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 로치 <꿀꺽, 한 입의 과학>
… 위로 나오는 가스를 측정하는 것도 아래로 나오는 가스를 측정하는 것도 나름의 단점이 있다. 하지만 둘 다 맨 처음 방식에 비하면 많이 발전한 형태다. 역사상 최초의 장 내 가스 연구가 수행된 곳은 프랑스 파리다. 프랑수아 마장디라는 의사가 1816년에 <건강한 남성의 장 내 가스에 관한 고찰>이라는 논문을 발표함으로써 장 내 가스 연구의 새 지평을 열었다. 그런데 사실 이 제목에는 어폐가 있다. 이 남성이 특별히 병을 앓지는 않았지만 이미 사망한 데다 머리는 어디론가 떨어져 나가고 없었던 것이다. <물리화학 연보>에 실린 그의 또 다른 글을 보면 이 배경을 이해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사형수들에게는 처형 한두 시간 전에 가벼운 식사를 제공한다” 물론 레드와인을 곁들었겠지. 얼마나 프랑스다운가!
-메리 로치, <꿀꺽, 한 입의 과학> 최가영 역, 을유문화사, 246~7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제목 때문인데, 실은 저런 식의 제목은 내가 가장 질색하는 종류의 것이기도 하다. 이 책이 출간된 2014년 즉 십여 년 전만 해도 재기 발랄하다는 확고함을 갖고 꿀꺽 어쩌고를 썼을까, 했는데, 다시 보니 원제목이 Gulp이다. ‘한입의 과학’이 사족이고, 꿀꺽이 원제목인 셈이다.
하여튼 저 취향과는 맞지 않는 제목 때문에 읽은 것은 아니고, 그야말로 사족의 사족인 ‘소화 기관 모험기’에 낚여서 읽게 되었다. 나는 정말 그지 발싸개 같은 위를 갖고 있기 때문에 (가뜩이나 유약하게 태어난 위장을 술과 카페인으로 이십 년간 고문해 온 원죄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술을 완전히 끊고, 해가 지면 곡기를 입에 대지 않으며, 오후에는 디카페인만 마시는 금욕의 길을 걷고 있는데도 자려고 누우면 속이 불편해져서 결국 위산억제제를 찾게 되는 가엾은 중장년의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이 책을 읽으면 나의 일부이면서도 나의 의지에 가장 반하는 이 소화기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더 넓어지지 않겠느냐라는 기대와, 과학 저술계에서는 제법 유명한 듯한 저자의 이름 때문에 읽게 되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소화기관에 대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고 보기는 어렵다. 내가 가장 흥미를 갖고 있는 위나 소장에 대한 것은 대부분 알고 있는 내용이거나 내가 겪고 있는 고통과는 거리가 있는 내용-대단히 흥미 위주의-이 주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하긴 뭐가 더 있겠는가.) 그러나 소화기관의 부수적인 산물들 즉 침이라든가 가스(방귀), 대변과 같은-써놓고 보니 부수적이라기보다는 필수적인- 요소들에 대한 매우 흥미롭거나 새로운 내용들이 제법 포함되어 있다. 타액과 가스에 대해서만 연구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약간 존경심이 들 정도이다.
하지만 못지않게 이 책에는 불쾌감을 유발하는 내용들도 적지 않다. 특히 동물들을 얼마나 잔인하게 다루는지, 그리고 그것을 얼마나 인간의 흥미 위주로 다루는지를 읽다 보면 겨우 이따위 지식을,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끔찍한 실험들을 하는 것에 대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요즘의 과학 저술가들은 이런 면도 어느 정도 고려해 가며 쓰거나 불필요한 동물실험에 반대하는 자신의 입장을 조심스럽게 첨언하는 식의 최소한의 윤리성을 보여주는데 반해, 십여 전만 해도 동물권에 대한 인식이 전무했음을 이렇게 다시금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은 다른 점잖은 교양서들이 쳐다도 보지 않을 내용들을 다수 담고 있으며, 왜 이 저술가가 명성을 얻었는지 알 것 같은 적극적이고 광범위한 취재를 따라다니는 재미가 있고, 덤으로 유명인들의 뒷이야기들도 뒷담화 하듯 읽는 재미가 따른다는 등의 장점을 지닌다. 특히 변비와 거대 결장 부분은 인간의 이야기인데도 고양이를 떠올리며 읽게 되었다. 쥰이 변비로 고생한 덕분에 고양이 변비에 대해 많은 자료들을 찾아본 바 있는데, 거대 결장과 변비의 부분은 인간과 고양이의 내용이 거의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엘비스 프레슬리에 대해 어떤 새로운 연민의 관점을 갖게 된다.
