로 인정되고 철저히 같은 목적을 지니며 남편과 아빠가 아니라면 작가나 카피라이터라는 타이틀은 지극히 미미하다. 관계 안에 업이 기거하고 있다. 누군가의 '나'로 존재하기 위해서 기존의 무게들을 덜어낸다. 과거의 나를 지우고 그 자리에 우리의 나를 기입한다. 우리의 나로서 최대한 강력한 캐릭터가 되기 위해 골몰한다. 남편과 아빠가 아니라면 그 무엇도 아니라는 식으로 생각하고 살아가고 대화한다. 나날이 갱신해 가는 행복의 총량을 측정하다가 멈춘다. 나에 대해 기록하면 부정만 남겠지만 우리에 대해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축적하면 다양한 천국의 이미지가 부럽지 않다. 요즘은 한낮에도 도로시를 그리워한다. 사진을 보다가 혼자 웃는다. 나는 우리가 되었다.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그래서 혼자 있는 시간은 혼자 있는 시간이 아니다. 혼자를 기록하는 일도 마찬가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