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62 5845

by Glenn

속도위반으로 탄생했다고

기념주화를 발행한 것도 아닌데


칭찬에 길들여진

아이 중 한 명이

어쩌다 내가 되어서


스물에

열아홉 공주를 만나

결혼을 하고 반차를 내고

꽃을 들고 집으로


슬픈 날도 많았어요

그날 너가 아팠을 때

나는 밤새 무서웠고


수달 동안 우리는

세상과 싸웠었지

악을 지르고

서류를 준비하며


악마들의 목소리를 녹취했었지

우린 끝까지 지지 않았어

여전히 생생해 그날들이


9062일 전 처음 만나

5845일 전 오늘 결혼


사랑한다는 말

너무 자주해서

낡고 닳았지만


다른 언어를

배울 수 없어서 지금도

멍하니 바라보기만 해

태어나 처음 사랑한

너와 살고 있다는 게

여전히 믿기지 않아서


기차와 같은 속도로

달리던 때가 기억나

사라지지 않아

앞으로도


에르메스

디올

셀린느

입생로랑

루이비통

샤넬

구찌


지금보다 더 좋은 옷과

신발과 가방을 사주고 싶어

립스틱과 화장품,

더 넓은 집과 새 자동차도

더 커다란 꽃다발과

더 근사한 가구와 식기도


오래 걸리지 않을 거야


빨강 머리 위에

빨간 모자를 쓰던

알바생이 아니고


여전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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