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번아웃인지 노화인지 운동부족인지 전부 다인지

by Glenn

무형의 존재와 혼자 싸운다. 거울의 방에 갇힌 것 같다. 검은 벽에 나를 닮은 흐릿한 것들이 붉은 송곳니를 드러내고. 사방팔방에서 팔다리를 부여잡고 찢어질 듯 당기고. 그림자도 없이 허둥거리다 소리 지르지만 나오지 않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고 아무도 없고 숨이 막히고 눈이 감기지 않는다. 환상의 출처를 골몰하지만. 내 얼굴이 담긴 사진을 피자처럼 조각내는 게 가장 쉽다는 결론에 이른다. 자학의 약효는 자멸이란 걸 알면서도 그게 가장 쉽다는 속삭임에 이마를 기댄다. 안돼 거긴 강이야 안돼 거긴 바다야 안돼 거긴 불이야 다시 어둠을 꺼내면 다시 울기 시작할 텐데. 다시 중력의 세기를 잊고 다시 공기의 달콤함을 잊고 다시 당연한 것들의 당연하지 않은 소중함을 등지고 시간을 함부로 대할 텐데. 다시 최악을 소환하고 다시 피부에 먹을 칠하고 다시 스스로를 칼날 달린 손톱으로 쓰다듬을 텐데. 나를 보호하는 방법을 가두고 잠그고 폐기할 텐데. 혀가 썩고 이가 뽑히고 손발톱이 떨어져 나가고 눈꺼풀이 잘릴 텐데. 거대한 대롱에 내장이 모조리 빨려 형체가 사라지고 텅 빈 껍데기가 구천을 떠돌 텐데. 내 이름을 기억해 내는 시간이 필요하고 다시 잊고 다시 기어 다니고 바닥을 핥고 넘어져 뇌를 다치고 말을 더듬고 불을 지피려 스위치를 찾아 더듬거리고 혼잣말로 화와 짜증을 뿜어내고 오지 않은 허구의 미래를 점액질로 만들어 삼키며 토하고 먹고 토하고 마실텐데. 모든 예상은 틀리고 모든 통제는 무력해지고 모든 시도는 무너질 텐데. 지옥에 대한 믿음으로 지옥을 짓고 사탄의 가면을 쓰고 몸에 불을 붙일 텐데 악몽이 중력이 되고 허상이 괴물이 되고 공포가 진실이 되고 끝내 고온다습 밀폐공간에서 얼어 죽을지도 모르는데. 마지막 표정을 연습할 텐데. 호흡보다 거짓말을 더 많이 할 텐데. 아무것도 새롭게 바꾸지 않고 나아지지 않고 그 사이 남은 모든 존재들이 스스로 바뀌려고 발버둥을 칠 텐데. 무형의 존재와 혼자 싸운다. 거울로 둘러싸인 검은 방에서. 이게 번아웃인지 노화인지 운동부족인지 전부 다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