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리 공감. 생리혈은 빨간색이다

김보람 감독. 생리 공감

by 백승권

나는 생리를 하지 않는다. 할 수 없다. 성별이 여성이 아니다. 여성의 몸을 갖지 않았다. 앞으로도 높은 가능성으로 그럴 것이다. 하지만 내 주변은 다르다. 체감 및 커뮤니케이션 빈도수만 따지면 99%가 여성이며 생리 경험 당사자다. 그리고 이들이 나와 내 시간과 하루와 일상과 인생과 기분과 일과 사랑과 감정과 이성과 선택과 판단과 결정에 모든 영향을 미친다. (생리를 소재로 한) 이 글에서 무엇을 말할 것인가. 이 글은 내 주장 의견 편향 아무것도 중요하지 않고 중요할 수 없다. 이 글은 생리를 다룬 책에 대한 글이기도 하다. '생리와 여성의 몸에 대한 탐구서' <생리 공감>은 다큐멘터리 <피의 연대기>를 만든 김보람 감독이 썼다. 이틀에 걸쳐 두 번 탐독하며 거의 모든 문장에 줄을 쳤다. 이 책은 여러 면에서 나를 바꿀 것이다. 생리를 하는 여성에게서 내가 나왔듯이. 생리를 하는 여성들이 나와 함께하며 나를 바꿨듯이. 생리에 대해 모르고 생리를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나와 내 일상과 인생에 대해 이해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 (육체적으로 감정적으로) 내 생명의 근원이자 일상의 거의 전부(모든 영역과 세부)를 차지하는 여성과 여성의 생리에 대한 지적인 결핍과 비공감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할까. 생각이나 판단이 중요한 게 아니라 아얘 성립되지 않는다. 생리를 모르면 기본적인 일상을 사는 일은 완전히 불가능하다. 이게 극단인가. 전혀 아니다. 이건 마치 산소가 있어야 호흡을 할 수 있다는 이치와 동일하다. 앞으로도 여러 번 다시 찾고 읽게 될 것이다. 생리에 대한 책을 하나 알게 되었다고 여성에 대해 모두 이해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생리를 모르면 여성을 안다고 할 수 없을 것이다.


김보람 감독은 생리와 생리대 그리고 여기에 직접 영향을 받는 여성 및 사회구성원으로서의 자기 삶과 다큐멘터리 제작 과정에서 발견하고 관찰한 취재 내용을 솔직하고 자연스럽게 옮긴다. 발췌한 내용이 너무 많지만 극히 일부를 축약해 여기 옮긴다.


생리는 몸의 일이다. 사회는 몸에서 흘러나오는

자연스러운 피를 부끄러운 일로 만들었고

처리하는 데 필요한 노동, 비용, 고통은 모두

여성 개인의 몫으로 남겨줬다.


가희 씨 어머니는 "넌 이제 여자가 된 거야"라고 말했다.

여자가 되었다니? 그럼 이전까지는 여자가 아니었단 말인가?


초경은 도둑처럼 찾아온다.


요도와 항문이 있는 쪽에 생식기가 있기 때문일까.

생리는 더러운 배설물 취급을 받는다.

생리 중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생리 중이라는 사실을 들키면

수치스럽게 여긴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는 한 달에 한번, 평균 5일씩, 최대 36년 간 피를 흘린다.

별다른 정보나 가이드라인은 주어지지 않는다.

저항은커녕 질문도 하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인다.


생리하는 여성은 생리가 일상적인 몸의 일인데도

자궁과 생식기를 가진, 남성과 차별되는 '성적인 존재'로 인식된다.

생리가 삽입 성관계 때에도 사용하는 질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건강부국 여성들의 경우 평생에 걸쳐 35-37년 동안 생리를 한다.

1년에 500밀리리터짜리 콜라 한 병 정도의 피를 흘리고

평생 흘리는 피를 따져보면 약 16리터에 달한다.

이 양은 우리 몸 전체 혈액의 3배 정도다.


철학과 의학은 오랫동안 남자가 지배하던 학문이다.

여자에 대해선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고 되레

근거 없는 많은 미신과 편견만 남겼다.


"그거 나쁜 피가 다 나오는 건데.

생리하고 나면 나쁜 게 다 나와서 피부도 맑아지잖아."

생리는 나쁜 피. 엄마는 거의 평생을 그렇게 믿고 살았다.


아기의 뇌는 먹어야 하면, 그것은 피를 먹는다

-나탈리 엔지어, <여자 내밀한 몸의 정체>


아기의 뇌는 피를 필요로 한다.

그 피를 준비해 두었다가 배출하는 것이다.


얼마 전 미국 태평양북서부국립연구소 PNRI에서는

정자와 난자가 만나는 수정 과정에서 주도권을 쥔 것이

난자라는 새로운 연구 결과를 내놓았다.


