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문집 '저녁이 없는 삶'에 대하여
이 책은 10년에 걸쳐 쓰였다. 당시만 해도 내 고통이 책이 될 줄 몰랐다. 생을 끝내고 싶던 매 순간에 기록을 대안으로 선택했을 뿐이다. 절박함. 누구에게도 읽히지 않더라도 이렇게라도 부서진 시간들을 기워내야 했다. 이 과정 속에서 통증을 망각하거나 완화되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아마 아닐 것이다. 그랬더라면 이렇게 많이 쓰이지도 않았겠지. 반복되면서 하나의 출구처럼 자리 잡았다. 문도 빛도 아니었던 탈출구.
이렇게 쓰인 글들의 묶음인 이 책이 의미가 있다면 오로지 스스로의 생존에만 몰두할 수밖에 없는 조건에서 쓰였다는 것. 내가 선택한 생의 큰 방향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없는 수많은 일들이 닥쳐와 뺨과 복부를 갈겼고 폐를 쥐어짜고 목뼈를 부러뜨릴 듯 줄을 감아 당기고 있었다.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다간 침을 흘리며 웃거나 한강물의 수심을 재며 바닥이 닿을 리 없는 발버둥을 칠 일만 남을 것 같았다.
글을 쓰는 일은 이렇게 너덜너덜해진 채로 죽어 가는 스스로를 구경만 하지 않기 위해 할 수 있는 마지막 시도였다. 언젠가 멀쩡한 현실세계를 살게 되었을 때 또렷하게 회상하기 위한 보험이었다. 망각과 순응으로 그저 흘려보내지 않아야 했다. 쓸 수 있었기에 후회하지 않고 후회하지 않기에 다시 쓸 수 있었다.
찰나의 지옥들을 활자로 전시하며 세기말의 징조를 수없이 체감했다. 그러면서 세계와 벽을 쌓았고 피 흘리지 않는 방법을 익혔으며 피 흘려도 다른 방식으로 고통을 호소하는 법을 늘려 갔다.
집이 없는 자들처럼 가족이 없는 자들처럼 자아가 없는 자들처럼 선택권이 없는 자들처럼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기 위해, 뼈와 살을 쓸려가며 견딘 시간을 적어 내려갔다. 쓰인 건 모두 과거의 시간이지만 당시엔 현재이자 전부였고 너무나도 실감 나는 세계 자체였다.
며칠 전 도착했다. 가까이 두고 이따금 아무 데나 펼쳐 본다. 펼쳐 본 아무 데마다 온통 상흔이다. 온통 신음이다. 온통 눈물이다. 온통 절규다. 잉태했던 고통이 이렇게 책이 되어 세상으로 뛰쳐나왔다. 인간을 숙주로 삼았던 에이리언의 새끼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