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 오브 파이, 신과 거짓말

이안 감독. 라이프 오브 파이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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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통 파이 이야기로 뜨거웠던 때가 있었다. 포스터만으로는 도저히 추측할 수 없었다. 본 사람들의 일관된 리뷰라면 "어떤 의미를 주는 것 같아."라는 성령 대부흥회 후기 같은 말들뿐. 브로크백 마운틴과 색계만으로도 이안 감독은 애니메이션을 만든다 해도 보고 싶게 만드는 거장이었다. 특히 브로크백 마운틴은 동성애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꿔놓은 충격적이고 감동적인 영화, 색계의 가치는 양조위가 아닌 탕웨이 한 명으로도 모든 이유가 설명되고 남았다. 그런데 이번엔 호랑이라니. 바다 위에 배, 소년, 그리고 호랑이.


이야기는 인도에서 시작된다.


오줌과 발음이 비슷한 이름 때문에 놀림받지만 천재성을 보이면서 ‘이 동네의 수학천재는 나야’ 정도의 영웅으로 등극한 소년 파이 파텔(수라즈 샤르마). 동물원 하면서 부유하게 살던 집이 가세가 기울어 캐나다로 배 타고 이사 가던 중 거대한 파도를 만나 가족 포함 전원이 몰살하고 배는 침몰한다. 구명보트 하나로 겨우 탈출한 소년. 유일한 생존자. 호랑이가 매달리고 얼룩말이 떨어지며 오랑우탄이 따라오고 하이에나가 동승한다. 침몰한 배엔 사람만이 타고 있던 게 아니었으니까. 두 평 남짓한 배 위에서는 특히나 난감한 상황. 호랑이가 정리한다.


남은 건 호랑이와 소년.


둘은 서로를 보자마자 부둥켜안고 어깨동무하며 서로의 얼굴을 마구 부비... 긴 개뿔, 일촉즉발의 현 남북관계처럼 경계를 늦추지 않는다. 전투력으로 보면 덩치가 몇 배는 되는 뱅골 호랑이가 단숨에 목을 꺾을 것 같지만 그래도 동물원 했던 집안의 자손이라고 소년은 궁리를 하며 호랑이를 길들이려 골몰한다. 물론 초반에 잡아먹힐까 봐 구명조끼와 노를 엮어 임시대피소를 만들어 두기도 했다. 그리고 상대는 호랑이 하나뿐이 아니다.


모두가 사라진 망망대해. 외치고 둘러봐도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과 바다뿐. 비상식량은 떨어지고 물은 빗물을 모아 겨우 축이며, 살 길은 보이지 않는다. 파도가 때리고 날치가 때리며 아닌 밤중에 고래가 솟아오를 뿐. 거기에 호랑이까지. 살아볼 때까지 살아보겠다고 별짓 다하지만 변화는 체중뿐. 호랑이 리처드 파커도 소년 파이도 피골이 상접해진다. 그 사이 조금씩 피어오르는 동지의식. 파이는 훗날 전한다. 리처드 파커가 없었다면 생존을 향한 긴장을 유지하지 못했을 테고 자신은 금세 죽어버렸을 거라고.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기절. 눈 떠보니, 섬.


기원을 알 수 없는 형체의 나무들과 지면을 온통 뒤덮은 미어캣 수백만 마리. 파이는 맑은 물로 몸을 적시고 파커는 미어캣을 입에 넣어 씹는다. 미어캣은 동요하지 않는다. 마치 식물을 대하듯 같이 자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낸다. 그러길 한동안. 파커는 깨닫는다. 언제가 섬이 자신을 잡아먹을 것이라는. 애초 인간이 주인이지 않았던 곳, 인간이 주인일 수 없는 곳.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을 삼켜버릴 것이라 직감하며 떠나기로 한다. 이제는 동지가 된 리처드 파커와 함께.


다시 도달한 육지, 멕시코. 얼마나 기절해 있었을까. 돌아보니 파커는 배에 없었고 수풀 앞에서 우두커니 서 있다가 사라져 버린다. 이별. 인사 한마디 없었다. 냉정한 사람, 아니 호랑이. 파이는 울부짖는다. 서운해서. 마치 배구공 윌리와 헤어진 캐스트 어웨이의 척 놀랜드(톰 행크스)처럼, 파이는 슬픔을 오래오래 표현한다. 여기서 파이의 호랑이와 함께한 표류기는 끝나지만 사고 경위를 조사하러 사연을 들은 이들은 넋을 놓는다. (살아나서 다행이고 헛소리는 알았으니까) 어서 현실성 있는 소릴 좀 하라고 다그친다. 그리하여, 건조하게 시작되는 또 하나의 이야기. 침몰 전 구명보트에 오른 것은 무례한 요리사와 부상당한 선원, 그리고 파이의 엄마까지 넷. 죽이고 죽고 죽이고 파이만 남게 되었다고 했다. 회상은 여기까지. 응? 뭐가 진짜지? 이야기를 다 듣던 소설가가 의아해한다. 중년의 파이는 말한다. 믿음의 문제라고.


믿음.