어떤 여성들은 심장마비처럼 강렬한 생리통을 경험한다.

피임약을 중단한 이틀 뒤 나는 밤새도록 진통제 네 알로도

사그라들지 않는 아랫배 통증을 겪었다. 모든 것이 너무도

당연하게 예민해질 수 있는 상황인 것이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인스타그램 스타 잉그리드 닐슨이

진행하는 쇼에 등장했다. 잉그리드가 물었다.

"탐폰이나 생리대는 여성들 삶에 정말 중요하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생필품인데 왜 이런 제품들에 택스가 붙는 거죠?"

오바마가 답했다. "제 생각에는... 당시 세법을 만들던 사람들이

남자여서 그런 게 아닐까요?"


학문과 문화는 기억과 언어의 결합이다.

그 기억과 언어는 공동체의 경험을 바탕으로 해야 한다.


"이게 정신머리가 나갔나, 여자가 어딜 그런 걸 다 펼쳐 놓고 다녀?"

그걸 본 아버지에게서 서윤은 모욕에 가까운 꾸지람을 들어야 했다.


한동안은 그 면생리대를 사용했지만 빠는 게 귀찮아 일회용 생리대를

쓰기 시작했다. 그러자 이전에 느끼지 못했던 생리통과 꿉꿉한 느낌이

심해졌다.


생리는 일상이고, 몸의 자연스러운 일이며, 때로는 엄청난 고통과

노동과 비용을 수반하는 것으로, 설명만으로는 충분히 체감할 수 없다.

우리는 모두 스토리텔러가 되어야 한다.


그렇게 나는 섹스에 대해 대화 나눌 상대를 잃었다.

결국 실제 삽입섹스가 가능한 관계에 진입했을 때

나는 예상하지 못했던 일들을 겪어야 했다.


여기 아프지 않았어?

네, 아파요

혹시 성폭행당했어요?

네? 아니요

그럼? 오빠가 억지로 넣었구나? 그럼 안되지


나는 우리 모두가 쥐뿔도 모르고 자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와 상대의 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어 무엇이 예의이고, 폭력인지

인지하지 못할 만큼 멍청한 상태에서 '대학'이라는 공간에

진입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말한다. 왜 성폭력 피해자들이 폭력이 일어난 순간에는

아무 방어도 하지 않았다가 한참 뒤에는 그 일을 끄집어내 '폭력'

이었다고 말하는 거냐고. 그게 잘못된 것인 줄 알았다면 바로 말했어야

하지 않느냐고. 하지만 피해 당사자도 당시에는 그게 폭력인 줄 모른다.

왜냐하면 그게 폭력이라는 걸 미리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그와 관련된 지식이나 경험이 깊어지면서 그것이 폭력이었다는

걸 깨닫는다.


생리가 나오고 남성 성기가 삽입되는 질이 어떤 조직인지,

어떻게 반응하는지 전혀 알려 주지 않았다는 걸. 그렇게

무지한 상태에서 나는 오직 타인의 취향과

바람에 맞추려고 노력했던 것이다. 그래도 되는 걸까?

아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


"실리콘으로 만든 컵을 접어서 '그 안'에 넣어서

피를 흡수하는 게 아니라 담아서 버리는 거요."


엄마 몰래 거울을 꺼내 놓고

자신의 성기를 처음으로 들여다봤다.

윤미 씨는 그때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죄책감이 들었어요. 죄를 진 것 같은 느낌?"


고대의 여성들도 탐폰을 썼다.


피암약이 안전하게 여겨지지만

자신에게 맞는 피임약을 고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남자아이와 우연히 살이 스치면

배꼽 아래쪽부터 질이 감전된 것 같은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한 감각이 지나갔다.


"질도 페니스처럼 튀어나와 있으면, 어렸을 때부터 이리저리 가고 놀기도 하고

내 거랑 남 거 비교도 해 보고 그랬을 텐데"


약간 찌릿한 느낌이 드는 것도 같았지만 아프진 않았다.

실제로 손가락 끝이 자궁경부에 닿고 나서야 질에 나 있는 어떤 길을

따라가야 자궁까지 가는지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삽입섹스를 하지 못해 관계가 끝날까 봐 두려웠다.


결기를 다지고 컵을 있는 힘껏 밀어 넣었다.

"로켓을 발사시키듯이 질 안으로 쑤욱 밀어 넣었어요."


통증은 대부분의 경우 컵이 잘못 들어갔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일 가능성이 크다.


생리컵이 제대로 들어가면 아무런 느낌이 나지 않는다.


실제로 컵을 사용하면 가장 귀찮고 힘든 게

집이 아닌 밖에서 피를 비워야 할 때다.


나한테 맞는 컵을 찾았고,

내 질에 잘 들어가게 컵을 접는 방법도 터득했다.


원래 생리혈은 빨간색이다.

정맥에서 갓 뽑은 피 색과 같다.


