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와의 전쟁, 영화 속 조직폭력에 대하여

윤종빈 감독.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by 백승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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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초반 마틴 스콜세즈 감독의 카지노(Casino, 1995)를 비디오로 빌려본 적 있다. 로버트 드니로를 주축으로 샤론 스톤, 조 페시가 연기했다. 스릴러가 가미된 범죄영화, 지금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있는 것은 마피아가 배신자 니키(조 페시)를 생매장하는 장면이다. 풀숲이 무성한 곳으로 차로 데려온 후 마피아 둘은 니키를 끌어내려 쇠파이프로 피범벅을 만든다. 총을 썼더라면 단방에 보냈을 텐데. 영화는 온몸이 흉기에 의해 부서지는 장면을 길고 잔혹하게 보여준다. 마피아는 슈트 차림으로 기관총을 난사하는 신사적 악당들이 아닌 벗어진 머리와 튀어나온 배를 하고 쇠파이프 같은 구시대 무기로 상대적 약자를 길고 고통스럽게 죽이는, 범죄자의 본모습을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장면은 머리가 터지고 온몸이 피칠갑이 된 니키가 미리 파놓은 흙구덩이에 산채로 파묻히는 모습으로 맺는다. 마피아 둘은 태연하게 차로 돌아간다. 모골이 송연해졌었다. 저게, 조직의 폭력이구나.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를 본 것도 스무 살 초반이었다. 스크린 앞 3번째 줄에 앉아 후반부는 시종일관 가슴이 벌떡거렸다. 특히 야밤에 습격을 당했던 동수(장동건)가 복수심에 불타 도루코(김정태)를 비롯한 상대 조직과 벌이는 혈투는 피비린내가 진동했다. 배경이 되는 수산시장의 비릿함은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들은 회칼로 상대의 육체를 미친 듯이 찔러댔다. 생선에 꽂는 작살을 상대 가슴팍에 꽂아 끌고 가기도 한다. 비명과 욕설이 난무하고, 그렇게 부산의 상징은 바다가 아닌 조폭이 되었다. 같은 시간 준석(유오성)은 인턴 조직원들에게 살인 특강 중이었다. 군복을 입고 있었다면 특수작전임무를 띤 요원처럼 보였겠지만, 목적은 세력 보호와 번성이었고 이를 위해 상대방의 목숨까지 얼마든지 빼앗을 수 있다는 게 암묵적 규칙이었다. 그들이 휘두르는 칼로 보이는 조직폭력은 생지옥이었다. 경고로 찌르고 복수하기 위해 찌르고 찌르다가 계속 찌르고. 도루코를 죽인 동수는 영화 말미 수하에게 배신당하고 온 몸을 난자당하며 최후를 맞는다. 개봉 당시 그가 찔린 횟수가 24회인지 36회인지 논란이 될 정도로 시각적 청각적 충격은 엄청났다. 이후 영화 친구는 조직폭력을 다룬 한국영화의 교과서가 된다.

