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니발, 살인과 예술의 경계를 넘다

메즈 미켈슨. 한니발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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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니발 박사(매즈 미켈슨)는 자신의 범죄를 분석하는 담당 요원의 고충을 들어줌으로써 결국은 자신의 범죄를 분석하는 모양새를 띄게 된다. 자신의 살인에 대해 공식적인 루트로 리뷰하고 발언하는 살인자랄까. 미식가. 셰프. 정신과 의사 그리고 연쇄살인범. 극의 화자인 범죄심리분석요원 윌 그레이엄(휴 댄시)은 살인 분석을 위해 현장에서 범인에 빙의를 시도한다. 이를 통해 범행의 과정, 의도, 심리를 추정하고 예측한다. 그는 몽유병에 시달린다. 거대한 순록이 주변을 떠도는 꿈과 환영에 시달린다. 순록은 상징, 한니발 박사의 거실에 놓인 조각상과 같다. 늘 불면과 불안에 시달리는 윌, 그는 한니발 박사에게 자신의 상태를 매번 고해한다. 대화와 의지, 우정이 형성된다. 상대의 정체를 모르고 상대의 기능적인 면을 활용한다. 연민이 싹튼다. 살인자의 연민. 그 사이 첨가되는 만찬과 향연. 요리는, 다들 붉고 아름답다.


품위와 격식을 갖춘 한니발 박사의 디너 테이블엔 늘 와인과 육류가 놓인다. 그는 재료의 출처를 밝히지 않는다. 아니 출처의 진실을 감춘다. 의사인 그에게 요리는 수술이자 예술이다. 요리는 전리품이자 예술에 이르는 표현방식의 일부이다. 찬사까지 얻을 수 있는. 한니발 박사 역을 맡은 매즈 미켈슨은 앤서니 홉킨스와 다르다. 양들의 침묵의 과거 시점이면서도 더 깊고 진한 풍미로 극을 장악한다. 더 고요하고 더 어두우며 더 사려 깊으면서도 더 잔혹하기 그지없지만 이 모든 것들을 깨끗하게 보여준다. 말투, 눈빛, 움직임. 하나하나 군더더기가 없다.


위험하다. 그로 인해 살인이 아름다워 보이기 때문이다. 흉내 낼 수 없고 그래서도 안되지만 분명 고혹적이면서도 탐닉하게 만드는 지점을 획득한다. 예술의 영역으로 자신의 행위를 설득시킨다. 모든 살인에 가담한 것은 아니지만 모든 살인을 예술로 보이도록 기능한다. 그가 가담하지 않은 살인의 출처도 한니발 그로 보이게 만든다. 선과 악의 이분법으로 그를 설명할 수 없다. 그가 지나온 일부 커리어만 노출될 뿐, 그는 존재하지 않는 사물처럼 존재를 드러낸다. 완벽하고 또 이를 즐긴다. 요리와 대화에 직접적인 흥미를 드러낸다. 붉은 납빛의 표정과 서늘한 눈. 메마른 뺨. 정성 들여 빗은 머리와 구김 없는 슈트. 그는 괴물이지만 신사의 스타일을 지녔고 살인자이지만 의사의 태도로 일관한다. 지루하지 않으며 모든 장면에 긴장을 드리운다. 음침하지만 경쾌하고 차갑지만 매력적이다.


지성인과 야수, 예술가를 한 냄비에 조리해 하나의 접시에 곱게 올린 완전에 가까운 성찬, 그 자체이다. 자신이 그렇게 보이길 의식하고 그렇게 보인다는 점에 만족한다. 매즈 미켈슨은 이런 한니발을 통해 앤서니 홉킨스를 뒷방 늙은이로 전락시킨다. 상투적 표현이지만, 미드 한니발은 스릴러의 진화를 증명한다. 스토리텔링이 가미된 수많은 영상 콘텐츠들이 살인을 다루고 있지만, 이토록 관객(시청자)의 심연과 욕망을 건드리는 작품은 드물었다. 그 흔한 위트도 보이지 않는다. 훼손된 시체와 흐린 기후, 어두운 조명과 붉은 피, 붉은 벽만이 장면을 채운다. 판타지에 가까운 범죄심리드라마. 이로써 데이비드 핀처와 케빈 스페이시의 세븐(1995)마저 과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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