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7월: 최초 감기 결과 보고서

by Glenn

7월 한 달 동안 이비인후과를 포함한 어린이 병원에 15일 정도 방문했다. 새벽 6시 대기표 발급과 아침 8시 40분 접수까지 더해 하루 3번 방문하는 날도 적잖았다. 도로시는 39도를 넘는 고열 동반 감기 증세를 처음 앓았다. 아내와 나는 밤새 열체크를 하며 해열제를 먹이고 다음날 병원에 방문하는 일정을 반복했다. 주말에만 아픈 아이는 세상에 없어서 나는 오전에 반차를 자주내고 퇴근 시 아이 열이 또 오른다는 전화에 45km 거리를 택시를 타고 바로 병원으로 간 적도 적잖았다. 도로시는 고열이 떨어지지 않던 2주 동안 등교를 하지 않았다. 처제가 집으로 달려와 수일동안 도로시와 놀아줬고 갑자기 병원에 가야 할 때는 자가에서 식사 중이던 처가 부모님들이 병원으로 달려가 접수를 해주셔서 야간 진료를 받을 수 있었던 적도 있었다. 비교적 근거리에 있던 가족이 총동원되어 도로시를 돌봤다. 이번 감기의 특이점은 도로시의 고열만이 아니었다.


이마가 뜨거웠다. 수주 째 낮밤을 지새우며 도로시를 돌보던 아내의 체온은 39.8도였다. 23년을 곁에 있어가며 이런 숫자는 처음이었다. 야간 진료를 받았고 피검사를 하고 열을 진정시키는 주사를 맞고 기력을 조금이나마 회복하기 위해 영양제가 담긴 수액을 맞았다. 고열, 목 통증, 기침 등 아내는 도로시의 증상과 유사했지만 한번 기침을 할 때마다 멈추지 않았고 온몸이 들썩여 당장이라도 부서질 것만 같았다. 이런 몸으로 증상이 지속되는 도로시를 돌보고 밥을 먹이고 약을 먹이고 열을 체크하고 가사 정리를 빼놓지 않았다. 도로시 반친구를 중심으로 주변에 알아보니 고열을 동반한 감기는 대다수 지나가는 증상이었다. 오히려 도로시가 조금 늦은 편이라고 했다. 조금 커서 겪었으니 이 정도지 말도 잘 못하고 의사 표현도 못하는 시기에 이런 일을 겪었으면 우리는 여러 번 무너졌을 것이다. 목에 콧물이 걸리는 감기에 걸려 밤새 숨을 헐떡이는 기침을 하고 한때 호흡곤란도 일으켜 119까지 불렀던 새벽이 여전히 선명하다. 지금은 그때와 다르지만 달라서 더 긴장을 늦출 수 없었다. 새벽 5시에 병원으로 가서 대기하고 퇴근을 병원으로 하는 일이 익숙하게 여겨질 즈음 둘의 증상은 "피크를 찍고" 조금씩 완화되기 시작했다. 매번 다른 날 다른 시간대에 진료를 받을 수밖에 없어서 의사 한분에게 꾸준히 받기 힘들었고 6명에 이르는 의사에게 아랑이의 증세와 경과를 매번 다시 설명해야 했다. 도로시는 그 사이 한번 더 새로운 감기에 걸렸다. 의사는 학교에서 옮은 것 같다고 그랬다. 고열 나고 기침 계속해도 학교에 그대로 다니는 아이들도 많으니까요. 우리는 지쳤지만 지칠 수 없었고 오직 도로시가 낫는 게 우선이었다.


(우리는) 수십 일 동안 피검사, 폐엑스레이, 열 내리는 주사, 수액, 해열제, 감기약, 체온 체크 등을 수없이 반복하며 서로를 돌보고 일상을 챙기고 서로에게 물과 약과 체온을 챙겼다. '열나요' 앱을 하루에도 수십 번 열고 닫으며 경과를 체크했고 타이레놀 계열과 부루펜 계열의 해열제를 시간 간격과 용량을 확인하며 수없이 교차 복용 시켰다. 다음 일정이 다가오고 있었다. 7월 말 휴가. 과거에도 수차례 감기 걸린 도로시에게 무리라는 판단으로 국내외 여행 일정을 취소한 적이 많았다. 이번에도 그럴 것 같았다. 둘의 열이 내리지 않았다면 증상이 완화되지 않았다면 그랬을 것이다. 우리는 목과 코는 아직이지만 염증 수치와 백혈구 수치가 나아졌다는 의사소견을 듣고 일주일 치 감기약을 처방받고 체온계, 해열제를 챙기고 휴가 시작 하루 전 짐을 싸서 비행기에 올랐다. 숙소에서도 에어컨을 거의 켜지 않고 체온 유지에 공을 들였다. 이동하는 차 안에서도 최소한의 약냉방으로 유지한 채 이동했다. 무리한 액티비티는 일정에 넣지 않고 가벼운 전시나 룸서비스 식사로 대체했다. 아내가 갑자기 목에 열이 난다고 해서 코로나 키트를 찾아 헤맨 적도 있었다. 모든 순간 가장 좋은 선택을 하기 위해 서로의 상태와 기호를 확인하고 도로시를 설득했다. 섭지코지의 바람을 맞을 때, 하늘과 바다와 일출봉 배경으로 그네를 탈 때, 테이블 가득 빵과 과일을 올려두고 조식을 먹을 때, 거대한 아쿠아리움에서 해양 생물을 보고 물범 인형을 샀을 때, 서커스 공연을 볼 때, 미디어 아트를 체험할 때, 도로시는 특유의 주변을 밝히는 웃음으로 한껏 즐거워했다. 다행히 아내와 도로시의 증상은 더 심해지지 않았고 무사히 귀가할 수 있었다.


죄책감 느끼지 말자.


이번 7월을 겪으며 나는 저 여덟 글자를 A4지에 프린트해서 집에서 가장 잘 보이는 곳에 붙였다. 아내에게 전하는 메시지였다. 아내는 도로시가 아프면 같이 무너졌다. 일상을 수천 개의 원칙 아래 완벽에 가깝게 관리하는 사람이고 이 때문에 나와 도로시와 우리는 더할 나위 없는 혜택을 누리며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도로시가 아프면 아내는 그 원인을 자신으로 돌렸다. 근원을 파악할 수 없는 어떤 이유로 인해 아이는 자라면서 일정 시즌 아플 수 있다지만 아내는 그 총구를 자신에게 돌렸다. 자신의 소홀함 때문에 도로시가 이렇게 되었을 거라며 무너졌다. 잠시 나와 둘이 있을 때는 자주 눈물 흘렸다. 도로시를 키우며 매번 매 순간 이야기했지만 설득의 영역이 아니었다. 이번엔 나 역시 어떤 계획과 판단으로 저런 걸 써붙일 생각을 한 게 아니었다.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몸이 저절로 이끌렸다. 아내에겐 새로운 각인이 필요해 보였다. (특히 도로시와 관련된) 어떤 위급 상황도 절대 자신의 무한 책임이 아니라는 마인드 세팅이 절실했다. 우리는 7월의 마지막 주말이었던 어제오늘 여행 짐과 집안 곳곳을 정리했다. 그리고 아주 오랜만에 조금 (마음만이라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거실에 앉아 닌자고 만화를 보며 마냥 웃는 도로시 옆모습을 보는 데 목이 매였다. 늘 그랬듯 아내와 나는 눈을 마주치며 웃었다. 우린 저 모습을 위해서 그동안의 모든 시간과 에너지를 기꺼이 쏟아부었다. 무엇보다 아픈 당사자로서 가장 고생했을 도로시를 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