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명의 인간을 길러내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요? 가장 필수적인 조건은 역시 생명을 연장할 수 있을만한 환경이겠지요. 제때 따뜻한 밥을 먹고, 위생적인 옷을 입고, 추위를 피할 수 있는 따뜻한 집에서 휴식을 취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의식주가 해결되어 생명을 연장하는 것 만으로 충분히 인간으로서의 삶을 산다 할 수 있을까요? 아니오, 우리 인간은 문명이 이루어낸 문화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문명 사회 내에서 살아가는 만큼 우리는 이 문화를 만끽할 권리가 있습니다. 사실 저는 권리를 넘어 인간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필수 조건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고 싶습니다.
저번 턴에서 리즈씨께서 말씀하셨듯이, 인간다운 삶을 위한 환경은 개인의 의지나 노력만으로 조성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러한 환경의 조성을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전적으로 맡겨버리는 나라는 나라로서의 의미를 잃었다고 볼 수 있죠. 기본적인 생명 연장, 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는 환경, 자아를 실현할 수 있는 기반을 제공하는 건 사회를 유지하기 위해 나라가 반드시 수행해야 할 의무입니다. 물론 이에 동의하시지 않고 여전히 환경과 기회의 불평등을 개인의 역량 차이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겠지만, 한 사람 모두가 인간적인 삶을 살 수 있는 환경과 기회를 사회 공동체 모두의 노력으로 함께 만들어 가야한다는 방향에 동의하시는 분들 또한 많을 거라 믿고 싶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문화의 중요성, 그리고 문화를 체득할 수 있는 환경의 중요성을 더 활발하게 논의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이쯤에서 제 이야기를 한번 해볼까요? 저는 클래식 음악과 그림 감상이 취미입니다. 베토벤과 쉴레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유럽으로 날아갈 정도로요. 혼자서 조용히 즐기는 취미이지만, 결코 혼자만의 힘으로 이 취미를 만들 수는 없었을 겁니다. 콘서트홀에서 음의 파도가 온 몸을 휘감는 강렬한 경험, 물감의 색감과 종이의 질감이 만들어내는 아우라의 경험이 없었다면 과연 제가 이 정도로 클래식과 그림을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그리고 콘서트 홀과 미술관 없이 제가 이런 경험을 할 수 있었을까요? 저의 취미는 문화 환경이 만들어 낸 산물 그 자체입니다.
그렇기에 좋은 질의 콘텐츠를 보유하고 있는 문화공간은 복지의 한 개념으로 이해되어야 합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문화 환경을 만드는 데 있어서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고, 이는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절대 만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클래식 하나 듣겠다고 콘서트 홀을 직접 만들 수는 없잖아요. U2와 퀸을 한국에 부르고 싶어도 고척 돔 없이는 불가능하고요. 이러한 문화 공간의 조성은 개인의 노력만으로 절대 해결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오히려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하는 대목이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문화 공간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그리고 문화 공간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도록 투자를 하는 것도 정부의 몫입니다. 생활 환경의 격차를 줄이는 일에는 의식주 뿐만이 아니라 문화 또한 포함되기 때문이죠. 우리가 몇몇 문화 활동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장벽을 느끼는 이유는 그 문화가 돈이 많거나 집안이 좋은 상류 계급이 전유하는 문화라는 인식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가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한다면, 문화 또한 누구든 즐길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해야 할 것입니다. 문화 공간에서부터 교육, 전문가 양성까지. 이 많은 일을 그저 개인의 노력 또는 환경에 전가한다면, 문화 계급의 격차는 영원히 해결될 수 없는 미제로 남을 것입니다.
기본적인 생명유지에서 문화생활까지. 이 환경은 개인의 노력이 아닌, 모두가 평등한 사회를 지향하는 공동체의 힘으로 만들어져 나가야 할 것입니다. 한 명의 문화인은 결국 문명과 문화가 있는 사회가 만들어내는 결정체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