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함을 인정한다
처음엔 당황해한다. 어이없어한다. 조금 진정한 뒤에는 억울해한다. 속으로 분노하기도 한다. 다시 정신을 가다듬어 본다. 과녁을 바깥이 아닌 안으로 돌려 본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해본다. 처음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결국 내가 선택했고 더 과감하지 못했고 더 확실하지 못해 영리하지 못해 생긴 일이라고 생각해본다. 당연히 100% 납득은 안 가지만 그래도 설득해본다. 대부분의 내면적 갈등은 여기에서 진화된다. 시간의 바람이 남은 재를 날려 보내면 망각이 찾아온다. 불편한 기억은 그렇게 지워진다.
문제는 변수, 내 탓으로 아무리 돌리려 해도 잘 안 된다. 같은 형태의 스트레스가 외부에서 반복되고 쌓이면 이전의 내용물들은 소멸이 아닌 퇴적된다. 쉽게 사라지지 않을 화석으로 각인된다. 도드라지고 선명해진다. 낫지 않는 상처가 되고 약도 듣지 않는 만성질환이 된다. 개선의 여지는 점점 희미해지고 고된 과정은 되풀이된다. 상한 마음이 손에 잡히는 것이라면 어떻게든 끄집어내어 불에 던질텐데. 아무리 내편이 되어 노력한다 해도 연고를 덕지덕지 문지른다 해도 상처는 여전히 골이 깊다. 잘 낫지 않는다. 방법이 없다.
소심함을 인정한다. 예민하고 세심하며 날카롭고 필요 이상의 까칠함을 드러내는 경우도 있다. 굳이 변명을 하자면 때와 상황에 맞는 말과 행동은 가릴 줄 안다는 것. 역할을 인지하고 선을 지킨다. 그게 정도이고 당연한 거니까. 이해하려 하지 않아도 맡은 위치에 집중하다 보면 그렇게 된다. 다 보여줄 필요도 에너지를 소모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Give&Take가 늘 같은 비율로 성립되는 것이 아니더라. 나는 매번 ‘을’의 자리를 택했다.
후유증은 외딴곳에서 찾아왔다. 아니 땐 굴뚝이라 여겼는데 연기에 질식할 지경이었다. 반대편에서 의도했던 그러지 않았던 나의 내면엔 그늘이 드리워졌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이해의 여지도 보이지 않았다. 원래 사는 게 이렇지 덮어두려 해도 검어지는 마음은 표정까지 힘들게 했다. 상처가 시작되는 지점을 애써 동정하려 했지만 악수하려 했지만 다가서려 했지만 굳게 닫힌 문은 두드려도 소리가 나지 않았다. 이상한 공간, 타협이 성립되지 않고 나의 잘못조차 인정되지 않는 불협화음의 온상. 어지러웠다. 지겨웠다.
시간이 해결해주길 바라지 않는다. 어제 일로 묻어버리기 무섭게 갈등은 -마치 엉겅퀴처럼- 오늘의 담으로 넘어온다. 풀리지도 묶이지도 않는 형태 없는 횡포, 견디기도 부숴버리기도 쉽지 않은 관계의 두려움. 유지하기 위해 보수하기엔 꽁꽁 싸매져 닿기 어려운 두터운 감정의 울타리. 돌이킬 수 없겠죠, 당분간. 물음표와 말줄임표로 여전히 그렇게 지낼 수밖에. 알면서도 어쩌지 못하는 날, 그리고 고귀하신 귀하에게 조금 더 기회가 주어지길 바라고 또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