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신이라는 착각>
… 건강한 사람들은 친숙한 대상인 경우 더 강한 착시현상을 보였다. 즉 친숙한 대상에 대해 더 정확한 예측을 지니고 있어, 대부분 예측에 부합하는 지각을 만들어냈다. 반면 조현병이 있는 사람은 친숙한 대상이건 낯선 대상이건 차이가 별로 없었다. 그들은 대상의 친숙한 정도와 무관하게 착시 효과에 잘 걸려들지 않았다. 그들의 지각은 자신의 예측보다는 주어진 감각 데이터에 더 크게 좌우됐던 것이다.
처음 이런 연구 결과를 접했을 때 나는 멈칫했다. 이런 결과들은 조현병이 있는 사람이 건강한 사람보다 더 현실과 일치하는 지각을 한다는 것을 보여주지 않는가! 전형적으로 망상과 환각을 동반하는 장애가 있는 사람들은 그 반대여야 하지 않을까? 그들이 현실에 위배되는 지각을 해야 하는 거 아닐까? 독자들도 그렇게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 필리프 슈테르처, <제정신이라는 착각>, 김영사, 224
… 설명할 수 없고 이상하게 생각되는 경험이 당사자에게 위협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편집증적 망상을 불러일으키는 주요 동인이다. 논리적 사고를 하지 못하거나 다른 인지적 결핍이 있어 이런 망상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가 늘 걸려들곤 하는 ‘정상적’인지 편향이 망상을 만들어낸다. ‘클러스터 착각’은 눈에 띄는 감각적 자극이 여러 개 이어질 때 우리가 패턴을 인식하게끔 하고 ‘과민한 행위 탐지 시스템’은 다른 사람의 자잘한 음모나 대규모 음모론을 의심하게 만든다.
(중략)
버밍햄에서 연구하는 이탈리아 철학자 리사 보르톨로티는 망상과 비합리적 확신에 대한 논문에서 명백히 부정적 결과를 초래함에도 망상을 고수하는 것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을 수 있음을 강조했다. 비정상적 현저성을 경험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겪어 주의력과 집중력이 떨어지면 제 할 일을 하면서 일상을 살아내기 어렵다. 이런 난감한 상황에 망상적 설명을 통해 ‘아하!’ 경험을 하면 스트레스가 줄어들고 인지적 기능 수준도 향상된다. (중략) 이 연구에 따르면 망상증을 보이는 사람들은 정신 질환에서 회복된 사람들보다 삶에 더 많은 의미를 부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략) 되찾은 의미감과 통제감을 다시 포기하고 싶지 않은 것은 십분 이해가 간다. 비정상적 현저성과 그로 인한 불안감이 자신의 확신을 더 꼭 붙잡게 하는 것이다. 이런 확신이 불안감에 대처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 위의 책, 251~3
이 책이 조현병에 접근해 들어가는 과정은 상당히 흥미로우면서도 도전적이고 앞서도 말했듯이 요약이 쉽지 않다. 그럼에도 대충 요약해 보자면 (대충 하는 것은 정신건강에 매우 좋다… 이 책이 그 ‘대충’의 미덕을 입증하고 있는 것이 꽤 마음에 든다), 인간의 인지기능은 예측시스템에 의존하고 있다는 데서 시작해야 한다. 인간은 각종 감각정보를 모아서 세계에 대한 상을 그때마다 구축하지 않는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파악하다가는 지금과 같은 지능을 갖지 못했을 것이다. (그건 인간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인간에게서 특히 발달한 신피질뿐만 아니라 오래된 뇌의 기능 역시 예측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에 대한 흥미로운 책을 현재 읽고 있는데, <천 개의 뇌>에서는 인간의 예측 시스템을 뇌과학의 측면에서 다루고 있어서 우연히 두 책을 순서대로 읽게 된 것은 개인적으로 즐거운 우연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인간의 뇌는 세상에 대한 완성된 상을 이미 갖고 있고, 그 종합적인 상으로부터 틀어진 부분에 대해 민감하게 인식하고, 빠르게 교정하거나 빈틈을 채워나간다. 그것이 늘 정확한 것은 아니다. 때문에 인간의 뇌는 완전하지 않고 크고 작은 오류들을 끝없이 반복하지만, 그 대충 어림잡아 인식하는 ‘휴리스틱’한 면은 이미 인지과학에 있어 인간의 인지 기능의 가장 중요한 측면으로 꼽히고 있다. (멀리서 날아오는 공의 궤적을 정확하게 알지도 못하면서 인간은 어떻게 그것을 정확하게 잡아내는가?) 즉 인간의 인지 기능은 상향식이 아닌 하향식으로 작동하고 있으며, 새로운 정보를 접할 때 기존의 인지적 확신의 규범에 맞추어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하다. 망상이 시작되는 사람들의 경우 ‘비정상적 현저성’이라는 예측 오류 신호에 노출되는데, 즉 예측 오류 신호가 내부 세계 모델-즉 내가 알고 있는 세상이 더 이상 맞지 않음을 신호한다는 것이다. 갑자기 모든 감각 신호가 내가 알던 세계가 변했다는 것을 알려온다면 그것이 얼마나 공포스러울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 그것이 바로 망상적 정신병증에 노출된 사람의 첫 단계인 것이다.
