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이집트 석상을 최초로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일상의 은유적 기록을 즐기지만 도로시와의 시간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2차 가공으로 옮겨지지 않는다. 능력 부족이 크겠지만 어떤 언어로 해석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쪽에 더 기운다. 그 시간의 환희와 희열로 충분해진다. 기록화될 여유가 없고 이유도 약하다. 버스는 맹렬히 달리고 도로시가 잠들기 전 도착하고 싶다. 요즘은 어려운 일인데 내 품에 안아서 재우는 일이 너무 그립다. 신체의 피로와 작은 생명에 대한 연민은 맞닿은 체온과 체온 사이에서 선을 긋는다. 도로시와 나와 함께 있을 때 웃으면 너무 좋다.
계속 웃고 계속 좋다. 체력의 존재가 무의미해질 때까지 쏟아붓는다. 아내는 나 없는 시간에 체력은 물론 잠재되고 의식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모조리 투여한다. 지난 주말에 도로시는 새로 도착한 자기 물건들 사이에서 어쩔 줄 몰라했다. 특히 분홍색 1인 소파의 포장 비닐이 벗겨지는 순간, 고대 이집트 석상을 최초로 발견한 고고학자처럼 시공간을 제압당했다. 초점 잃은 눈과 손으로 만지고 안고 서더니 물티슈로 구석구석 20분을 닦았다. 앉아서 애니메이션을 보는 표정은 경이와 신비감으로 가득 차 있었다. 왕좌였다. 서커스 천막 같은 색감과 모양의 미니 텐트가 왔을 적에도 비슷했다. 기어 들어간 날 떠밀고 그 안에 토끼와 멍뭉이 인형을 가져다 놓았다. 어쩌면 외부와의 연결이 가장 차단된 개인 공간이기도 했다. 붉은 지붕을 통해 들어온 빛이 도로시 얼굴을 발그레 붉혔다. 휴대용 DVD 플레이어에서는 호랑이 캐릭터가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DVD를 넣고 플레이 버튼을 눌렀더니 자꾸 덮개 열림 버튼을 눌러서 재생이 한없이 미뤄졌다. 한번 보더니 네 번 다섯 번 다 보고 싶어 했다. 잠시 숨겨놨다. 너무 빠져들어서. 나무로 만든 낚싯대와 물고기로 구성된 장난감도 신기해했다. 눈 앞에서 고래, 문어, 해마 등을 들어 올리니 눈과 입과 뺨으로 정신없이 웃었다. 색칠된 낚싯대를 입에 넣지 말라고 주의를 줬더니 나중엔 집어던졌다. 나무 찌 부분이 내 손등에 맞았는데 많이 아팠다.
주말의 일이었다. 이것 말고도 차고 넘치지만 기록으로 다 전할 수 없다. 청소기 버튼을 누르고 무서워 내 품에 후다닥 안겼을 때도 너무 귀여웠다. 다시 만질 때는 내 배에 엉덩이를 찰싹 붙이고 팔에 꼬옥 안겼다. 얼마 전부터 스케치북에 크레파스 선도 그린다. 밥시간이 되었거나 배고프면 맘마-라고 소리 낸다. 작은 손으로 긴 수저를 잡고 입보다 크게 퍼서 넣는다. 입을 벌릴 땐 콧등과 미간, 눈가와 이마까지 찡그린다. 천천히 먹으라고 괴성을 내면 까르르 웃는다. 물을 먹고 싶으면 무우-라고 소리 낸다. 해가 지고 육아의 피로가 몰리면 쓰러져 자는 척할 때가 있다. 그럴 땐 다가와 심장에 귀를 대거나 입술을 볼과 눈꺼풀에 포개거나 안경을 벗기거나 눈꺼풀을 들어 올려 찌르기도 한다. 배 부분 상의를 들어 올려 푸우 푸우 하고 바람을 넣으려고도 한다. 거실등을 끄고 분유를 타서 먹이고 졸음과 피로가 몰려오면 등을 돌려 팔을 벌린다. 안아주면 이마를 가슴팍에 기댄다. 중얼거리고 뒤척이다 잠든다. 그전에 더 두꺼운 내복으로 갈아입히고 기저귀를 갈아준다. 긴 머리에 땀이 덜 나게 머리를 계속 핀으로 집는다.
수백 일째 반복하고 있다. 도로시는 거짓말처럼 자라고 아내는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이 휘청거린다. 글로 쓰이지 않은 모든 자간과 행간에 (무엇보다도 내 첫사랑의) 불면과 부상, 고통과 피곤이 스며 있다. 새벽 내내 아내는 곁에서 도로시 이불을 살핀다. 아침마다 도로시를 안으며 사랑한다 말한다. 도로시를 안은 아내를 안으며 그렇게 말하고 아내를 안은 도로시를 안으며 말하기도 한다. 부시시 눈 못 뜨는 도로시의 지난 꿈이 매일 궁금하다. 왜 울며 깼는지도 묻고 싶다. 언젠가 이야기할 그때도 좋겠지만 무엇보다도 지금이 가장 좋다. 온통 해주고 싶은 것들로 머리를 가득 채우며 하루가 다 가는 요즘이 가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