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금 전 있었던 일이다. 추석을 맞아 할아버지 댁에 가서 음식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원래대로라면 아빠 차를 타고 같이 집에 가야 하는데, 할아버지 댁에 있는 동안 아빠와 약간의 언쟁으로 기분이 나빠져 집에 알아서 간다고 선전포고를 하고는 걸어오고 있는 중이었다.
할아버지 댁에서 집까지는 걸어서 넉넉잡고 30분 정도 걸리니 적당히 운동삼아 기분전환도 할 겸 걸어가는 중에 시장을 지나가게 되었다.
이 시장은 평소에도 노점상 하시는 할머니분들이 보도블록의 절반을 차지하고 있을 정도로 붐비는 시장인데, 시간이 밤 10시가 다되어가다 보니 노점상 하시는 분들이 거의다 집에 가시고 안 계셨다.
간간히 아직도 장사를 하고 계시는 분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이 집에 갈 준비를 하며 남은 짐을 싸고 있었는데 그중에 한 할머니께서 장사하시는 물건은 그대로 다 놓여있고 그 옆에서 박스를 깔고 주무시고 계셨다.
신발도 가지런히 벗어 놓으시고 박스를 포개어 나름대로 배게도 만들어서 주무시고 계셨는데, 깨울까 하다가 잠깐 피곤해서 주무시는 건지 뭐가 뭔지 판단이 안되어서 잠시 망설이다가 누워계시는 뒷모습이 자꾸 눈에 밟혔다. 이제 가을이라 꽤 쌀쌀한 바람도 불고 있었고 벌써 밤 10시인데 아직도 집에 안 가시고 장사 중이셨던 것도 맘에 걸려서 결국 경찰에 신고를 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경찰차를 지켜볼까도 생각했지만 아빠랑 싸워서 기분이 안 좋기도 하고 뭔지 모를 복합적인 감정이 들어서 그냥 내 할 일 했으니 난 가야겠다는 생각으로 다시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약 3분 뒤에 출동하고 있는 중이라는 문자가 왔고 그로부터 2분 뒤쯤 경찰관님 휴대폰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도착해보니 할머니 두 분이서 그냥 장사 중이시라고 하셔서 순간 당황해서 아.. 아까는 누워계셔 가지고 쓰러지신 줄 알고.. 하고 머쓱하게 전화를 끊었다.
본의 아니게 허위신고를 한 거처럼 된 것 같아서 상당히 머쓱한 기분이 들었다. 머쓱 말고 내 기분을 표현할 좀 더 적당한 단어를 찾고 싶은데 머쓱이 제일 맞는 것 같다.
어쨌든 아주 곤히 자고 계셨기 때문에 내가 발걸음을 옮긴 지 불과 5분 만에 다시 일어나셨다는 게 괜히 찜찜해서 결국 나는 거기로 다시 발을 돌렸다.
그럴 일은 희박하겠지만 혹시나 경찰관분들이 내가 얘기한 할머니 말고 다른 할머니를 본 걸 수도 있고 오는 길에 정확히 그분들만 아직 장사를 하고 있던 중이었는지 다른 분들이 더 있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아서 이대로 집에 가면 계속 마음에 걸릴 것 같았다.
다시 가보니 내가 신고했던 그 할머니가 일어나셔서 물건을 정리하며 집에 갈 준비를 하고 계셨고 그제야 나는 후련히 발걸음을 옮겨 집에 돌아왔다.
아직도 남아있는 이 머쓱함이 낯설어서 브런치에 글이라도 남겨본다. 허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