배에 오르기 전. 파이는 다양한 신을 소개받으며 종교에 빠져 있었다. 만화. 영화, 여행 등, 누구나에게 남들이 쉽게 공감하기 힘든 무엇에 흠뻑 빠지게 되는 시기가 있듯, 파이는 그 시절 힌두교, 천주교, 이슬람교에 심취해 있었다. 것도 아주 깊이. 그러다 갑작스럽게 주변의 모든 것이 붕괴되고 죽음의 공포와 직면하게 된 것이다. 자신이 누군지 증명해주던 가족과 기반을 완전히 잃어버린 채 파이는 생존의 공포와 홀로 싸우기 시작한다.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은 절망적 여건과 살려고 뭐든 해야 했던 생존의 의지가 격돌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호랑이 리처드 파커는 단순한 맹수일 수 없었다. 필요악. 파이를 죽이려는 모든 상황이 파커의 으르렁거림에 모두 담겨있었고, 파이의 절실한 생존 욕구는 파커를 대응하는 모든 순간순간으로 설명이 가능했다. 파커로 인해 죽을 수 있었지만 파커로 인해 살 수 있었고, 어떤 이유에서건 파커가 자신을 아직 죽이지 않았기에 파이는 자신의 생명연장을 가능하다 여겼다.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면서도 시선을 떼지 않았으며 결국 그가 없이는 떠나지 않았고 그가 지쳤을 때 자신의 다리에 눕혔으며 그가 떠났다 여겼을 때 그렇게 서럽게 울 수가 없었다. 의지했고 사랑했다. 두려움의 존재에서 연민의 존재로, 호랑이 파커는 파이 자신이기도 했지만 파이가 원한 자신의 가장 높은 이상향이었으며 그것은 자신이 절대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신의 다른 모습이자 상징이기도 했다.


얀 마켈이 쓴 동명의 소설을 이안 감독의 상상력이 영상으로 옮겼다. 감독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지 보다 관객이 어떻게 받아들였냐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대사와 설정으로 점철된 영화. 인간의 영역과 신의 영역, 이성과 종교. 인간의 한계가 이성의 한계라면 종교는 그저 이성 바깥에서 설명될 수 없는 부분에 대한 대안에 불과한 것일까. 설명할 수 없는 것들에 대한 증명할 수 없는 답? 죽음과 맞닥뜨렸을 때는 저절로 온갖 상상력이 동원되면서 이미지를 실물처럼 만들어내다가 위기를 넘긴 순간부터는 마치 당신의 의무는 다했습니다, 라는 듯 사라져 버리게 하는 걸까? 인간에게 신은, 수풀로 사라져 버린 파커처럼 단지 필요에 의해 생명력이 유지되는 존재인가? 의미가 실물로서 인정받는? 그저 인간의 필요에 의해서만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다른 주장을 펼쳐보면,


영악한 파이가 자신의 살인에 대한 비난을 저지하기 위해 신의 오묘한 의미를 빌려와 허구로 재창조한 것은 아닐까? 한편의 꿈이라 해도 믿을 것이다. 증명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호랑이와 미어캣, 날아가버린 기록까지. 라이프 오브 파이(Life of Pi)는 혹시 라이 오브 파이(Lie of Pi)는 아니었을까? 생존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지만 어떤 상황에서든 곤경을 벗어나려는 그의 기지가 문명이 납득하기 힘든 다양한 개체를 끌어들여 한 편의 소설로 둔갑시킨 것은 아닐까 라고 자꾸 의심이 드는 것. 다시 돌아보니 이조차도 신을 의심하는 행위와 얼핏 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내가 언제 남의 이야기를 그것이 신에 대한 기록일지라도 제대로 끝까지 순전하게 믿고 받아들인 적이 있었는가 하고.


열린 결말, 열린 이야기는 늘 모든 결론을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무엇이 맞든 틀리든 그것은 그리 여기는 자가 감당할 몫이다. 영화의 마지막, 파이는 소설가와 인사하며 자신의 가족을 소개한다. 아름다운 아내와 무럭무럭 자란 두 자녀들. 파이가 무엇을 믿었든 그것에 의해 보호받았다고 여기는 듯하다. 돈이 중요한가, 돈이 대단하다는 믿음이 더 중요한가. 더 큰 영향력을 미치는 것은 무엇인가? 실존을 증명할 수 없다면, 실존의 영향력을 믿고 그것에 의해 생의 다양한 변수를 통제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어느 누가 신과 인간과 사물을 비롯한 주변 모든 것에서 완전히 독립할 수 있을까. 신은 존재 자체가 대단한 것이 아닌, 신의 존재를 믿고 그 영향력을 대단하다 전파하고 따르는 이들에 의해 더 대단해지는 것이 아닌가. 마이클 샌델은 ‘정의란 무엇인가’ 하버드 강의에서 정의를 제대로 정의하지 않았다. 정의에 대한 계속되는 자문을 요구했을 뿐. 이안 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도 이런 맥락에서 마찬가지다. 신의 존재에 대한 확증이 아닌 신의 존재와 그 의미에 대한 의문을 가지라 요구하고 있다. 그것이 파이의 현재처럼 당신 인생도 풍요롭게 해줄 거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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