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화
16일 8:00 PM. 테헤란로는 막혔다. 다리가 끊겼는지 차들은 정지하고 있었다. 역삼에서 천호 방향으로 향하는 차 안. 밤이고 비가 오고 퇴근길이었다. 난 정신없이 휴대폰으로 트윗을 나르고 있었다.
친구 아버님을 찾습니다.
팔로워가 많다고 여기는 이들에게 RT를 요청했다. 꽉 막힌 도로에 갇힌 좁은 차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허기와 멀미 사이에서 인상을 찌푸리는 것보다 알리고 널리 퍼뜨려 보다 더 많은 이들의 도움을 요청하는 길 밖에 없다고 여겨졌다. 일면식 없는 사람끼리도 인사가 통하는 공간. 트위터는 최소한의 노력으로 기대할 수 있는 가장 큰 잠재력을 지닌 도구였다.
길동 사거리에서 내렸다. 20장 남짓의 전단지와 박스 테이프. 좁은 골목부터 훑기 시작했다. 약국. 슈퍼. 놀이터. 조명이 비추는 벽면 등, 눈과 걸음이 멈출만한 곳을 선정했다. 더 좁은 골목길과 더 안쪽의 주차장, 더 안쪽의 덤불과 저 건너편의 갓길을 주시했다. 도보로 실종자를 찾는 최선의 방식이었다. 주택가를 지나 조금 큰 길가를 지나 아파트 단지로 다시 들어갔다. 어둠은 깊어져 갔고, 그는 아직 보이지 않았다.
열 시간 전(16일 10:30 AM). 아침에 전화기로 들은 그의 목소리는 낮고 깊었다. 회의에 늦은 그에게 도착시간을 물었더니 전화가 왔다. 개인적인 일이 있겠다 했지만 묻지 않았다. 그건 말 그대로 개인사니까, 먼저 말하지 않을 권리도 행여 묻더라도 대답을 피할 권리도 있다고 여겼다. 그리고 순수든 관심이든 질문은 그를 불편하게 할 것만 같았다.
그에게 다시 전화가 온건 그로부터 9시간가량이 지난 후였다. 그의 아버지는 이틀 전 오전에 집을 나가셨다 했다. 60대 남자, 보통의 키와 체중을 가진 분. 알츠하이머와 합병증을 앓고 있어 비 오는 날씨에 그가 아직 이 근방을 돌고 있다는 짐작은 그가 비를 맞고 젖은 옷으로 돌아다닐 것이라는 예상과도 맞아떨어졌다.
16일 8:30 PM. 스무 명 남짓의 인원이 흩어졌다. 메신저로 서로의 상황이 전해졌다. 중간중간 제보가 있었고, 확인했고, 그 주변을 중심으로 찾기도 했다. 도보로, 차로 인근을 뒤졌다. 목격된 장소를 중심으로 주택가, 시장, 아파트 단지, 놀이터, 주차장, 다리, 도로변 등을 훑었다. 주택가는 미로 같았다. 적은 개수의 가로등은 곤두세운 시야로도 적응을 어렵게 했다. 그늘진 벽은 텅 비어있었고, 거리는 젖어있었다. 비가 그치지 않았다. 이따금 멈추었지만 우산이 없다면 힘들었다. 도보로 이동했다. 돌고 돌고 붙이고 붙이고 묻고 묻고 돌고 돌고. 도시는 점점 어두워지고, 새벽은 빨리 왔다. 위장은 비어있었고, 구두는 젖어있었다. 둘에서 혼자로 찢어졌다. 반경은 넓어졌고, 주위는 고요해졌다. 택시가 많이 보였고, 지나는 사람들은 적었다. 아버지를 찾고 있는 그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나는 상상을 감당할 수도 없었다. 피로가 잠식하기엔, 눈이 감기기엔, 걸음이 느려지기엔, 행인들을 그냥 지나치기엔, 해결하지 못한 일은 너무 명확했다. 모두가 분주히 노력하고 있었다. CCTV를 확인하고, 기관에 정보를 전달하고, 짐작 가는 곳을 다시 돌아보고, 서로의 상황을 공유하고, 휴대폰 배터리가 줄어드는 것을 지켜보며 단 한 사람을 찾고 있었다.
텅 빈 골목길. 고양이 울음소리. 텅 빈 운동장. 젖은 모래들. 텅 빈 놀이터. 미끄럼틀만. 골목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동네 상점도 하나 둘 문을 닫고, 새로운 길로 발을 디딜수록 심장은 빨리 뛰었다. 비는 그치지 않고, 가방도 바지도 흠뻑 젖었다. 몇 시간 후면, 회사로 돌아가 업무를 해야 했다. 집으로 향했다.
17일 12:30 AM. 터덜터덜. 도보로 약 2시간 거리 정도. 어디로 가셨을지 예측할 수 없으니, 반경 10km 정도는 발견 예상지역이기도 했다. 택시를 타는 게 맞지만, 그의 가족들은 끼니를 걸렀을 것이다. 잠을 못 이룰 것이다. 지금도 사방으로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을 것이다.라고 생각하니, 제 몸뚱이 하나 챙기는 게 부질없다 여겨졌다. 그리고 비 오는 8차선 갓길에서 길을 잃었다.
17일 2:30 AM. 익숙해질 줄 알았던 낯선 길은 끝나지 않았다. 택시를 세웠다. 문 닫은 지 오래된 대형공원과 무성한 나무들과 텅 빈 도로 사이에 서 있던 사람을 태우고 놀란 기사 아저씨, 자초지종을 말씀드렸다. 찾는 데는 자전거가 수월할 거라고, 택시기사들 운집하는 사무실에 비치하면 좋을 거라고 안타까운 심정을 덧붙이셨다.