스무 살 중반, 뒤늦게 본 대부 시리즈(Mario Puzo's The Godfather, 1972)는 조직폭력의 클래식을 보여준다. 3부작 합쳐 546분에 달하는 러닝타임도 어마어마했지만 범죄 가문의 시작과 쇠락, 암투와 갈등을 연출, 연기, 음악을 통해 치밀하게 그려 보여준 것도 영화 사상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말론 브란도, 앤디 가르시아, 알 파치노, 로버트 드니로 등 대부가 보여준 범죄자들은 대다수 신사의 외피를 두르고 있었다. 영화는 그들에게 이탈리아에서 건너와 미국에 정착하려는 생존을 위한 싸움을 폭력의 명분으로 제시한다. 그들에게 가족은 혈육이자 사업 동료였고 보호자이자 배신자이기도 했다. 개인적 분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칼을 사용하기도 했지만, 조직 간 폭력의 교환 방식은 주로 총이었다. 칼은 일상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무기인 만큼 관객에게 마치 자신에게도 일어날 듯한 날카로운 간접경험을 줬다면 총은 하나의 판타지, 타인의 일이자,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하나의 볼거리로 머물렀다. 하지만 단발에 생과 사를 가를 수 있다는 분명함과 즉시성에 어떤 무기보다 동공의 확장을 유도했다. 총구가 보이는 장면엔 항상 긴장감이 흘렀다. 칼은 거리를 두면 생존확률이 있었지만 총은 희박했다. 대부는 칼과 달리 표피적 감정적 연결선 없이도 상대를 죽일 수 있는 총을 자신의 이익이 아닌 어떤 명분을 얻어 사용할 수밖에 없는 도구로 보여준다. 2부에서 마이클(알 파치노)이 -자신까지 죽이려 했던- 배신자인 형 프레도(존 카제일)를 처단하는 장면이 총성 하나로 처리되고, 3부에서는 마이클의 딸(소피아 코폴라)이 총에 의해 허망하게 목숨을 잃는다. 가문을 일으킨 폭력의 결정적 시발점이자 쇠락의 상징을 대부는 마피아들의 주 무기였던 총을 통해 보여주었다.

카지노. 친구. 대부. 그리고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위에서 언급한 카지노. 친구. 대부의 모습을 읽을 수 있었다. 음악, 배신자를 처리하는 과정에서의 상세적 묘사, 조직 두목끼리 대립하는 장면 등, 영화는 기존에 알려진 범죄영화의 익숙한 모습들을 효과적으로 가져온다. 시종일관 잘 빗어 넘긴 머리와 정돈된 수염, 슈트를 휘날리는 조폭들의 모습과 함께 깔린 음악(조영욱)은 마치 대부에서처럼, 비장하고 처연하여 향수와 엄혹했던 시대 분위기를 소환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부산 폭력조직 No.1 최형배(하정우)와 함께하다 다른 조직을 키운 김판호(조진웅)의 대립 장면은 과거 수많은 패러디를 양산한 영화 친구의 동수와 준석의 대립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특히 담뱃불을 붙여보라던 최형배에게 김판호가 "니 담뱃불 붙여주던 놈 아이다." 하는 장면은 영화 친구에서 "원래 키는 너보다 컸다 아이가.", "네가 가라 하와이" 하던 동수와 비견된다. 수컷들의 기싸움. 희번덕거리는 눈으로 털을 세우며 으르렁거리는 개들과 다를 바 없지만, 영화는 조직 두목 간의 지난 서열과 현재의 서열의 변화를 증명하는데 할애하고 있다. 특히 김판호의 왼쪽 뺨에 그어진 길고 선명한 흉터는 과거 최익현의 칼에 의해 생긴 것임을 영화는 이후 장면에 보여준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영화 카지노를 다시 떠올리게 했던 부분은 배신자 최익현(최민식)을 최형배의 오른팔, 박창우(김성균)와 그 무리들이 처리하는 장면이었다. 최형배를 떠나 김판호에게 붙었던 최익현은, 김판호 수하에 의해 최형배가 칼에 찔린 후 박창우에게 끌려와 발가벗겨진 채 집단구타를 당한다. 깊게 파놓은 흙구덩이로 밀려 떨어진다. 피투성이와 흙투성이가 된 최익현은 애걸하며 울부짖는다. 한때 머리에 기름 바르고 선글라스 끼고 슈트 휘날리며 거들먹거리며 걷던 남자. 한때 자신을 조직의 실질적 No.1이자 부산 바닥을 휘어잡았다고 여겼던 남자.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비리 세관원 출신이었다가 조직 폭력과 권력에 기생하며 명을 잇던 한 사내의 처참한 말로를 보여준다.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는 공무원도 민간인도 깡패도 아니었던 반달 최익현에 대한 이야기다.




연애의 허상 - 영화와 사랑에 대한 비밀과 거짓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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