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적 사고가 합리적인 것은 아니다

<제정신이라는 착각>-1

by 유월의쥰

… 예일대학교 댄 카한 교수는 확신은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보여주기보다, 자신이 누구인지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연구를 토대로 기후변화나 진화 같은 주제에 대한 서로 다른 확신은 관련 정보가 얼마나 있는지, 혹은 그 지식이 얼마나 잘 이해할 수 있게 전달되는지와 별 관계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오히려 그런 확신이 자신이 속한 집단이나 정치 진영이 표방하는 가치와 맞아떨어지느냐가 중요하다. 가령 단결이 중요하냐, 자기 결정이 중요하냐, 자신의 이익을 포기하느냐, 이익을 관철시키느냐,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사느냐, 자연을 지배하느냐. 카한에 따르면 확신은 그 자체로 독립된 산물이 아니라 늘 배경에 좌우된다. 그는 서로 다른 집단이 기후변화에 대해 알고 있는 것은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 서로 다른 견해 사이의 논쟁은 오히려 ‘문화적 지위 경쟁’이라는 것이다.

- 필리프 슈테르처, <제정신이라는 착각>, 유영미 역, 김영사, 159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행운이라고 말해도 좋을 정도다. 제목이 꽤나 자극적이고 대중적이라서 이 정도의 깊이가 담보되어 있는 책이라고는 오히려 예상하지 못했다. 이 책의 문제 제기들은 아마도 최근의 한국 사회를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는 것들인데, 합리성과 비합리성, 조현병은 왜 생기는가, 비합리성과 생존의 상관관계와 비합리성의 진화, 음모론에 대한 믿음과 망상의 공통점, 확증편향에 대한 새로운 시각… 몇몇 개의 핵심적인 소제목들을 열거만 해놓아도 대단한 라인업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다. 비단 한국 사회뿐만 아니라 조현병, 망상, 음모론, 비합리성, 확증편향과 극단적 대립 등은 전 세계적 현상이다. 독일인인 저자는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열거한 문제들이 얼마나 깊고 극단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지를 체험한 것이 책을 쓰게 된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말한다.

개인적으로는 길지 않지만 상당히 밀도 높은 내용으로 가득 찬 이 책을 어떻게 압축해서 요약할 것인가를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지치는 기분이 들어서 리뷰를 쓰지 않고 있었다. 이 독일인 학자가 핵심에 도달하기 위해 엄격하게 논리를 쌓아가는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요약을 하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다. 그건 요약으로 해결될 일이 아니다. 하지만 핵심을 짚는 좋은 내용들이 많아서 그런 문장들 위주로 소개하는 것도 의미는 있을 것 같다.

저자는 우선 우리 자신에게 ‘너는 정말 합리적인 인간인지 아닌지’에 대해 묻는다. 사람들은 대부분 스스로 이성적이라고 생각하거나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 혹은 사소한 원리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막상 그것을 제대로 설명해 보라고 하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이 별로 없다. (특히 문과…) 그들의 주장이 대의적으로 옳은 것이든 옳지 않은 것이든, 그 주장은 인지적으로, 감정적으로 편향되어 있는 경우가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빈번한 것이다. 이런 편향된 개념적 보수주의는 음모론에 취약하게 만들기도 하고, ‘신념에 위배되는 사실이 제시될 때 신념이 도리어 강화되는 역화현상’을 강화시키기도 한다. (과학적 데이터를 보여줘도 그 자체가 음모론의 일부라고 보는 식으로.)

… 따라서 학문적으로 입증된, 이런저런 인지 편향은 우리가 신념을 만들고 유지하는 면에서 종종 비합리적으로 행동하게끔 한다. 우리가 그렇게 한다는 걸 의식하지도 못한 채로 말이다. 우리가 인지 편향을 하고 있음을 의식하지 못하는 현상도 그 자체로 인지 편향으로서 맹점 편향이라 불린다. (…) 연구에 따르면 연구 참가자 중 85퍼센트가 자신들이 ‘평균적인 미국인’보다 인지 편향의 영향을 덜 받는다고 대답했다. 이런 연구 결과는 정말 아이러니하다. 응답자가 편향에 대한 맹점이 있어 자신을 더 낫게 평가하는 인지 편향에 희생되고 있음을 보여주면서, 응답자의 자기 평가를 직접적으로 반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자신의 인지 왜곡을 보지 못하는 맹점 편향은 우리가 합리적이라는 환상을 갖게끔 한다. 대부분은 스스로와 스스로의 신념을 인식적으로 굉장히 합리적인 것으로 여기며, 스스로를 대부분의 사람보다 훨씬 합리적인 사람으로 여긴다. (중략) 내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망상적 사고와 ‘정상적’ 사고가 우리 생각만큼 확연히 구별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렇다. 망상은 인식적으로 비합리적이다. 그러나 우리의 ‘정상적’ 사고 역시 우리 생각만큼 그리 합리적이지 않다. 우리는 모두 ‘제정신이 아닌’것은 아니다. 그러나 아마도 우리 생각보다는 ‘더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위의 책, 95~96

​저자가 쓰는 용어들, 그 구분에 대해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번역자가 꽤나 고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데, 이 책에 쓰인 범주들의 기준선들이 매우 애매하고 그 애매성이 또한 핵심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각종 이슈를 둘러싼 사회적인 갈등, 대립과 음모론, 우리 자신의 합리성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화두로 던진 후에 저자는 (놀랍게도) 조현병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간다. 요즘 하도 스스로 조현병이라고 주장하며 악행을 저지르는 인간들이 많아서 매우 흥미롭게 읽기 시작했는데, 내용은 예상을 뛰어넘는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이 부분은 다음 포스팅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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