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내 무심한 표정과 태도
도로시 첫 생일파티를 마쳤다. 한복이 불편했고 도로시는 내내 무심한 표정과 태도로 버텼다. 식을 마치고 한산해진 홀 안에서 도로시를 옆으로 안고 붕붕 뛰어다녔다. 빠른 바람이 뺨과 머리칼에 스치니 까르르 웃었다. 귀가 후 목욕, 분유, 기저귀 후 지금은 잔다.
파격적인 감동을 안겨준 하객. 트친(@wildog72 ) 한 분이 있었다. 초대장 보내기조차 주저하게 한 그 먼 거리를 찾아주셨다. 이 전 딴지일보를 통해 알게 된 분이었고 한때 이직을 도와주셨으며 직접 뵙기도 했다. 특별한 온기를 전해주신 고맙고 멋진 분.
도로시 첫 생일파티는 하객 선정이 결혼식 때보다 쉽지 않았다. 이번 당사자인 나조차 아내와 (아내 지인 초대를) 다니며 (왜 지인 아기 생일파티까지 챙겨야 하는지) 다소 꺼려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게 되었고 아주 가까운 거리의 이들만 초대하게 되었다. 오프에서도 매일같이 보는 (사진 속 도로시를 예뻐해 주고 직접 보고 싶어 한) 지인들이기에 참석 여부에 대한 의심이 없었지만. 상황은 발생했고 주말 출근 건으로 대량 불참 의사를 들었다. 결과적으로 보증인원에 좀 미달되었다. 괜찮았다. 그럼에도 와주신 분들이 많아서.
한복 입은 채로 한복 입은 도로시를 안고 홀을 전전하며 하객들을 맞이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에어컨을 무력하게 하는 더위도 한몫했지만 무엇보다 미끄러운 재질이 겹겹으로 흐드러진 도로시 치마를 매번 정리하며 안고 움직이는 건 꽤 소모적이었다. 가족 중 일부가 도착이 늦어 시작 시간이 미뤄진 것도 초조함을 가중시켰다. 초반의 여유와 기대를 옅어지고 온통 도로시와 아내의 컨디션에만 온 신경이 쓰였다. 사회자는 매너와 진행이 끝내주게 근사했고 오늘 안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부분 중 하나였다. 답례품과 함께 마중 인사를 드렸다. 나도 아내도 과거와 현재 회사 지인들이 대부분이었다. 졸업한 지 십 년이 코앞인데 학교를 같이 다닌 친구들이 와준 것도 너무 고마웠다. 가족 친지들만 남은 홀에서 아내와 식은 스테이크를 먹어치웠다. 소문과 달리 정말, 맛있었다.
다시는 입고 싶지 않은 한복을 갈아입고 짐을 정리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이라는 익숙한 공간을 격하게 좋아하는 도로시는 컨디션을 서서히 회복했다. 그리고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축하금과 선물을 정리하고 파티 장소에서 준 케이크로 저녁을 때웠다.
편의 상 오늘로 잡았지만 실제 도로시가 태어난 날은 1년 전 내일이다. 새벽 2시에 차를 몰고 병원에 도착했고 오후 1시 53분에 도로시가 태어났다. 그날의 사진과 아까의 사진과 그 사이의 수많은 사진과 영상들이 휴대폰과 컴퓨터, 카메라와 SNS에 있다.
도로시는 점점 예뻐지고 있다. 예쁠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하루에도 수개씩 늘어난다. 아내 역시 마찬가지다. 아내를 사진으로만 봤던 지인들은 오늘 실물을 확인한 후 내게 정말 사진 못 찍는다고 욕설과 폭언을 퍼부었다. 이런 환경에서 미에 대한 체험적 시각적 지식의 축적 속도를 제어할 수 없는 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결여의 대부분은 늘 내게 잔존해있고 나는 우리의 틈 사이에서 연명하며 희열과 쾌감에 몸서리치고 있다. 이 결정적 관계 안에서 화석이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