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크 오디아르 감독. 러스트 앤 본
갈채를 받고 있었다.
찬란한 햇빛을 반사하던 수면, 손짓에 맞춰 날아오르던 돌고래가 물속이 아닌 조련사(마리옹 꼬띠아르)가 있던 곳으로 난입한다. 비명과 붕괴, 쓰나미를 방불케 하는 물속의 지옥이 펼쳐지고 여자의 꺾인 몸이 던져진다. 푸른 물속에 퍼져가는 붉은 피. 며칠이나 지났을까. 여자는 눈을 뜬다. 흰색과 회색이 뒤섞인 황량한 공간, 백열등이 쏘아 내리고 있는 병실 침대 위. 사람이 없다. 몸을 가누어 본다. 상체를 휘적거려 본다. 기우뚱... 쿵. 여자의 몸이 침대 밑으로 떨어진다. 얇은 이불을 벗어나 드러난 전신. 자신의 몸의 현재를 확인한 여자의 동공이 얼어붙는다. 울부짖지만 체내를 다 빠져나올 수 조차 없을 정도의 가혹한 절망.
그녀는 두 다리를 모두 잃었다.
효도르를 연상시키는 체구의 사내(마티아스 쇼에나에츠)가 있다. 누가 봐도 오랜 기간 운동으로 축적된 듯한 근육과 선 굵은 외모. 짧은 머리카락과 다듬어지지 않은 듯한 굵은 수염. 눈빛은 불안하고 남들이 버린 음식을 주워다 먹을 정도로 넉넉하지 못한 사정. 거침이 없다. 말투도 행동도 한번 눈을 마주한 이름 모를 여자와 정사를 벌이는 성욕까지도. 그에겐 열 살이 넘지 않아 보이는 아들이 있고 형편이 이 역시도 넉넉지 않은 누나에게 맡긴다. 유흥업소 기도, 경비 등 할 수 있는 한정된 직업. 그곳에서 한 여자의 싸움을 말리고 데려다준다. 몇 달 후 전화가 온다. 두 다리를 잃은 여자에게서.
둘은 바다로 간다.
벌거벗고 수영을 한다. 다시 물과 만나고 비로소, 영원히 떠날 줄 알았던 자유를 실감하는 여자. 남자는 여자를 업고 물가를 벗어난다. 등 뒤로 비추는 햇살. 남자의 어깨 위로 웅크린 여자의 작은 손과 얼굴. 사랑이라기엔 삶이라고 부르는 게 아직은 더 어울릴 것만 같다. 남자는 무심하지만 같이 있고, 여자는 무릎 밑이 팔랑거리는 바지를 입고 남자를 소리 없이 의지한다. 육체적 관계의 시도. 더욱 긴밀해지는 관계의 거리. 남자는 아이를 부양하기 위해 판돈이 걸린 불법 격투를 시작하고 여자는 동행하며 남자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준다. 연이은 승리는 남자를 들뜨게 하고 여자가 보는 앞에서 다른 여자와 함께 사라지는 만행으로까지 이어진다. 상처를 각오했던 여자였지만 그녀는 경고한다. 그리고 남자는 알아들은 듯 하지만 남자는 여전히 그 남자일 뿐이다.
의족을 한 여자는 천천히 예전의 삶으로 돌아오려 한다. 비참한 자세의 재활훈련을 지나 지팡이를 짚고 천천히 걸을 수는 있게 되었지만 과거의 조련사 생활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돌고래와의 조우. 여자는 수신호를 기억하고 유리벽 너머의 수중에 있는 돌고래도 그에 반응한다. 사고 후 처음 만난 둘은 마치 오랫동안 연습한 듀오처럼 움직임을 맞춘다. 하지만 지금 그녀의 곁에 있어야 하는 것은 돌고래가 아닌 그 남자. 불안의 총체 같았던 남자는 지인과 함께했던 범죄행각에 휘말려 궁지에 몰리고 아이와 여자를 버리고 야반도주한다. 생의 난관과 마주했을 때 남자의 대응법은 도망이었다. 그는 두려웠을 것이다. 모두를 잃을까 봐. 겁을 먹고 도망했고 이를 통해 자신만 피해 보면 된다고 여겼을 것이다. 무지하지 그지없는 생존법이었다.
남자는 먼 곳에서 정식 선수로서의 시합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랜만에 상봉한 부자. 남자는 경기를 며칠 앞두고 만난 아들과 있는 힘을 다해 놀아준다. 이것만은 정말 잘해줄 수 있다는 듯 빙판에서 썰매를 태워주고 끌어준다. 행복한 시간들. 잠시 한눈 판 사이 아들이 사라진다. 호수 중앙, 깨진 얼음, 사라진 아이. 구멍만 있고 아이가 없다. 남자는 주변 빙판 위의 눈발을 쓸어 헤친다. 희미하게 비치는 아이의 옷. 아이는 차가운 물속에서 얼어가고 있었다. 아비는 사정없이 내려친다. 호수 위의 빙판은 어른의 주먹으로 깨지지 않는다. 뼈가 으스러질 듯 내려치지만 깨진 주먹에서 뿌려진 핏물만 묻을 뿐 얼음은 깨지지 않는다. 그렇게 계속 계속 계속 남자는 내려친다. 균열하는 빙판. 아이를 끄집어 내 끌어안고 남자는 어둠 속을 걷는다. 병원. 혼수상태였던 아이 곁을 지키던 남자에게 전화기 너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거인 같던 남자가 오열하기 시작한다.
결핍만큼, 뜨거운 촉매가 있을까.
생의 끝에서 만난 남녀의 사랑을 소재로 다룬 영화는 많지만 누가 그 남녀가 되느냐에 따라 촉감은 다르기 마련이다. 자끄 오디아르 감독의 프랑스 영화 러스트 앤 본은 캐스팅과 연출력이 만났을 때 얼마나 굉장한 로맨스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는지 증명한다. 다리를 잃은 돌고래 조련사로 분한 마리온 꼬띠아르는 이 영화를 통해 에디트 피아트로 빙의했던 라비앙 로즈를 뛰어넘는다. 단 한 번도 활짝 웃는 장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던 이 영화에서 격렬한 상실감과 더불어 사랑이 필요했던 여인을 고요하면서도 애잔하게 담는다. 고혹적인 외모가 아니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감독도 그녀도 여배우의 뛰어난 외모가 비극적 캐릭터와 만났을 때 어떤 몰입감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명민하게 파악하고 활용한 듯했다. 이런 괴물 같은 여배우를 상대했던 사내 마티아스 쇼에나에츠는 마치 거리에서 데려온 듯한 인상의 배우였다. 영화 밖에서나 안에서나 무서울 것이 없어 보이는 모습. 세계적인 여배우와 같이 있는 장면에서 그의 아우라는 영화를 장악한다. 자신을 무명배우로 두지 않는다. 중심이 된다. 비중을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두 배우의 화학작용은 시종일관 시선을 묶어 둔다. 물과 몸이 만나고, 몸과 몸이 만나고, 햇빛과 몸이 만나고, 감정과 감정이 만나는 순간의 누적을 통해 2시간을 가득 채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껏 비슷한 소재를 다룬 영화는 많았다. 하지만 이 영화가 모두를 범작으로 만들어버렸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