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이들의 꿈

환상이 깨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by 백승권

수많은 질문을 받고 또 던진다. 대부분 질문에 그친다. 묵묵부답, 질문한 사람도 대답할 사람도 처음부터 정해져 있었다. 이 땅의 수십만 크리에이터들이 그 답을 찾기 위해 신대륙을 찾듯 헤맸었겠지만 과연 그 미지의 답안지를 손에 얻은 자가 몇이나 될까? 광고, 결국 주관식 문제, 느낌표 하나로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좋아하는 이유와 정도는 각자 천차만별이겠지만 광고를 미래의 직업군으로 정하게 되는 이유 중 하나는 결과물에 대한 시각적 충격이 있을 것이다. 내가 받은 감동을 직접 만들어보고 다른 이들에게도 느끼게 하려는 의욕은 광고라는 세계에 ‘참여’하고픈 충분한 동기부여가 된다. 공무원, 교사, 의사 같은 확실한 인지도를 지니고 있지는 않지만 감성을 이성적으로 옮기는 - 직접 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 희열감을 안겨주기에 사회적인 위치보다 다소 개인적인 이상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광고라는 직업은 판타지의 실현을 가능하게 해주는 꽤 있어 보이는 인생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일단 시작된 꿈의 미로를 향한 첫발은 꽤 순탄해 보인다. 꿈 자체만으로도 멋지니까. 주위의 오색찬란한 광고 이미지들과 단 한 줄만으로도 모든 사람들을 쓰러뜨릴 듯한 카피가 넘실대고 있다. 성공적인 캠페인은 사람들의 동선을 바꾸어 놓고 때로는 고정관념에서 탈피시키기도 한다. 멋진 광고들을 찾아보고 거기서 주목할 점들, 공통점과 차이점, 고민의 흔적, 보는 이와 만든 이의 관점에 대해 두루 알아보는 초기단계에서 광고라는 꿈을 가진 이는 ‘경계와 한계는 없다’ 고 믿어버린다. 나도 할 수 있고, 이 길만이 나의 길이라고 믿게 된다. 내 손으로 인류의 관점과 세계의 취향을 바꿔놓겠노라고 다짐한다. 이 얼마나 행복한 순간인가?

하지만 다음 한발 또 한발 디딜수록 새로 산 운동화로 갯벌을 걷는 기분이 든다. 가장 단순해 보이는 결과물이 가장 복잡한 과정을 통해 나온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고비, 내가 생각했던 광고는 이렇게 질척거리는 과정이 아니었어. 의견의 충돌이나 전략의 혼란 따위는 필요 없다고. 오로지 아이디어, 그래 기발한 생각 하나면 땡 아니었어? 누군가를 깜짝 놀라게 할 수 있는 아이디어 하나면 인류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여겼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아니라 점프하고 날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이게 답이 아니라니? 그럼 내가 지금껏 봐온 건 뭐지? 내가 만들려고 했던 것은? 이게 광고였어?

광고에 대한 수많은 꿈들이 갈리는 순간, 낙엽처럼 달려있던 미래의 청사진들이 하나둘 떨어지게 된다. 하지만 이것 겨우 첫 단계일 뿐. 남아있는 환상이 깨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