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난 작가. 집이 없어
고해준..
여기가 너희 집 같냐?
해준아. 인사해. 미영이야.
딱 하루만 혼자..
밖에서 사람들도 만나고,
수다도 떨고,
맛있는 것도 사 먹었으면..
영화도 보고.. 책도 읽었으면..
이번만 참아야지
이번만 넘겨야지
하고 산 게
벌써 20년이네..
애한테 다 컸다고 하지 마.
그게 좋은 말인 줄 알아?
어른들 마음 편하자고 하는 소리지, 무책임하게!
자기 때리는 놈 얼굴
매일 보고 사는 사람
마음을 알기나 해?
몇 년만 기다려봐.
마리도, 부모 형제랑 연 끊는 게 자기 인생에
얼마나 필요한 일인지 바로 이해하게 될걸?
가족, 그게 뭐라고.
앞으로 네가 어떤 선택을 하든 죄책감 가지지 마.
그건 다른 사람들 몫이지.
깨고 나면 엄마가 없을까 봐 무서워..
힘들 때마다
어린 딸에게 모든 걸 얘기하시는 분이셨어.
사는 게 얼마나 힘든지..
다른 가족이 속을 얼마나 썩이는지..
집에 돈이 얼마나 부족한지..
감추는 거 없이 하나하나 다 얘기하셨지..
너는 남이 불행해 보이면
꼭 웃음 참는 거 같아.
뭐든지 제 값 주지 않으면
오늘 같은 일을 또 치르거나
더 큰 걸 내줘야 하는 거야..
자기 좋을 대로 사람 오해해 놓고
멋대로 내적친밀감 느끼고,
멋대로 믿어놓고는 X발..
평범하고 행복한 사람들이 불편해요..
밥은 잘 먹고 다녀?
모든 관계가 노력이더라고.
원래 뭐든지 인정하기까지가 제일 힘든 거야.
저 새X들은 어려서 그런 게 아니야ㅋㅋ
그냥 인간 자체가 그런 거야~
저런 새X들은 사람하나 X신 만드는 것도 장난이고,
심지어 죽게 만들어도 낄낄대고 다녀.
쌤은 네가 안 바뀐다고 해서 실망하지 않아.
세상엔 굳이 안 갚아도 되는 것도 있어.
나쁜 일이 생길까 봐 그러는 건지,
나쁜 일이 생겼으면 싶은 건지,
엄마가 겁냈건 게.. 귀신이 아니었어...
나도 가끔 나 죽여버리고 싶어...
난 항상..
내가 죽고 싶다는 생각은 안 했거든.
저 둘을 죽이고 싶다는 생각을 했지.
결핍의 줄을 세운다. 전엔 죽을 것처럼 힘들었는데... 지금은 그 정도는 아냐. 이런 이유로 우선순위에서 배제되는 것들이 있다. 일부는 알아서 망각의 늪에 수장되기도 한다. 모두 상시 알람 모드로 기억에 모셔두면 일상은 불가능하지. 그렇게 견딜만한 결핍들만 남아 공존한다. 어떤 타인에게도 발설하기 힘든 감정과 경험. 나이가 몇 개냐. 애도 아니고. 다들 비슷하게 대강 넘기고 지내겠지. 꺼내봐야 이미 지난 일이고 책임을 묻긴 더더욱 어려우며 결국 혼자 애만 끓을 일. 가까이 둬봐야 좋을 게 없다고 내부 결론을 내린다. 부유하던 먼지와 어둠이 머물 자리를 마저 빼앗긴다. 주체에게 조차 관심을 잃은 결핍들은 나이 드는 시간과 함께 점점 희미해진다. 그러다가 아득한 기차 소리가 들리고 실체를 분간하기도 전에 무엇인가가 뜨겁고 날카로운 충격과 진동으로 육체와 정신을 헤집는 섬광을 분출하며 지나갔다. 부서진 기억이 분리된 피와 뼈와 살점과 머리칼이 되어 뒹굴고 있었고 그제야 희미해진 결핍의 일부가 다시 선명해졌다. 지난 며칠간 와난 작가의 집이 없어를 보다가 이런 증상이 반복되었다.
