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리타: 배틀 엔젤, 헬게이트의 서곡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 알리타: 배틀 엔젤

by 백승권







중년 남자 이도(크리스토프 왈츠)는 소녀의 머리를 줍는다. 나머지 신체를 만들어준다. 이름을 붙여준다. 죽은 딸의 이름, 알리타. 그는 버려진 자들의 부서진 몸을 고쳐주며 먹고살지만 그의 선의는 그를 더욱 가난하게 만든다. 땅을 판다고 돈은 나오지 않아서 그는 거대한 무기를 들고 범죄자를 죽이러 다닌다. 닥터 이도는 밤마다 현상금 사냥꾼이 된다. 소녀 얼굴 외에 전신이 기계인 사이보그 알리타는 그런 이도의 뒤를 밟는다. 졸지에 생명의 은인이자 대안 아빠가 된 사람의 밤 생활이 궁금할 법도 하다. 그곳에서 이도는 죽을 뻔하고 알리타는 이도를 살린다. 알리타는 그곳에서 이도를 위협했던 자의 머리와 몸을 분리시킨다. 칼이 아닌 발차기로. 알리타는 과거에 전투 병기였다. 기억이 다 안 나긴 하지만. 가장 놀란 건 이도였다. 딸 삼고 싶었던 녀석이 우주 최고 전투 병기였다니.


알리타(로사 살라자르)는 알아서 각성한다. 갑자기 나타난 악당이 알리타의 전신을 토막 내고 어쩔 수 없이 폐우주선에서 주워 온 전투 병기 신체로 갈아 끼운다. 신형은 좋은 거라 알아서 최적화된다. 알리타는 자신의 전투 욕망에 걸맞은 최적의 신체를 갖추게 된다. 이제 살육 파티만 하면 된다. 악당들이 몰려오기만 하면 된다. 장기매매와 똑같은 방식으로 사이보그의 신체들이 도륙되는 디스토피아, 남자 친구처럼 접근하던 휴고(키언 존슨)도 알리타를 만난 후 두려운 때문인지 후회 때문인지 (검은) 손을 씻으려 한다. 하지만 매번 그렇듯 너무 늦었다. 파괴적인 스포츠이자 신분상승의 기회였던 모터볼을 통해 폭력적 본능을 해소하던 알리타는 휴고를 구하지 못한다. 인간 남자와 사이보그 여자로 만나 미래 강남에서 신혼의 꿈을 펼치려 했던 커플은 사다리 차기를 즐기는 기득권 부자에 의해 강제 이별한다. 남은 건 알리타의 분노뿐이다.


유토피아에 대한 환상과 희망은 디스토피아를 더욱더 어둡고 처절하며 잔혹한 방식으로 생존할 수밖에 없는 경기장으로 바꿔놓는다. 마치 저개발 국가에서 세계적 스포츠 영웅이 되어 신분 전복을 꿈꾸듯, 디스토피아의 수많은 상황들은 유토피아에 대한 신화를 더욱더 견고하게 만든다. 전지전능한 지배자가 있고 그의 모든 권력이 위아래 세상의 질서를 휘어잡으며 바닥의 개미떼 같은 사람들은 시종일관 전투를 벌인다. 삶이 전투고 생존율은 극히 낮다. 심지어 죽은 인간이 기계의 몸으로 부활해 동아줄 같은 걸 잡고 파라다이스로 올라 가려는 시도까지 벌어진다. 환상은 아무리 잡으려 해도 잡히지 않을 때 더욱 매력적인 욕망의 대상이 된다. 시도한 자는 파멸한다. 그의 신체는 조각난다. 이로 인해 유토피아 진입 장벽은 높아지고 그 이미지는 강화된다. 죽음을 무릅쓰고도 오를 수 없기에 죽음보다 더 달콤한 곳이 된다.


죽음을 무릅쓴 자들의 개싸움 속에서 알리타는 현세의 핵무기 같은 존재가 된다. 이미 강한 자들에게는 반드시 확보해야 할 대상, 너무 약한 자들에게는 체제 전복을 위한 희망. 하지만 알리타의 기억은 너무 한정적이고 싸우고 부수는 본성은 컨트롤하기 힘들다. 알리타는 자신에게 요구되는 세상의 기대를 감당하기엔 가공할 전투력 외에 준비된 게 없다. 무엇보다 사람보다 사이보그가 많고, 알리타 역시도 사이보그인 상황. 알리타는 존재 자체로 디스토피아의 (상징적인) 핵심 권력으로 등극한다. 물리적으로 가장 강력하다는 이유로 만인의 기대를 등에 엎는다. 과거의 인간 개념이 거의 사라진 세상에서 알리타의 무지는 희소성 강한 인간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비인간적인 신체를 지닌 인간적인 존재. 약자에 대한 연민, 악행에 대한 저항을 비웃는 세상에서 알리타는 결코 인간에게 유리한 존재가 될 수 없다. 알리타가 인간에 대한 기대가 무너졌을 때, 컨트롤할 수 없는 감정으로 모든 물리적인 화력을 폭발시킬 때 지금의 디스토피아는 다른 파라다이스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알리타가 잠재된 파괴 본능의 과녁을 시시한 욕망을 지닌 (실망스러운) 인간 대다수를 향해 돌릴 때, 진짜 헬게이트가 열릴 것이다. 원작의 또 다른 버전들은 잘 모르지만 후속편이 나온다면 기대하고 싶은 부분이다. 구원자 네오가 아닌 세상을 소돔과 고모라로 만들어 버릴 타락천사 알리타를 기다린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국가부도의 날, 붕괴의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