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뢰한, 전도연의 김혜경에 대하여

오승욱 감독. 무뢰한

by 백승권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남자 주연배우에 대한 신뢰가 적었다

포스터도 흥미를 끌지 못했다

감독에 대한 인지도가 없었다

박성웅이 등장하는지도 몰랐다

마지막 인상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소량의 관심이라면 전도연,

최근 개봉작 중 유일한 19금이라는 점


결말이 저게 뭐냐


영화관을 나오면서 뱉은 첫마디였다


같이 본 지인은 감탄을 금치 못했다

뭉클한 로맨스라고 했다

한번 더 보고 싶다고 했고

실제로 그는 다른 지인들과 두 번을 더 봤다


곱씹었다


좋은 장면들과 대사들은 있었다

엔딩의 실망감으로 다소 희석되었지만

전도연은 전도연을 제외한 모든 요소를 합친 것보다

더 큰 존재감으로 작용했다

시선을 빼앗은 유일한 피사체이기도 했다


스토리는 익숙했다

범인을 쫓는 형사가

범인의 애인인 술집 여자를 만나고

그녀와 위험한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절제된 화면들이

스산하게 채워졌다


남자의 허세에

여자는 휘둘리지 않았고

이것은 어떤 전개에도 견고하게 작동하는

전도연의 입지와도 일맥 했다


김혜선, 아니 김혜경으로 분신한

전도연은 나오는 장면마다

감정을 말 그대로 흡수했다

표정, 움직임, 대사 하나하나가

깊고 푸른 파고를 일으키며 어둠 속을 넘실거렸다


한때 잘 나가던 술집 여자가

사람 죽인 건달(박성웅)에게 목매며

신세 망치는 신파를 구원할 방법은

많지 않은데, 김혜경(전도연)은 정재곤(김남길)의 담배연기와

민영기(김민재)의 조 까튼 조롱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살아남는다


모든 과정 속에서 피와 폭력이 섞이고

마약과 쓰레기들로 넘쳐도

전도연의 김혜경은 모두에게 지탄받을 선택 속에서

최소한의 존중과 이해를 확보한다


이해할 수 없는 캐릭터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게 만든 전도연의 중력이었다


목숨 같이 품고 아끼고

희생과 정열을 다 바쳤던 건달 애인은

돈을 요구하며 건널 수 없는 강을 건너고

갑자기 나타나 오장육부를

흔들리게 하던 형사 새끼는

지금과 조금 다른 인생에 대한

가능성을 생각하게 했던 그 새끼는

총을 들고 나타나 속았지 널 이용했어 라며

사태를 지옥으로 만든다


그리고 아무도

전도연의 김혜경을 책임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도연만이 김혜경의 눈빛과 몸짓으로

꾸역꾸역 죽지도 못하는 삶을

연명하게 했을 뿐이다


이런 영화,

박중훈과 오연수가 지지고 볶았던

게임의 법칙 이후에 잘 생각이 나지 않는다


불편함이 영화적 컬러로 드러나기 위해서라면

다른 장치들이나 관계의 매듭이

좀 더 필요하지 않았었나 싶다


물론 그 어떤 이유에도 불구하고

전도연의 김혜경은 시종일관 서슬 퍼랬고

김민재의 민영기도 당장 죽이고 싶을 만큼

날 것의 개새끼를 보여줬다


전도연이 아침상을 차리려고

싱크대 앞에서 복작대던 장면이 생각난다

어제의 침울함과 무기력함은 온데간데없었고

특유의 목소리와 눈꼬리만이

볕 아래서 살랑거리고 있었다


그녀와 밤을 보냈던 다른 남자에게도

그런 웃음을 보였을지 알턱은 없지만

그때 아마 전도연은 이 남자와의

다른 가능성에 대해서

생각했던 순간이 아닐까 싶다


사람답게 살고 싶던 꿈을 꾸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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