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계선, 첫사랑이 끔찍한 범죄자라면

알리 아바시 감독. 경계선

by 백승권






티나(에바 멜란데르)는 감정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 배로 건너오는 입국자들 중 누가 소아성애 범죄자인지 누가 몰래 금지품을 숨겨 들어오는지 냄새로 검문한다. 놓치는 법이 없다. 의심은 늘 확실했다. 이처럼 티나는 탁월한 능력을 지녔지만 사람들은 그를 늘 낯설어한다. 거리감. 티나의 외모는도시 문명사회에서는 조금 낯설다. 원시 부족의 느낌에 가깝기도 하다. 티나도 티나의 아빠도 티나의 동거인과 티나의 이웃, 주변 모두가 이를 알고 있다. 하지만 외모 외에는 어떤 것도 다르지 않다. 언어, 태도, 패션, 상점에서 물건을 사는 행위까지. (사실 음식이 잘 안 맞긴 하다) 티나는 자신이 타인들과 얼마나 다른지 알고 있다. 모를 리 없다.


티나의 검문에 걸린 자 중 유난히 수상한 사람이 있다. 이름은 보레(에로 밀로노프), 현장에서 적발된 죄는 없지만 하나 기이하다면 티나와 외모가 닮았다는 점. 누가 봐도 남성의 외모와 체구지만 검문 결과 여성기를 가졌다고 했다. 티나는 본능적인 친근함을 감지한다. 이 외롭고 캄캄한 세상에 나와 닮은 사람이 있다니. 티나는 보레와 급격하게 가까워진다. 숲 속에 있는 자신의 집에 초대한다. 티나의 동거인 롤랜드(요르겐 토르손)은 보레를 경계한다. 보레는 산에서 벌레를 잡아먹는다. 티나에게도 준다. 티나는 먹고 웃는다. 보통 인간들과 다른 몸 다른 얼굴을 가진 티나와 보레는 산속에서 발가벗고 서로를 깊이 끌어안는다. 근육과 신경이 곤두서고 즐거운 괴성이 숲을 뒤흔든다. 둘은 발가벗은 채 숲을 마구 뛰어다닌다. 같이 수영하며 하나가 된다. 깊은 밤 보레는 티나에게 말한다. 당신과 나는 인간이 아닌, 트롤 종족이라고. 나의 부모는 과거 인간들에게 실험당한 후 죽었고 당신의 부모도 지금 인간 부모가 아닐 거라고. 티나는 평생 안고 살던 오랜 의문으로부터 어떤 답을 들은 듯했다. 각성. 티나는 자신이 누군지 재정의한다. 평생 자신을 속인 인간 아버지를 찾아가 원망한다. 보레가 품고 있던 인간에 대한 깊은 증오가 티나에게 조금씩 옮겨진다. 하지만 티나는 외모 외에 인간과 다를 바 없이 살고 있었고 이를 단숨에 바꿀 수 없었다. 평범한 삶보다는 덜하겠지만 티나는 인간들을 돕고 자신도 도움과 관심을 받으며 삶을 겨우 영위하고 있었다.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는 부분. 하지만 보레는 달랐다. 보레에게 인간이란 복수의 대상이었다.


냄새로 인간의 불안과 불온을 간파하는 티나의 탁월한 능력이 범죄 수사에 적극 활용된다. 소아성애 범죄 수사 중 용의자를 찾았고 이어 조력자까지 체포한다. 조력자는 보레였다. 인간의 아기를 (자신이 낳은 아기 트롤과) 바꿔치기 해서 범죄세력에게 공급하고 있었다. 이것이 보레가 인간들에게 복수하는 방식이었다. 보레에게 깊은 공감대를 넘어 사랑의 감정과 행위까지 격렬하게 나누었던 티나의 충격은 말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인간 문명의 질서를 파괴하고 끔찍한 희생과 피해를 입히는 범죄자를 묵과할 수도 없었다. 티나는 보레를 체포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고 보레는 어떤 원망과 비난도 없이 도망친다. 티나는 혼자가 된다. 동거인도 내쫓은 지 오래였다.


처음엔 한 국가가 이민자들을 대하는 방식에 대한 우화로 보였다. 외모가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괴물 취급하고 욕하고 차별하고 멸시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견디고 살아가야 하고. 끝없는 외로움을 겪다가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희망을 발견하며 희열을 느끼고. 다시 외로움이 해소되는 과정 중에 엄청나고 끔찍한 폭력을 목격하며 충격에 휩싸이고. 선과 악으로 이분할 수 없는 세계에서 영화는 티나와 보레를 통해 같은 동족 집단조차 윤리적 기준까지 나뉠 경우 어떤 파국이 발생하는지 외면하기 힘들지만 너무 힘든 질문을 던지는 것처럼 읽혔다. 그런데 이 묘사의 정도가 남의 둥지에서 남의 알을 밖으로 던져버리는 뻐꾸기 수준이라는 점에서 사고의 정지가 일어났다. 인간과 닮은 존재(트롤)가 인간의 아이를 끔찍하게 해치고 인간과 비슷한 자신(트롤)의 아이를 가져다 놓는다는 설정에서 어떤 판단과 해석을 내려야 할지 길을 잃었다. 그렇다고 보레가 인간의 후손을 모조리 트롤로 교체하려는 원대한 계획이었느냐, 그것도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그 방식과 수위는 유대인 말살 정책의 끔찍함과 흑인 박해 역사의 극한의 폭력성과도 우열을 가릴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


결론적으로 티나는 애초 적응하여 삶의 근간을 이루고 있던, 인간 세계의 질서를 유지하는 쪽에 섰다. 보레의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자 자신이 수용할 수 있는 한계치를 선언한 셈이었다. 티나의 헤아릴 수 없이 깊은, 평생의 외로움이 보레를 만나고 사랑에 빠진 순간 어떤 위로와 애정으로 폭발했는지 야수성과 생동감이 넘치는 장면들을 통해 영화는 보여주지만, 인간 세계의 상식에 학습된 자로써 더 나아가지 못하는 모습을 통해 후천적 교육과 길들임이 야만과 문명을 어떻게 나누는지 드러내기도 한다. 보레는 눈에는 눈, 이에는 이를 실천하는 자였다. 티나는 아니었다. 그 차이가 극단주의자들과 아닌 자들을 나누는 기준이기도 했다. 과거의 역사적 범죄들이 현재의 인류에게 어떻게 보복하는가를 보여주는 이야기기도 했다. 그 공격과 제물의 대상이 아기라는 최약자라는 점이 아직도 불편함에 견딜 수 없게 만든다. 인간의 범죄는 부메랑처럼 돌아오고 우리 중 가장 약한 자들이 피를 흘릴 거라는 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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