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비드 O. 러셀 감독. 실버라이닝 플레이북
상처 입은 사람들에 대해서 쓰는 건, 어렵지 않다. 세상에서 가장 흔하고 많은 부류 중 하나기 때문이다. 주위를 둘러보다 지나가는 아무나 잡고 몇 가지 질문만 던져봐도 알 수 있다. 아니, 조금 떨어진 곳에서 한 사람이 걸어가는 표정을 바라만 봐도 알 수 있다. 상처 입지 않은 사람은 없다. 상처 받지 않는 사람도 없다. 세상은 온통 상처투성이들로 가득 차 있고, 상처를 주는 사람들과 상처를 받는 사람들로 양분되어 있을 뿐이다. 어디든 그렇다. 상처를 피할 수 있는 곳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미취학 아동들도 세상이 이렇게 비정한 곳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누군가를 좋아한 적 있다면, 누군가를 좋아하는 사람을 알고 있었다면, 그 누군가가 바로 자신이라면,
그저 자신의 이야기를 참고 삼아 쓰거나, 자신의 경험을 참고 삼아 대상을 바라보거나, 자신의 다 잊히지 않는 감정을 토대로 쓰면 그건 그대로 상처 받은 사람의 상처 받은 이야기가 된다. 애써 꾸미지 않아도 된다. 진실이고 진심이었을 테니. 표현이 서툴 수 있어도 진심은 대체로 드러나는 법. 우리 중 대부분은 상처를 경험한 적 있고 그리하여 상처에 대한 이야기를 쓸 수 있으며, 세상에 비슷한 상처로 힘들어한 이들의 이야기에 대한 공감대를 발휘할 수 있다. 좋아했으니까. 계산할 수 없었던 감정을 자기 자신이든 타인에게든 노출시켰고, 수용과 거절의 영역으로 옮겨놓음으로써 상처를 자처한 셈이다. 좋아해서 다쳤다. 다칠 줄 알고도 좋아했거나. 그게 누구든.
실버 라이닝 플레이북 역시,
상처 받은 사람들의 이야기다.
남편이 죽은 여자(제니퍼 로렌스)와 부인과 파경 직전에 놓인 남자(브래들리 쿠퍼)가 만난다. 마주친 첫 순간부터 입이 거칠었고, 몸도 거칠어 잘 뻔도 했다. 알아보더라. 상처 받은 사람은 상처 받은 사람을. 사랑을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말했지. 굳이 긴 설명하지 않아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다고. 사랑에 빠진 사람들은 알고 보면 만나서 닮아가는 게 아니라 이미 닮은 사람들이 만나는 것이었다고. 그래도 어렵다. 남자는 애초 부인이 바람피우는 장면을 자기 집 욕조에서 목격하고 충격에 빠져 정신병원을 들락거렸고, 떠난 부인이 자신에게 돌아와 주기만을 기다리며 안달복달하고 있었다. 그래서 회복되려는 노력을 보이려 쓰레기봉투를 뒤집어쓰고 달리기를 하는 등 갖은 수를 다 써보지만 그녀의 마음을 돌리기엔 아직 멀었지. 남자의 부인은 그가 정상으로 돌아온다면 재회를 고려한다고 했었다. 가능, 할까. 그 남자에게 달라붙는 여자가 생겼는데.
여자는 집요하다. 처음 만난 순간부터, 남자에게 풍덩 빠진다. 같이 달리고 쫓아가고 남자의 모든 이야길 알고 싶어 한다. 남자는 귀찮아한다. 여자의 사연을 들은 다음엔 더더욱. 여자는 남편이 죽고 우울증에 시달렸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회사 같은 팀 사람들 모두와 잤다. 성별 안 가리고. 상처 주고 상처 입고 점점 서로의 공통분모를 알아가게 되는 티파니와 팻. 합심해 댄스 경연 대회에 나가기로 한다. 남자는 이를 통해 자신이 얼마나 정상으로 돌아왔는지 부인에게 보여줄 참이었다. 공식적인 대회에서 괜찮은 성적을 거두어 "나는 정상이야, 그러니 너에게 돌아갈래, 나를 받아줘."라고 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자는 남자의 부인의 친구의 동생. 댄스 연습을 주도한다. 남자는 점점 지금껏 겪어보지 못했던 살아있는 기분을 느끼기 시작한다.
상처 입은 이들의 화학작용은 비교적 정상인들끼리 만났을 때보다 격렬하기 마련이다. 삶에서 뒹굴며 묻은 먼지들이 굳어져 두터운 껍질을 이루고 둘이 만나 메마른 감정에 성냥이 그어질 때, 시작된 불길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연소될 과거들이 장작이 되고 서로의 피부 위에서 미끄러지는 손길들이 불쏘시개가 된다. 남자가 자신의 마음에 혼란을 느끼고 있을 때 여자는 남자에게서 불안과 흥분을 동시에 느끼고 있었고, 댄스가 끝나고 난 후, 여자는 자신의 방향이 틀렸음을 직감하고 돌아선다. 이 동네의 미친년은 나였을지 몰라도 저 남자에게 안길 여자는 내가 아니었구나 한탄하며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긴다. 뒤에서 다급히 달려오는 남자, 그리고 나머지 장면은 로맨스 영화만의 엔딩.
영화는 영화니까. 관객이 상처 입을까 봐 예상 가능한 엔딩으로 막을 내리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 상처 입은 사람들끼리의 사랑도 또 다른 상처가 생기기 마련이고 수많은 우여곡절을 지난다 해도 완전한 봉합으로 끝나지 않을 때도 많다. 티파니가 그랬다. 사랑하는 남자를 만나 결혼하지 않았다면 남편을 잃는 일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팻도 마찬가지. 사랑에 빠져 결혼하지 않았다면 살아생전 자기보다 나이 든 남자와 자기 부인이 발가벗고 물을 맞으며 몸을 비비는 장면을 볼 확률도 매우 낮았겠지. 상처를 자초했다기보다는 그들의 상처는 다, 누군가를 좋아했기에 겪어야 했던 나쁜 경우의 수였던 셈이다. 사랑하고 상처 받고 다시 사랑하고, 또 언젠가 상처 받을지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