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에 대하여 내가 아는 모든 것

돌리 앨더튼 지음. Everything I Know about Love

by 백승권

나이는 온몸을 감싼 모래주머니와 같다. 한없이 의식하게 만든다. 걸음을 느리게 하고 움직이려면 일정한 노력이 들어간다. 동선과 활동 반경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이렇게 무거우니 이만큼만 움직여야지. 이렇게 무거운데 저기까지 오늘 안에 갈 수 있을까. 저어기까지만 움직이고 오늘은 쉬자. 타협하게 만든다. 온몸과 마음 구석구석 어디 하나 편할 날이 없다. 움직여도 안 움직여도 누워도 서도 내내 불편하다. 시간을 측정하게 만든다. 열 살 스무 살 서른 살... 모래주머니의 무게에 맞게 모래주머니를 견딜 수 있게 나이에 맞게 살아야 한다고 긴 침묵의 합의에 이른다. 이미 세상 모두가 그렇게 살고 있어서 눈치만 좀 챙기면 모나지 않게 적응할 수 있다. 끄덕이고 동의하고 맞장구치고 웃고 화내고 울고 좌절하고 비슷한 시기에 태어난 이들과 비슷한 과정 속에서 자라며 비슷한 동선 안에서 비슷한 갈등을 겪으며 비슷한 상태가 된다. 비슷하게 느끼고 말하고 반응한다. 인간을 인간답게 크게 하기 위해 그래서 '정상적인' 사회구성원이 되어 돈을 벌어 일부는 자기가 갖고 일부는 공동체 운영을 위해 납부하는 시스템에 귀속된다. 노예라고 하면 듣는 사람 기분이 좀 그러니까 성인, 직장인, 사회생활 기타 등등으로 부른다. 요즘은 청춘도 노예 관련 키워드의 일부처럼 보인다. 마케팅 영역에서 자주 불리는 나이, 세대 관련 키워드가 있다면 그걸 팔아서 (브랜드건 기업이건) 돈을 벌겠다는 의도다. 알면서도 듣고 속으면서도 넘어간다. 뭔가 정당한 교환을 했다고 착각한다. 이 정도 비용이면 날 위해 쓸 수 있다고 합리화한다. 그리고 사랑, 사랑을 빼놓을 수 없다. 나이는 사랑마저 선을 그어 각각의 칸에 집어넣는다. 어떤 노부부는 서로 말이 없고 어떤 커플은 다른 파트너로 옮겨 다니기 바쁘다. 돌리 앨더튼의 에세이에서 그나마 덜 지루했던 부분이 연애와 사랑에 대한 코멘트였다. 새로워서가 아니다. 너무 뻔했고 그런 태도가 (그 혼돈의 시기에서) 틀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첫 데이트에서 상대와 자야 한다던지 남자를 적어도 다섯 명 이상 만나야 한다던지 클리셰 범벅이었지만 솔직하게 읽히긴 했다. 솔직하게 구구절절했다. 읽으면서 여러 번 느꼈다. 아 난 이 사람 이야기에 관심이 없구나.


20대의 라이프스타일과 연애에 대한 이야기. 이때 자기 삶에 대해 불특정다수에게 전시하는 것은 요즘 같은 인스타그램(그리고 틱톡) 시대에 숨 쉬듯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그것이 다이어리 형식의 텍스트 기반일 때 나는 점점 기시감으로 인해 거리를 두게 된다. 과거의 책들과 완전히 같은 이야기는 없겠지만 더 이상 궁금하지 않게 느껴진다. 마치 헐리웃 로맨틱 코미디의 유사 공식을 배우만 갈아 끼워 매 연말 상영하듯이. 그래서 차라리 내 이야기를 같은 제목으로 쓸 수 있을까 라는 생각까지 이르게 되었다. 10, 20, 30... 나이라는 모래주머니가 새로운 이야기와 문장의 기준이 되면 말 그대로 마우스피스를 입에 물고 음식을 욱여넣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물론 이 빡빡한 틀 안에서도 웃음과 희망을 도출해 내는 게 기술이자 능력이겠지만 난 아니다. 시기와 나이를 상징하는 숫자를 떼어놓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싶다. (어려울 것이다) 이야기를 시작도 하기 전에 내 나이가 적힌 이력서를 휴대폰으로 보고 있는 사람 앞에서 꾹 다문 입술을 하고 싶지는 않다. (어려울 것이다) 물론 앞서 말한 기시감은 유사 이야기를 먼저 경험한 사람의 입장이기도 하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또는 에세이를 처음 접하거나 누군가의 이야기를 텍스트로 처음 접해본 사람들에게는 이런 (사랑에 대하여 내가 아는 모든 것 같은) 이야기 역시 처음 만나본 가장 흥미로운 타인의 이야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70억 명에게는 70억 가지의 사랑이야기가 있다. 그들이 사랑에 대해 모두 안다고 자신한다고 해도 그건 70억 가지 중 하나의 이야기일 뿐이다. 나머지 70억 개의 사랑이야기는 여전한 독자성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저 해변의 모래알 같은 개수 중에서 내 이야기는 어떻게 쓰일까. 나만의, 사랑에 대하여 내가 아는 모든 것은 무엇일까. 글을 쓴다는 자각을 한 이유로 사랑을 소재로 쓰지 않은 적이 없다. 지금도 쓰고 있다. 70억 가지 버전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