… 최대 아이러니는 모든 생명은 소화관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이다. 호러츠는 엄밀히 따지면 인간이란 소화관 주변 조직이 고도로 진화된 지렁이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먹을 것을 찾으려니 필요해서 두뇌가 생겼고, 음식을 집어 들자니 필요해서 손발이 돋아났다고. 이렇게 덩치가 점점 커지자 팔다리 구석구석에 에너지 연료를 공급할 순환 시스템이 필요해졌고, 이런 식으로 인체 구조가 점점 복잡해졌다. 사람의 소화기관에는 아직도 이런 진화의 흔적이 남아있다. 자체 내장된 독립적 면역계와 원시적 뇌가 바로 그것인데, 전문 용어로는 장관 신경계라고 부른다. 그러고 보니 돈 반플릿이 한 말이 생겨난다. “사람들은 자신이 주변에 자잘한 부속품이 주렁주렁 달린 거대한 파이프라는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랍니다.”
무엇을 먹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하지만 인간의 인간다움은 그것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 결정된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먹었던 구멍으로 배설하는 말미잘이 아님에 감사해야 한다. 초식동물이나 반추동물이 아니라는 것도 감사할 일이다. 용광로에 연료를 대는 데 일생을 허비하지 않아도 되니 말이다. (중략) 고릴라는 소처럼 매일 삶지도 않은 풀포기를 엄청나게 먹는다. 이것이 몸속에서 발효되어 만들어지는 에너지로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다. “고릴라는 이파리를 소화시키는 데 하루 종일을 보냅니다. 앉아서 씹어 넘긴 다음에 배 속에서 요리하는 거죠. 그러니 두뇌를 고차원적인 사고를 하는 데 쓸 여유가 있겠습니까?”
-위의 책, 340~1
인간이 두뇌를 고차원적으로 쓴 결과인 현대의 여러 끔찍한 풍경들을 볼 때 왜 인간이 고릴라나 판다처럼 하루 종일 풀을 씹는 것이 일생을 허비하는 일이 되는지 반문하게 된다. 육식동물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이 사실상 천국이 아닐까? 물론 풀이 무제한으로 자란다는 전제 하에서 말이다. 그런 건 가능하지 않을 테니 그래서 천국이 필요하고… 사실 진화의 문제는 하나의 전제만 달라져도 너무나 많은 변수가 발생하기 때문에 뭐라 단정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없다. 이럴 때마다 소환되는 커트 보네것의 소설을 떠올리며 글을 대충 마쳐야겠다. 필요 이상의 커다란 뇌를 포기한 <갈라파고스>의 신인류들을 위하여!
사족: 제법 오랜 기간 동안 읽고 싶은 책들을 어쩌면 원 없이(라기에는 대부분 헌 책만 사 읽어서 제한이 없지 않았지만) 읽어왔다. 삶의 전환기를 맞이한 듯한 요즘 예전처럼 읽는 일에 집중하거나 시간을 넉넉하게 할애할 수 없었고, 이 책도 읽은 지 한참 되었지만 굳이 리뷰를 쓸 이유는 없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이런 종류의 책들을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는 대상도 기회도 거의 없기 때문에 어쩌면 나 자신과 대화하듯 기록을 남겼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일들은 생산성이 전혀 없기 때문에 쓰는 나 자신부터가 자조하게 된다. 이제 그만 쓰자고 생각했지만 벌써 십 년이 훌쩍 넘는 시간 동안 읽고 기록을 남기는 일이 습관처럼 되어 왔기 때문인지 아무 기록을 남기지 않으려니 마음이 영 찝찝해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또 이렇게 주절거리며 쓰고 있다. 뭐라도 쓰니 어휴, 이제 좀 마음이 놓인다. 습관이란 정말 무섭다. 이제야 머리에 쌓였던 가스를 배출한 듯한 기분이다. 꿀꺽 씨, 이제 책꽂이로 갑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