이후로 이 망상적 사고방식은 자신이 알고 있는 세계 모델을 변환시킴으로써 이를 극복하고자 한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말이 되게끔 설명해 줄 수 있는’ 세계 모델을 찾는 것이다. 앞에 인용해 놓은 부분들은 바로 이 절차를 얘기하고 있다. 보통의 사람이라면 틀린 경험 신호가 입력되어도 많은 경우 무심하게 (휴리스틱 하게) 이를 자신의 예측 시스템이 맞추어 해석해 버린다.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보다 훨씬 입력된 경험적 정보에 예민한 사람들은 그러지 못한다. 이에 맞춰 보편적인 세상의 모델을 설명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자 한다. 많은 망상 환자들이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을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작은 오류, 어긋남에 대해 그들은 그냥 넘어가지 못하고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각종 음모론을 지어낸다. 조현병은 여기서 신경생물학적인 설명을 덧붙여야 하지만 같은 맥락에서 발전된 형태를 보인다.
대충 쓴다고 썼는데 겁나 길어졌다. (더워서 진짜 대충 썼는데도 이렇다..) 조현병에 대한 가설은 저자도 매우 조심스러워하고 있기 때문에 저변에 깔린 망상의 기본 메커니즘 (저자가 제시하는 가설) 정도만 소개해도 될 것 같다. 하지만 망상에서 음모론으로 이어지는 부분은 매우 심각하게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음모론이 심각한 인지 편향에서 비롯되는 것이기 때문이고, 그것이 사회적인 문제로 드러나고 있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적인 편향의 문제는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다음번에 마지막으로 그 부분에 대해서 한 번 더 소개할 예정이다.
여름철 구름의 형상을 바라보는 것은 황홀하다. 만질 수도 없는 수증기 따위가 저토록 실체가 있는 것처럼 보이다니! 예민한 감각을 지닌 예술가들이 구름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대상을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고심했을지! 많은 학자들이 조현병의 진화론에 있어서의 적응적 의미와 예술적 감각의 상관관계에 대해 얘기한다. 그들의 머릿속에 구현된 세계의 모든 측면은 일반인(.. 생각해 볼수록 이렇게 표현하는 것이 가능한가 싶지만)의 그것과 다를 것이다(사실 이 말도 정확하지는 않다.. 누구도 서로의 머릿속에 들어있는 세계의 상을 알 수 없으니! 모나드론의 라이프니츠가 또 옳았다).
하나 더. 대체 브런치의 편집기는 왜 이런 식일까? 전체 선택 안 됨. 카테고리 수정 안 됨. 이 두 가지가 나를 미치게 만든다. 문장문장으로 세분화해서 복사 가능하게 만든 이유가 무엇일까요? 카테고리 실수를 할 수도 있는데 왜 교정 기능을 넣지 않았을까요? 흐흐흐… 넌 브런치와 안 맞는다고 자꾸 내 등을 떠미는 기분이 든다. 좋은 말로 할 때 그만 쓰고 나가라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