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센던트, 사랑하는 사람이 죽었을 때

알렉산더 페인 감독. 디센던트

by 백승권




가족이 죽는 상상은 끔찍하다. 하지만 닥칠 수 있다. 사랑하는 여자가 죽는 상상은 더 끔찍하다. 하지만 이것 또한 닥칠 수 있다. 슬픔과 아픔과 고통은 단어로 표현하기엔 미약하다. 우리는 타인의 고통에 공감할 수 없고 같은 일을 겪는다 해도 그들의 슬픔은 내가 겪는 일에 비할 바 아니다. 결국 일상의 끔찍한 경험은 타인에게 먼저 일어났을 경우, 투사되어 나의 상황으로 상상의 여지를 남기고, 공포로 각인된다. 수많은 영화들이 사건과 사건에 마주하는 인물들이 처한 비극적 감정을 전해왔다. 분노하고 오열하고 부수고 어떤 대상을 찾아 복수하기도 했다. 선택한 장르마다 화법과 묘사를 달리하지만, 이해와 공감이 편하도록 빠른 문제 해결과 해소를 위해 폭력과 파괴의 방식으로 보여주곤 했다.

하지만, 현실이 어디 그런가?

우리네 옷장엔 총기와 총알을 쉽게 구할 수 없고, 극단적 감정 표출을 통해 이웃에게 상해를 입히는 일도 적으며 비탄과 슬픔에 빠질지 언정, 그것을 다 감내하고 따뜻하게 덮어줄 만한 훌륭한 지인을 곁에 둔 경우도 드물다. 우린 대부분 그저 받아들일 뿐이며, 버틸 뿐이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곤 누군가 떠난 이후의 일에 대비하려 주변을 정리하는 것 밖에 크게 어쩌지 못한다. 겨우겨우 최소한의 자신을 건사하고, 아주 가까운 이들에게 서로 의지하며 견딜 뿐이다. 그리고 천천히 잊으며 그의 공백을 지워간다.


운이 좋으면 이별의 시간을 가질 수도 있고, 긴 작별인사도 나눌 수 있을 것이다. 극단적 감정표출과 과도한 액션을 통해 상황에서 빠져나오려는 영화적 설정과는 다를 수밖에 없다. 현실이 갑작스러운 상황을 감내하는 방법이란 길고 지루하고 잊는 것뿐이다. 그게 진실이고 진심에 가깝다는 점에서, 후자의 방향을 택한 영화들은 관객과 그 길고 지루한 시간을 같이 견디며 조용한 공감대를 형성한다. 마냥 슬퍼할 수만도 없는 게 늘 현실의 사건들은 서로 다른 성격을 지니고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니까. 늘 미칠듯한 슬픔이 생성한 여백은 희미한 유머와 웃음으로 채워진다.

결국 웃을 일, 그러다 울고, 다시 웃을 일. 그리고 결국 안녕.

조지 클루니가 주연한 디센던트는 그런 영화다. 조상이 물려준 감당할 수 없는 부동산에 뭐 바비인형 정도는 아니지만 멀쩡한 딸도 둘이나 있다. 다만, 그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 어떤 우대권을 얻었는지 모르겠지만, 인생의 대부분은 가족보다는 업무 등으로 인해 아내를 외롭게 만들었고, 그의 아내는 그가 모르는 바다 어딘가에서 수상스키를 타다 보트에 부딪쳐 뇌사와 전신마비 상태에 장기간 놓인다. 병원은 의학이 허락한 모든 방식을 다 시도한 결과 그녀를 결국 삶에서 놓아주어야 한다는 통보를 전한다. 남자가 직접적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해준다 해도 그녀는 직접적으로 느끼거나 받아들이지 못하며, 다만 남자의 자기 위안이나 가족 구성원 단위의 신변 정리에 기여할 뿐이다.


디센던트는 아내의 죽음이라는 소재로 한 남자의 조용한 정리 과정을 하와이를 배경으로 그리고 있다. 미워할 수밖에 없는 사연을 지닌 사람에게 다가가 작별인사를 구하는 장면에서 영화는 죽음 앞에서 모든 관계가 재설정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설파한다. 모두가 그와 같을 수 없겠지만, 현실은 결국 그와 조금은 닮은꼴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다. 감정을 극단적으로 배재한 표정은 예술영화에서나 존재할 수 있을 뿐, 우린 대부분 영화 속 조지 클루니처럼 자질구레한 과정을 통해 주변을 재구성하고, 작별인사를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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