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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수. 하얼빈

우민호 감독. 하얼빈

by 백승권

안중근이 홀로 죽지 않은 건

제대로 죽기 위해서였다.


그의 결과적으로 틀린 판단으로 인해

목숨을 걸고 싸워온 수많은 독립군 동지들이

적군(일본군)에 의해 목이 잘려 죽었다.


안중근은 죽어야 했다.

살 이유가 없었다.

살아도 산 게 아니었고

죽는다고 용서 같은 건 없었다.

죽은 자들은 돌아오지 않고

죄는 사라지는 게 아니었다.


전장에서 수많은 목숨을 담보로 한 결정을 해온

안중근에게 이런 판단은 찰나의 감상적 상념이

아닌 몸과 영혼에 길들여진 진실이자 진리였다.


안중근이 내린 최종 결론은

이렇게 죽지 않는다였다.

이렇게 죽을 수 없었다.

잘못된 결정과 전우를 모두 잃은 패전의 후유증으로

독립군 대장이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건

적군의 사기에도 반가운 뉴스가 될 게 자명했다.

안중근은 죽는 방식을 고르기로 한다.

적군의 우두머리를 베고 자신도 죽기로.


이토 히로부미가

하얼빈 역으로 오고 있었다.


군인으로서 적장 제거는 필수 임무였다.


안중근은 이 목적을 이룰 때까지만 살아있기로 한다.

먼저 죽은 동지들을 향한 마지막 사과였다.


독립군 내부의 누군가는

겁박에 못 이겨 동지들을 배신하고 있었고

안중근을 내내 실패자로 몰아세웠으며

누군가는 한 치의 의심 없이 굳게 밀어주고 있었다.


안중근의 발상과 기획으로 시작했지만 반드시

안중근만이 유일하게 실행할 수 있어서는

안 되는 작전이었다. 하지만 안중근 개인의 안에서

이 작전은 오직 자신이 직접 끝내야만 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겨우 연장하기로 한 삶을

온전히 매듭지을 수 있었다.

자신의 의지로 살아있다고 여긴 삶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죽은 동지들의 대리인이라고 여겼고

적장을 죽인 후 자신도 죽는다가

이번 생의 마지막 결단이었다.


빼앗긴 조국을 구하기 위해

동지들의 수많은 희생과 시행착오를 지나

수많은 내부 갈등과 작전 실패를 거쳐

기어이 적장의 숨통을 끊어버린 그리고

최후 실행자는 적들에 의해 사형당한 실화를

이 실화의 일부를 영상으로 옮긴 영화를

여기 몇 줄로 옮기는 건 겸연쩍다.


실존한 독립투사가 담긴 이야기를

어쭙잖은 수사가 담긴 비평과

리뷰의 대상으로 다루고 싶지 않다.


두 손을 모으고 경청하는

목격자의 심정으로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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