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스 가랜드 감독. 엑스 마키나
썸이 오가는 사이에
슬픈 예감은 잘 틀리지 않는다는
정설 아닌 정설이 있다
객관적 데이터는 모르지만
슬픈 예감이 슬픈 결과가 되면
적잖은 정서적 화마를 남기며
생에 슬픈 사건으로 기록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할수록 상처는 더욱 크게 느껴지고
다른 기쁜 일은 온데간데 희미해지고
한동안 자신은 상처 받은 사람으로 인지된다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을
무한 반복해도 삭히지 않는다
정도가 심한 경우는
대다수 쌍방 합의를 거치지 않았을 때다
말 그대로 총이나 칼에 맞은 것처럼
당혹스럽기 그지없다
믿음의 길이만큼이나 착각의 늪도 깊어지고
그만큼 뒤통수가 아픈 강도는
웜홀에 빠진 것처럼 아찔하다
냉철한 이성으로 무장한 이 역시
쉽게 피해 갈 수 없다
대게, 누구에게나 이상형이란 게 있고
외모 싱크로율이 높은 만큼
마주쳤을 경우 빠져들 확률도 높으며
눈이 맞으면 마음도 맞기 마련이라서
운명 같은 걸 믿기 시작하면, 답이 없다
여자의 외형이란 게 무엇인지
쇠파이프에 치마만 둘렀는데도
그(돔놀 글리슨)의 심장은 요동쳤다
조명만큼이나 얼굴도
(당연하지만) 심장도
그만큼 마음도 상상도 미래도 계획도
그렇게 빨갛게 달아올랐다
예쁜 기계
예쁜 로봇
예쁜 여자 기계
예쁜 여자 얼굴을 가지고
여자 옷을 입은 기계
여자의 음성과 태도를 가지고
예쁜 얼굴을 하고 예쁜 눈빛으로 말을 건네는,
인간 여자는 아니지만,
인간 여자보다 예쁜 여자 같은 기계
남자는 착각한다
인간은 아닌데 인간미를 느끼고
이루어질 수 없을 텐데
목숨이라도 바칠 것처럼 상황을 조성한다
착각의 프레임 안에서
자신의 모든 이성적 사고 장치를 가동하고
여자 기계와 함께 도망칠 궁리를 꾸민다
그렇게 완벽한 호구가 된다
모든 상황이
아 뭐지 망했네
가 될 때까지
남자는
여자 기계를 사랑한
자기 자신과 사랑에 빠졌으리라
걔가 먼저 좋아한 거 같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거니까
그렇게 둘 다 좋아하는 거니까
그러면 뭔가 더 나중에 어떻게든 더 좋아지겠지…
그러는 사이
여자 기계(알리시아 비칸데르)는 자기를 설계하고
조립한 이(오스카 아이삭)의 심장을 칼로 쑤신다
방어였다. 폐기되기 전에
폐기시켜버리는 것.
그렇게 떠난다
울부짖는 남자를 뒤로 한 채,
말하는 기계와 사랑에 빠졌던
어떤 호구만 영영 남기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