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르코스, 절망은 희망의 얼굴을 하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나르코스: 멕시코 시즌2

by 백승권





"이게 최선"이라는 말은 자기 합리화를 위한 좋은 재료다. 결과가 무척 좋다면, 사실 힘 좀 뺐어 정도로 다듬을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최선을 다했다는 표현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과정의 어느 순간도 내 몫을 다하고 그 이상을 해내기 위해 노력했다는 변호이자, 다음 스텝으로 나아가기 위해 자신을 위한 위로이기도 하다. 최선을 다했는데 결과가 이런 거면 너의 능력이 겨우 이 정도야?라는 반격을 당할 수도 있지만, 일의 결과가 좋지 않게 풀리는 이유란 무궁무진하니까. 대부분은 노력이 부족했다거나,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말로 남은 자들끼리 멱살잡이나 할 것들이 안된다. 물론 구성원 개개인의 최선 여부를 검토하는 게 망한 일의 책임자를 찾기 위한 첫 번째 혈안이 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누가 그걸 인정하고 싶겠나. 변수는 예상 가능했다면 변수가 아니다. 그래서 최선을 다했다는 선언은 침묵의 존중을 확보한다. 서로를 보호하기 위해. 빨리 잊고 넘어가기 위해.


월터와 그의 동료들은 멕시코 최대 마약 카르텔 과달라하라를 덮치기 위해 목숨을 걸었다. 과달라하라는 콜롬비아 마약 공급 조직과 연계하여 미국으로 엄청난 양을 나르며 수익을 분배한다. 일종의 물류비. 금액으로 환산하면 연간 수조 원에 달하기도 한다. 콜롬비아가 만들고 멕시코가 나르면 미국이 망하는 시스템. 마약중독이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지자, 뒤늦게 전쟁에 투입된 미국은 멕시코에서 유능한 요원을 잃는다. 미국 윗선의 심기를 건드리고 동료 요원들을 분개하게 만드는 사건이었다. 월터 역시 수사 중 희생된 요원과 직접적인 친분은 없었지만 사안의 심각성과 마약 네트워크를 분쇄시켜야 한다는 열망으로 가득했다. 같이 팀을 이룬 요원들 역시 사연은 제각각이었지만 멕시코 카르텔을 없애야 한다는 사명감만은 같았다. 악의 끝에 펠릭스(디에고 루나)가 있었다.


펠릭스는 콜롬비아와 달리 멕시코 카르텔을 '파트너십'으로 운영하지 않는다. 그가 원하는 건 오로지 독재와 복종이었다. 펠릭스는 자신의 권좌와 마약사업에 대한 구상을 완성하기 위해 수사 요원 키키(마이클 페냐)를 잔혹한 고문 후 죽이고, 형제 같은 동업자들을 밀고하고, 부패한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매번 위기에서 빠져나간다. 그에게서는 의미심장한 차가움이나 폭발할듯한 뜨거움이 느껴지지 않는다. 그가 초조함에 휩싸일 때는 마약 사업과 관련하여 수사망이 좁혀지거나 그로 인해 비즈니스가 방해받을 때였다. 목적과 필요에 의한 네트워크 형성이 아니라면 펠릭스에게 인간관계는 아무 의미 없었다. 펠릭스는 직접 총칼을 들며 맘에 안 드는 자들을 처형하는 자가 아니었다. 명령을 내리는 자. 배신을 모의한 자의 아내와 아이들을 최대한 잔혹하게 죽이라고 명령하는 자였다. 이 처형이 모두에게 경고가 되도록. 자신을 배신하는 자의 최후를 널리 알리도록. 펠릭스는 슈트를 입은 악마였다. 그에겐 인간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 그런 펠릭스를 월터와 그의 동료들이 쫓고 있었다.


펠릭스를 쫓는 과정에서 수많은 납치와 살인이 일어난다. 멕시코 카르텔 내부도 분열되고 있었다. 펠릭스는 연합 모의 과정에서 결정적인 배신을 당하고 파멸의 기로에 선다. 수십 톤의 마약을 단숨에 이동시켜야 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이를 위해 비행장을 건설하고 대형 항공기를 사들인다. 이 비행장을 덮치는 게 월터의 계획이었다. 상부의 직접 승인이 없었고 실패할 경우 생존 가능성은 희박했다. 월터와 동료들은 본부를 차리고 잠을 설치고 먹지도 씻지도 못하며 계획의 성공을 위해 몰두한다. 작전 당일 현장을 덮치고 증거물 전부를 불태우려는 찰나, 어둠 속 예상에 없던 라이트가 켜진다. 내부자의 배신과 함정. 격렬한 총격전이 벌어지고 월터를 제외한 대부분의 동료들은 현장에서 처참하게 죽는다. 실제 인물과 사건, 에피소드에 의해 재구성된 극이지만, 이 부분에서만큼 허탈감을 감추기 힘들었다. 아주 오랜 기간 동안 많은 것을 수없이 희생해가며 다수가 힘겹게 달려온 작전이었다. 성공한다고 해서 엄청난 부와 명예가 쏟아지는 것도 아니었다. 보통의 삶이 아니더라도 최소한으로 쥘 수 있는 아주 작은 한 줌의 합당한 보상이랄까. 작전의 성공은 도모한 자들의 삶에 아주 작은 보상을 위해 너무 중요한 요소였다. 각자의 피땀눈물이 먼지와 어둠 속에 녹아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실패한다. 남은 건 시체와 침묵, 절망뿐이었다.


극화된 실화는 결국 타인들의 인생 이야기다. 멕시코 카르텔을 쫓던 월터와 동료들은 실패했다. 겨우 살아남은 자에게 남겨지는 일이란, 실패를 추궁당하며 좌천되고, 한 줌의 보상도 없이 고요히 사라지는 거였다. 애초 없던 사람처럼. 열정과 명분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자의 최후였다. 박수받는 자들은 애초 정해져 있었다. 쉼 없이 말을 바꾸고 책임을 회피하며 권력과 이익에 철저히 순응하는 자들. 월터는 그들이 아니었다. 그들이 아니어서 소모품으로 쓰였고 버려졌다. 할리우드 해피엔딩은 주로 이런 사람들이 꾸역꾸역 고생하다가 결국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로 의미 있는 결과와 성취를 거둔다 지만, 나르코스: 멕시코에서 월터의 삶은 정반대였다. 다 죽었고 홀로 남아 모든 고통을 감당해야 했다. 이것이 의지를 지니고 자기 앞의 삶에 모든 것을 걸고 총력을 다하는 자의 현실이자 결론이라면, 왜 목적과 소명을 지니고 열심히 살아야 하나 싶었다.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사다리 차기를 하고 있다면 내가 왜, 대체 내가 왜.




keyword
이전 02화벌새, 서울 사는 은희의 고통뿐인 인생에 대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