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소설 [오렌지]
더 이상 도시가 아니었다. 천국인지 지옥인지 분간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커다란 방독면을 뒤집어썼다. 사방을 더듬거리며 걸었다. 보여도 보이지 않았다. 들려도 들리지 않았다. 당장 벗어나고 싶었다. 하지만 방향을 몰랐다. 사방으로 흩어지고 있었다. 모두 갇혀 있었다. 문은 없었다. 탈출구를 몰랐다. 찾는 곳은 영영 보이지 않을 것 같았다. 어디로 가야 할지 아무도 몰랐다. 애초 정하지도 않았던 것처럼.
2029년 9월, 한국 정부는 미세먼지를 살인 먼지로 지정한다. 사망자 집계가 2만 명을 넘어서고 있었다. 그중 8천여 명의 사망원인은 자살이었다. 미세먼지 자살. 인터넷 괴담은 다수의 실험 결과 사실로 입증되었다. 미세먼지 레벨이 ‘악마’인 지역일 경우, 야외에서 70여 회 심호흡을 하면 폐가 기능을 상실해 사망한다는 소문이었다. 다수의 인플루언서가 코웃음 반 긴장 반으로 시도했고 절반 이상이 응급실 행 또는 사망에 이른다. 수백만 명의 구독자가 그들의 죽음을 지켜보며 떨고 있었다.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미세먼지로 인해 뒤늦게 도착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들의 역할은 구급차를 불러 사망자를 실어 나르는 일이 되었다. 구급차는 천천히 왔다. 생존자가 있는 경우는 드물었다. 거의 모든 뉴스 채널이 미세먼지를 자살 먼지로 부르기 시작했다. 한국 정부는 자살 시도 확산을 막기 위해 살인 먼지로 공표한다. 하지만 이미 늦은 감이 있었다. 전국적으로 미세먼지를 통한 자살 시도가 급증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곳곳에 미세먼지 대피소가 마련된다. 기존 시설의 재활용. 각 은행의 ATM센터가 대피소로 지정된다. 방독면과 산소통이 비치된다. 뉴스만 있었다. 실물을 본 사람은 없었다. 비치함은 모두 파손되었고 방독면과 산소통이 있던 자리는 비어 있었다. 중고나라에는 방독면과 산소통을 묶어서 거래되고 있었다. 강경하게 단속하겠다는 발표가 있었지만 아무도 믿지 않았다. 방독면과 산소통 상태가 불량이라는 설이 SNS에 퍼지고 있었다. 제작업체 대표가 관련 공무원의 친척이라는 찌라시가 돌고 있었다. 대피소는 말 그대로 대피소로만 활용되고 있었다. 혈세 낭비라는 비난 여론이 고개를 들고 폐쇄를 요청하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확산되지 않았다. 대피소마저 없다면 위급 시 피할 곳이 없었다. 대피소까지 다다르지 못해 입구 앞에서 각혈을 하며 쓰러진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은 다시 일어나지 못했다. 그들의 시체는 대피소 주변에 쌓여갔다. 차창 안이 보이지 않는 스타렉스가 와서 그들을 싣고 서둘러 떠났다. 시체가 생체실험에 이용된다는 소문도 있었다. 스타렉스는 제약회사에서 보냈고 체내 미세먼지를 감소시키는 약을 개발 중이라는 익명의 제보도 있었다. 대피소 외벽엔 실종자를 찾는 전단지가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전단지는 누렇게 변색되어 낡아 바스러질 때까지 붙어 있었다.
남산 미세먼지 대피소, 줄여 남산 대피소는 남산에 없었다. 남산 대피소는 을지로에 있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을지로와 종로 사이 골목 어딘가에 있었다. 이 동네엔 골목이 많았다. 각 골목엔 이름이 없었다. 조금만 고개를 들어도 다양한 굵기의 전기선이 얽혀 하늘을 가리고 있었다. 문 닫은 상점과 불이 꺼질 줄 모르는 커피숍들이 즐비했다. 큰 길가에 비해 골목의 공기는 비교적 맑게 느껴졌다. 자욱하지 않은 정도였고 휴대폰으로 확인되는 미세먼지 농도는 늘 악마였지만 눈앞이 제대로 보인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위안이 되었다. 골목만 들어서도 방독면을 벗고 심호흡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들은 놀라며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고 인스타그램에 바로 업로드했다. 심호흡 후 각혈을 하고 쓰러지는 사람도 있었다. 쓰러지면 얼마 지나지 않아 차창 안이 보이지 않는 스타렉스가 와서 싣고 갔다. 흰 방독면과 흰 가운, 흰 장화를 신은 사람들이 흰 장갑을 끼고 흰 시트가 깔린 침대에 싣고 쓰러진 사람을 옮겼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에게도 휴대폰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주변 사람들에 의해 제지당했다. 사진 찍은 사람도 같이 끌려간다는 소문이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켜보기만 했고 저 차에 실리는 사람이 자기가 아니라는 점에 안도했다. 남산 대피소가 제약회사의 비밀 연구소로 들어가는 입구라는 소문도 있었다. 다른 지역에 비해 검정 스타렉스가 자주 출몰한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