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체 기능의 실질적 저하 앞에서 저항과 순응의 작동원리를 따지는 건 인간의 궁색한 상상력이 만든 허상적 개념 아닐까. 방금 이 문장은 오랜 시간 밤운전의 영향이다. 평소 첫 문장을 이렇게 길게 쓰지 않는다. 운전을 하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운전을 하면서 이런 일들에 대해 써야겠다고 생각하고 운전을 하면서 이 생각을 반드시 실천에 옮겨야지 다짐하다가 운전을 하면서 휴게소에 들르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셀프주유소에 들르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차선을 바꾸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다른 음악으로 바꾸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갑자기 온 전화가 내비게이션을 가릴 때 급하게 끄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뒤에서 아내나 도로시가 주는 간식을 먹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옆에 사둔 호두과자를 집어 먹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옆에 놓은 커피를 빨대로 마시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속도를 줄이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시속 120km를 넘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비상등을 켜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톨게이트를 지나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졸리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내외부 온도 차이 때문에 앞유리가 뿌옇게 변하면 급하게 FRONT 버튼을 눌러서 없애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이야기를 하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졸음이 오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핸들을 좀 더 꽉 쥐고 운전하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브레이크를 자주 밟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계속 졸려서 운전을 하면서 계속 졸음과 피로에서 벗어나려고 다양한 시도를 하고 운전을 하면서 해가 지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밤이 되기도 하고 운전을 하면서 마주 오는 차들의 밝은 헤드라이트 불빛과 앞에 있는 차들의 붉은 후미등이 번져 보이기도 하고 그럴 땐 정말 초긴장 상태가 된다.
낮운전의 졸음과 피로가 문제가 아니다. 밤운전은 공포와 두려움의 압박 속에서 운전하게 된다. 신경이 곤두서고 안압이 높아지고 척추와 등근육이 뻣뻣해진다. 안경 렌즈를 바꾸기 전엔 더욱 그랬다. 교정시력이 문제가 아니었다. 손에 든 휴대폰과의 거리를 벗어난 모든 사물과 형체가 흐릿했다. 밤운전은 더더욱 그랬다. 모든 공기가 흔들리고 모든 빛이 번지고 모든 선이 부서졌다. 0.1초라도 집중이 흐트러지면 위험이 급습할 수 있었다. 특히 고속도로에선. 아무리 자주 다녀도 동네로 진입하기 전 모든 차선이 불안했다. 얼마 전엔 속도를 좀 줄였더니 정신없는 추월이 이어졌다. 납득했다. 나도 전에 그랬으니까. 차선 변경이 힘든 상황에서 앞차의 저속이 짜증 난 적 있었으니까. 시야가 제한적인 밤도로에서 추월을 연속으로 당하는 일은 감도가 달랐다. 모두가 시속 90,100,160인 고속도로에서 80은 매우 답답할 수 있는 속도였다. 경로가 바뀌기 때문에 계속 오른쪽 끝차선으로만 갈 수도 없었다. 피로가 누적된 상황에서 시야가 제한적인 상황에서 이런 외부적 상황까지 겹치면 난감했다. 그리고 이런 상황을 글로 쓰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기도 했다. 하지만 집에 도착하면 긴장과 각성으로 뒤범벅된 신체와 정신을 익숙한 공간에서 진정시켜야 했다. 그리고 진정되면 잔여 느낌도 같이 사라졌다. 잔상들을 기워내어 글을 쓸 수도 있었겠지만 쓰이지 않았다. 의지와 충동, 적당량의 기억의 조각들이 동시에 겹쳐야 겨우 글이 될 수 있는데 거기까지 닿지 않았다.
운전을 시작한 지 11년 정도가 되어가는데 밤운전은 초반 3년을 제외하고 내내 버거웠다. 그나마 얼마 전 정기 검진받는 안과에서 새로 처방받은 시력으로 안경 렌즈를 바꾼 후부터는 낮운전의 풍경은 완전 선명해지고 밤운전의 조바심은 조금 낮아졌다. 불안과 공포가 눈을 부릅뜨고 온몸에 힘을 주고 정면을 주시하며 운전에 몰입하게 만들 때마다 지금 이 극단적인 상황을 글로 옮기고 싶었다. 하루 동안 평창과 대관령과 강릉을 오갈 때 힘들었던 기억이 남아있다. 사진과 앨범으로도 남긴 좋은 순간들이 많았지만 평창 숙소로 돌아오는 길은 정말 극단적 피로감에 힘겨웠다. 주말 명동 롯데 호텔에서 지인 결혼식에서 축의금 받는 일과 정산을 도와주고 늦은 밤 돌아오는 길은 여전히 전설처럼 남아있다. 명동에서 나올 때부터 집에 도착하기까지 번져가는 빛과 어둠 속에서 혼이 나가버릴 것 같았다. 내 뒤엔 동승자가 있었고 흔들릴 수 없었다. 늘 무사히 돌아왔지만 장거리 밤운전의 진한 피로감은 고액 채무처럼 남아있다. 거인의 엄지로 내 눈알을 터뜨릴 듯 눈꺼풀을 짓눌러도 감을 수 없었다. 만약 사고와 가까워지는 순간이 오면 내 본능은 핸들을 어느 방향으로 꺾을지 상상하기도 했다. 반드시 반드시 내가 뒷좌석의 보호막이 되어야 하는 오른쪽으로 꺾어야 한다고 마음속으로 수백 번 시뮬레이션했다.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그런 순간이 온다면 본능에 박히도록 트레이닝시켜야 했다. 언제든 다시 장거리 운전을 할 수 있다. 언제든 다시 밤운전을 할 수 있다. 언제든 다시 둘 다 동시에 할 수 있다. 렌즈를 바꾸고 나아져서 다행이다. 정체불명의 오브제들이 선명한 피사체처럼 펼쳐진다. 늘 지나는 길과 상점, 가로수와 횡단보도, 다른 아파트 단지와 멀리 신호대기 중인 차들도 갤러리에 걸린 작품들처럼 보인다. 운전을 좀 더 즐기고 싶다. 물론 사고의 가능성은 늘 가까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