무지는 사람을 잔인하게 만든다.

모르기 때문에 상대가 겪게 될 공포를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여성의 몸은 이제껏 수많은 금기와 출처를 알 수 없는 미신에 시달렸고,

타자(남성)의 욕망으로만 해석될 수 있는 기호로 여겨져 왔다.


19세기 유럽 농촌 지역 여성들은 생리대를 차지 않았다.


어차피 이 피는 멈추게 할 수 없고,

그 피가 팬티에 얼룩으로 남는 것 또한 내 잘못이 아니니까.

다음 달에도 흘릴 피니, 굳이 강박적으로 얼룩을 지우려 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당시 여성들은 출산 중에 자궁이 질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경험을 했다. 자궁을 내부에서 지탱하던 조직이 손상될 경우

그대로 자궁이 질 바깥으로 튀어나오는 것이다.


생리 가방의 패턴이 나온 지 60여 년의 세월이 흐른 뒤

획기적인 생리용품이 나온다. 1930년대에 처음으로 탐폰과

생리컵이 등장한 것이다. 19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미국 배우이자

가수인 리오나 채머스는 생리컵 패턴을 세상에 선보이면서 이렇게 말한다.

이브(최초의 여성) 때부터 여성의 문제였던 생리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간밤에 죽을 듯이 내 몸을 쥐고 흔들던 고통은 다름 아닌 생리통이었다.


내가 겪지 않는다고 해서 남이 겪은 고통을 모른 척할 수는 없다.

고통받는 누군가가 있다. 당신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의 피를

흘리는 사람이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한다.


여성의 몸은 성장과 번식의 딜레마에 놓여 있다.

초경이 빨리 오면 몸은 이제 성장에 들어갈 에너지를

번식을 위한 에너지로 돌려야만 한다.


"와, 네 친구 가슴 열라 크네."

그때 느꼈던 일말의 우쭐함을 기억한다.


나를 봐주지 않는 저 남자를 품에 안고

가슴으로 눌러 질식사시켜 버릴 수 있을 만큼

내 가슴이 크면 얼,마,나,좋,을,까.


가슴이 커지는 대신 유두 주변에 뾰루지 같은 것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귀엽고 예쁜 가슴이네"


크고 풍만한 가슴을 보았을 때 타고난 것인지 아닌지

구별하려 애쓰던 짓도 남성들의 언어와 욕망이 내면화된 탓이란

사실도 이제는 안다.


마침내 나는, 자기 몸을 지독히 혐오했던 나 자신과 결별했다.


게다가 소프트 컵은 '피임'도 할 수 있게 한다.


자궁경부 바로 아래까지 들어간 소프트 컵은

자궁에서 쏟아져 나오는 생리혈을 '막아낸다'


일회용 생리대 중 순면 감촉을 강조하는 생리대도 많다.

하지만 그 어떤 것도 진짜 순면을 대신할 순 없다.


1940년 당시 세상에서 최고로 빠르다고 자부했던 그녀가

말 그대로 생리 때문에 금메달을 놓친 것이다.


누군가는 너무 고통스러워서 그냥 자궁을 떼어내고 싶다고 했다.


생리를 안 할 수 있습니다. 약을 먹을 수도 있고,

호르몬 주사를 맞을 수도 있습니다. 비타민제 처방으로

생리 양을 줄여 나갈 수도 있습니다.


10대 소녀이자, 학생이며, 피를 흘리는 당사자에게

가장 먼저 발언권을 준 것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밥값을 요구하는 대신 아내가 생리 중인데

생리대 살 돈이 없다면서 생리대 살 돈을 달라고 했다는 것이다.



이렇게 옮기니 많아 보이지만 전체 내용의 1/100,000도 되지 않을 것이다. 책의 전문을 전체적으로 맥락과 함께 경험해야만 위 내용들의 깊이를 알 수 있다. 생리 경험의 타자 입장으로서 이런 내용에 대한 인지를 통해 할 수 있는 것은 여성에 대한 더욱 깊고 입체적인 존중감과 더 세심한 관찰과 태도의 학습이다. 읽으면서 페미니스트 작가 치마만다 응고지 아디치에의 <엄마는 페미니스트>가 떠오르기도 했다. 여성과 여성의 생리는 내게 낯선 우주의 이벤트가 아니다. 바로 곁에서 지금 일어나는 일상이다. 내가 더 제대로 알고 (비록 생물학적 한계로 간접적이더라도) 공감과 이해를 더해야 하는 가장 가까운 일이기도 하다. 결국 생리에 대해 알고 파생된 주제에 대해 고민한다는 것은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들의 몸과 감정을 돌보는 일, 이들과의 일상, 나, 결국 내 삶을 돌보는 일일 것이다. 최근 여성건강브랜드를 담당하며 초경 관련 카피라이팅을 고민하다 이 책을 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