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일이 사라졌다. 1년에 딱 하루, 이 세상에 나와 힘차게 울었던 그 날. 태어난 이후로 빠짐없이 해마다 챙겼던 그 날이 이제는 아무 의미가 없어졌다..
처음으로 그렇게 생각한 날이 있었다. 가장 소중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고 나서 그 사람의 생일은 더 이상 어떠한 힘도 가지지 못하는 구나를 느낀 것이다. 그 사람이 떠나고 처음 맞는 생일. 가족들은 모여 다 같이 밥을 먹었다. 생일제를 준비했고 케이크를 사서 기도를 했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그다음 해부터는 함께 촛불을 켜고 축하할 당사자가 사라졌으니 생일파티가 무슨 소용이겠는가. 가장 가까운 사람들조차 챙기지 못하는 생일날, 사라진 누군가의 생일. 슬펐다.
생일날이 사라진 대신 제삿날이 생겼다. 탄생을 축하하는 날은 하늘나라로 가고 나서부터 빛바랜 액자에 끼워둔 아주 오래된 사진처럼 그냥 지켜보는 날이 되어버렸다. 아득히 멀리 떨어져 아무 힘도 없는.
그리고 또 한 사람을 생각한다. 우리 할머니. 할머니는 맞벌이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같이 살면서 늘 우리 삼 남매를 길러주셨다. 참 큰 사랑을 베풀어 주셨던 할머니가 노환으로 별세하셨을 때, 참 많이 울었었다. 그 날은 어린이날이었다. 그래서 이제는 매 년 5월 5일 어린이날 전 날 밤에 온 가족이 모여 제사를 지낸다. 대신 할머니 생일은 사라졌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적고 있는 중에도 할머니가 태어난 날이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 것이다. " 할머니 생신이 며칠이었지..? "... 돌아가신 날은 기억이 나는데, 그토록 오랜 시간 같이 살았던 할머니의 생일이 생각나지 않는다. 우리 할머니, 십수 년을 같이 살았는데... 참 어처구니가 없다. 아마 앞으로도 그렇겠지 싶다. 더 이상 할머니 생일을 챙기지 않는데 나 말고도, 가족들도 점점 더 잊고 살겠지.
요즘 가장 많이 듣는 노래 제목. '어떻게 이별까지 사랑하겠어, 널 사랑하는 거지.'... 노래 제목이기도 한 문장을 보며 생각한다. 각자에게 다가오는 뜻은 다르겠지만, 나는 처음 들을 때 헤어진 연인이 아닌 돌아가신 나의 가족을 떠올렸었다. 도무지 사랑하는 가족의 이별까지 사랑할 순 없는 것 아닌가. 마지막으로 잡았던 그 손의 온기를 꼭 한 번만 다시 느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