인사하고, 내리고, 문을 열고, 젖은 가방을 내리고, 젖은 구두를 벗고, 젖은 양말을 벗고, 젖은 바지를 벗었다. 축축한 몸을 씻고 허기를 채웠다. 죽기 싫어서 먹어지더라. 기운 생겨야 내일 또 찾지. 스스로를 독려했다. 남은 이들은 아직도 거리를 헤매고, 남은 이들은 아직도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그 사이 트위터는 난리였다. 예상했던 것 이상으로 확산속도는 빨랐고, 사람들은 걱정하고, 위로하고, 독려하고 있었다. 전화번호, 이름 등, 신상정보가 곳곳으로 날라지고 있었다. 누구라도 좋으니 기억해다오. 손을 뻗어다오 찾아다오, 데려와 다오. 제발, 손이 모아졌다.
다수의 기도가 물리적으로 어느 한 사람의 움직임을 제어할 수 있을까?
믿음이 약한 자에게, 기적은 의심의 대상이었다. 이런 순간에조차 의구심이 들었다. 사람의 손이 사람의 손을 당길 수 있는 거라고, 사람의 목소리가 사람의 귀에 닿을 수 있는 거라고,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과신했다. 그것을 믿는 일은 너무 쉬웠으니까. 그래서 비슷한 일들이 발생하면, 수많은 군경 공무원들이 산과 들을 헤매고, 전국에 사진을 배포하고 TV와 라디오로 방송을 하고 인터넷으로 알리는 거겠지. 사람이 사람에게 전해지도록.
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조금씩 들 정도로. 시도는 다양했지만,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 평소 잘 안 쓰던 몸을 뉘었다. 눈을 붙일 자격이란 게 존재할 리 만무하면서도 착잡하고 무겁고 깊고 낮은 기운이 눈 코 입 주변을 서성거렸다.
17일 8:30 AM. 눈을 떴다. 변화는 없었다. 가다듬고 회사로 향했다. 동네 사람들, 행인들, 어른들, 옷차림, 그들의 얼굴, 그들의 움직임, 그들의 정체. 길에서도, 정류장에서도, 버스 안과 지하철 안과 계단과 인파 속과 건물 사이에서 그의 닮은꼴을 찾고 있었다.
17일 10:30 AM. 아직 그는 우리에게 나타나지 않고 있었다. 달음박질하며 밤을 지새운 이들이 있었고, 눈을 뜨기 바쁘게 다시 현장으로 출동한 이들도 있었다. 단지는 쉴 새 없이 출력되고 있었고, 구역을 나눈 이들이 체계적으로 세세하게 다시 지도와 장소와 동선을 훑고 있었다.
트위터로 한번 더 도움을 요청했다. 책상 앞에 앉아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게 다였다. 일을 해야 했다. 밥을 먹듯, 숨을 쉬듯, 화장실에 가듯, 누구도 대신해주기 힘든, 해야 할 일은 해야 했다. 머리와 마음은 아직 어제 새벽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손은 제 할 일을 하고 있었지만, 이게 맞는 일인지 확신은 없었다. 점심이 지났다. 모두가 찾기 시작한 지 17시간, 18시간. 19시간이 지나고 시선이 하나의 문자메시지에서 멈췄다. 17일 3:30 PM.
"찾았습니다."
주위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그는 실종된 곳에서 도보로 한 시간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발견되셨다고 했다. 버스를 타고 이동했다고 했고 산 주변에 있었다고 했다. 무엇보다도 큰 부상이나 염려할 정도의 건강상태는 아니었다고 전해졌다.
환호하지 않았던 것은, 그럴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당연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난 것뿐이었다. 다른 경우의 수를 생각하는 것조차 너무도 위험천만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제자리로 돌아옴으로써 모든 사람들의 마음도 다시 원래의 자리를 찾을 수 있었다.
격한 감동이나 눈물이 나 뜨거운 박수도 전하고 싶지 않았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다행이다. 이 말 밖에 할 수가 없었다. 이것 외에 다른 감정표현이 떠오르지 않았다. 아들은 다시 아버지를 찾았고, 아내는 남편을 찾았으며, 모두는 웃음을 되찾았다. 남은 이들은 어제와 오늘을 돌아보며 스스로를 대견해 여김이 아닌 그저 안도하며 감사할 따름이었다.
행방을 수소문하고 걱정을 나눴던 사람들은 신기한 체험을 했다며 감상을 공유했다. 이토록 누군가를 찾아 헤맨 적이 있었나? 이토록 간절히 누군가의 행방을 궁금해한 적이 있었나? 이토록 여러 사람을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게 할 강렬한 동기부여가 있었나? 어느 누구도 이유를 묻지 않고 도시의 밤을 휘젓게 한 적 있었나? 이게 과연 같은 일을 하는 사람들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질 일인가? 오히려 주변의 의아함을 사고 있는 일은 아닌가?
자의가 아닌 타의였다면, 누구도 자신의 시간을 내주지 못했을 것이다. 누구도 눈에 불을 켜지 않았을 것이고 어떤 성과를 기대하지 않았을 것이고 이러한 좋은 결과도 얻기 힘들어졌을 것이다. 그는 돌아왔다. 그리고 우리도 돌아왔다. 지난 19시간. 아주 평범한 이들 사이에서 평생 한번 겪을까 한 경험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