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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언자

by 백승권

여기까지 올 줄 몰랐어. 이건 어제의 지난 시즌의 아까의 또는 내가 모르던 또는 알던 또는 어떤 기분이 아니야. 일렁이는 줄 알았는데 울렁거리고 있었지. 어지러운 줄 알았는데 토하고 있었지. 못 일어나는 줄 알았는데 울고 있었어. 맞고 있는 줄 알았는데 사방의 벽에 머리를 찧고 있었어. 피가 터져 몸이 젖고 뼈가 부러져 살을 찢고 귀를 자르고 싶어 너의. 눈을 벗기고 싶어 이제. 숨은 그만 쉬자 아까우니까. 죽었으면 좋겠어 우리만 빼고. 끝냈으면 좋겠어 모두 없애고. 복수를 해야 한다면 방식을 가리지 않고. 독해져야 한다면 수명을 조금 줄여서라도. 인간으로 칭하고 싶지 않은 가면들 사이에서 작은 목소리도 내지 않고 불을 지르고 싶어. 다 탈 때까지 구경할 거야. 비명이 끝날 때까지 귀 기울일 거야. 간절해지면 꿈은 현실이 된다는데. 얼마나 간절해져야 너희가 멸망할까. 나는 증오를 멈추고 미뤄둔 영화를 플레이할까. 어디가 세상의 끝일까. 왜 나는 나를 말리지 않았을까. 왜 너는 나를 가로막을까. 왜 우리는 나가지 못할까 왜. 너희가 나가. 우리의 세계에서. 여기까지 올 줄 알았어. 그게 지금일 줄 예상하지 않았을 뿐. 이런 글은 보통 과거의 해석보다 미래에 대한 예언과 매뉴얼이더라. 올 줄 알았어. 기다린 건 아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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