사전 동의 없이 이유도 모른 채 타의로 태어난 인간은 사는 내내 납득할 수 없는 과정을 겪다가 죽는다. 그 사이 무수한 충돌과 갈등, 적응과 시행착오, 고통과 슬픔, 절망과 자학을 겪으며 일정한 카테고리로 분류되는 삶을 살게 된다. 공장에서 만들어진 제품들은 출시 목적, 유통기한, 무상 수리 기간이라도 있지. 인간은 어릴 땐 여기저기 휩쓸리고 컸을 땐 휩쓸린 이유를 찾다가 최후를 맞는다. 맑은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다 고인 눈물로 끝을 맺는다고 그동안의 생에 의미가 부여될까. 피해와 가해의 비율을 나눌 수 있을까. 가해자가 피해자를 낳고 피해자가 가해자로 자라고 가해자가 죽을 고생을 하며 다시 피해자로 연대하고 그 사이에 연민과 희망이 돋아난들 상처 위에 잠시 연고를 문지르고 거즈가 덮인 들 한번 있었던 일이 두 번 지워질 수 있나. 야 우리도 살기 힘들어서 어쩔 수 없었어. 그나마 너는 편하게 사는 거야.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냐. 다른 집은 더해... 이런 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생산자들이 하고 있는데 무슨 소용과 개선에 대한 기대가 있나. 과거의 누군가에게 좋은 기억이 있다면 생존 본능이 윤색하고 끼워 맞춘 조작된 기억은 아닐까. 좋은 기억을 여럿 쌓아두어 현재의 삶이 완성되는 거라면 내 현재의 삶은 어떻게 좋아질 수 있을까. 엉망인 재료를 섞어봤자 엉망인 요리가 나오겠지. 레시피와 칼질, 불조절을 알려준 사람도 없는데. 내가 얼마나 불행했는지 자각하면 뭐 해. 그게 타인에 대한 관점을 바꿔줄 긍정적 계기가 될 확률이 얼마나 될까. 회피성향이 더해지는 건 아닐까. 저 인간도 날 가해하진 않을까 의심으로 뒤덮이는 건 아닐까. 가장 가까운 자들에게 폭력이 각인되면 누굴 믿을 수 있을까. 도망? 조금 길어진 팔다리로 집밖으로 뛰쳐나온들 비슷한 괴물들이 모여 지옥의 모닥불로 자기 삶을 다시 불태우고 있는데 그 사이에 껴서 어떤 살육 파티를 벌여야 할까. 도움을 배우지 못한 자들끼리 서로를 도울 수 있을까. 편견에 길들여져 자기 자신마저 옭아맨 자들이 타인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을까. 애초 기준점 자체가 비뚤어지게 설정되어 있는데? 치이고 뒹굴다가 구체적 꿈을 꾸는 자들도 있다. 복수. 복수를 실행에 옮겨야지. 맞은 만큼 때려야지. 당한 만큼 갚아야지. 찔린 만큼 쑤셔야지. 핏발 선 눈깔이 진정될 날이 없다. 그러다 어느 날 가해자 보다 자신의 그림자가 더 커졌다는 걸 알면 복수는 범죄의 영역으로 들어선다. 그땐 정말 야만의 길에 들어서게 된다. 낙인은 살을 도려내지 않는 한 사라질 수 없다. 낙인이 너무 많아 감추고 살려면 거짓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거짓말이 쌓이다 보니 원본의 내가 누군지도 모르겠다. 생산자들의 혐오로 둘러싸여 살아왔더니 원래의 내가 누구였는지 돌아가는 게 맞는지 판단이 안 선다. 돌아갈 곳이 환상과 환각이더라도 내가 아닌 타자라면 그나마 낫다. 집이 없어에서 가장 오랫동안 멍해졌던 장면은 고해준의 친구 엄마가 고해준에게 안부를 묻는 장면이었다. 대답할 틈도 없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걱정과 진심 섞인 질문 공세를 보며 나는 잠시 고해준이 되고 싶었다. 고해준과 전혀 다른 삶을 살았으면서도 그때만큼은 고해준에게 무엇이 없고 무엇을 갈망했으며 무엇으로 잠시 감싸이고 있었는지 알 것 같았다. 착각이더라도 그때만큼은 고해준이 듣고 겪고 있는 것들이 내가 듣고 싶고 겪고 싶은 부분과 조금 닮아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게 없는 것과 고해준이 없는 것은 대부분 다른데. 아주 미세하게 겹치는 부분이었을까. 그런 말을 듣고 자란 고해준은 친구 엄마를 통해 잠시 잃어버린 세계로 돌아올 수 있었고 나는 그 장면을 오랫동안 정지 상태로 바라보며 내가 잃어버린 세계를 가늠할 수 있었다. 나도 저 시절에 저런 말이 듣고 싶었구나. 나는 저런 사람이 없었구나. 그래서 돌아갈 수 없구나.
결핍 없는 삶은 오랜 선망의 대상이다. 추앙까지는 아니더라도 궁금증이 가시지 않는다. 평균이 50%라면 누구는 5%고 누구는 95%일 텐데 결핍 5%의 삶은 결핍 95%의 삶과 얼마나 다를까. 알고 보면 다들 그늘이 있어...라는 말은 얼마나 게으른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는 사람들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허언을 내뱉는 자들이 마시는 공기는 얼마나 아까운가. 돌이킬 수 없는 것들만 세고 있다가 나이는 얼마나 빨리 먹게 될까. 생산자들의 나이가 되었을 때 자신을 어디까지 덜 미워할 수 있을까. 또래 집단은 얼마나 허술할까. 결국 보이지 않는 말과 행동과 고민으로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는 진실은 얼마나 위태로울까. 집이 없어는 한국인이 겪어야 하는 근원적 결핍의 총합을 둘로 나눠 고해준과 백은영으로 그려낸다. 백번 스스로 목숨을 끊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그들의 삶을 기어이 꿰매고 수리해서 질질 끌고 다닌다. 대화를 멈추지 않는다. 비겁한 타인들이 생존에 대한 명분을 제공해주지 않았다면
스스로라도 그 이유를 가공해서라도 땅바닥에 발 붙이고 서 있어야 한다고 명치를 때린다. 기존의 유사 소재 작품들이 거울을 들고 와서 봐봐 여기가 니 멍자국이야. 넌 상처받은 자야 알았지. 내가 너 이해한다. 이런 수준이었다면 집이 없어는 메스로 뼈와 근육을 가르고 초음파, 엑스레이, CT, MRI, 최면을 동원해 전시하고 시술하고 수술하고 봉합한다. 아주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작품.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통해 추천해 준 위근우 작가님께 고마운 인사를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