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벽 사이의 신뢰

by Glenn

서서히 사라지는 것들을 느끼고 있고 그렇게 사라지는 것들이 다시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않을 거라는 것을 받아들이려고 한다는 게 차마 믿기지 않는다. 느리고 어렵게 기록한다고 실제로 일어나는 일이 그럴듯하게 감춰질 수는 없다. 그런 일은 지금껏 없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관계의 위태로움이란 한쪽이 기울어지면 남은 한쪽도 역시 무너진다는 점이다. 각각의 하나가 아니라 각각의 하나가 둘 모두와 긴밀히 연결되어 있고 서로를 지탱하고 있다. 한쪽이 줄을 놓는다면 그것이 절벽의 양끝 중 한쪽이라면 풀린 줄이 까마득한 허공 밑으로 낙하하고 잡고 있던 한쪽에서 열심히 말아 올린 들 반대편으로 던질 수 없다. 너무 멀고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으며 여전히 거기 있는지 줄을 잡고 싶어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도 했었다.


우리가 만약 소리 내어 말을 하지도 못하고 귀 기울여 듣지도 못하는 처지가 되었다면 우리는 어떻게 될까. 우리는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려 들까. 기다릴 수 있을까. 서로가 더 궁금해질까. 아니면 상실된 감각기관에 의해 그만 서로를 포기하게 될까. 기억이나 하게 될까. 믿음이란 무엇일까. 약속의 가치는 깨진 후에 더 커지는 걸까. 신뢰의 가치는 무너진 후에 더 빛나는 걸까. 우리는 어디에 있을까. 우리가 잡던 끈은 어디서 어떻게 놓아버린 걸까. 다시 감아올릴 수 있을까. 둘 다 놓아버린 것은 아닐까.


놓아버린 것은 내가 아닐까.


스스로를 증오하는 일이 가장 쉬워서 하면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면서도 주먹을 가만히 말아 쥐어 얼굴을 때리고 싶다. 오늘 아침 그래서 나는 한쪽 눈밑에 처음 보는 붉은 언덕이 솟아있었나. 사라져 가는 것들을 잡을 줄 모르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어쩔 줄 몰라하며 시간의 갈피 사이에서 허우적거리다가 불행에 빠질 기회를 엿보고 몸에 붙을 붙이고 타는 피부를 구경하며 일그러진 웃음을 짓는다. 잃어버린 게 무엇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더러운 스스로를 폐기하고 뻔뻔하게 간격을 만져서 당겨서 좁혀서 스케치 같은 크로키 같은 허술한 일상에 색료를 퍼부어 움직이는 그림으로 만들고 싶다. 어느 한쪽도 줄을 놓은 적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걷힌 안개 사이에서 맑은 눈을 확인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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