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죽을걸 그랬나?] #24. 은따

by 정별하

전반적으로 평화롭고 별일 없던 나의 학창 시절에도 암흑기가 있었으니 그건 바로 고등학교 3학년 때이다. 당시 우리 학교는 이과 반이 총 4개였고 2학년 때 3반, 4반끼리 섞어서 3학년때 1반, 2반으로 올라가는 구조로 학사를 운영했다. 즉, 3학년이 되어도 반의 절반 가량은 이미 2학년 때 같은 반을 했었던 친구라는 것.



나는 반장을 1학년 2학기에 한 뒤로 나름의 보람과 뿌듯함이 있어서 2학년 1학기 때에도 반장을 했었다.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2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들과는 합이 안 맞는 부분들이 조금 있었고 2학기때는 반장선거에 나가지 않은 채로 조용히 지내야겠다고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막상 2학기가 되어서 새로 바뀐 반장이 학급의 일을 처리하기 시작하자, 나라면 저렇게 안 할 텐데.. 하는 부분들이 몇 개 있으면서 차라리 내가 반장을 다시 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린 나이에 편협한 사고로 나와 다른 방식이 있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안일하게 저것보다는 내가 낫겠지라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답답하면 니들이 뛰던가를 알겠다, 그럼 내가 뛰겠다 이런 느낌이랄까.



어쨌든 그래서 3학년이 올라가면서 다시 반장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반장선거에 나가 당선이 되었고 그런 안일한 생각 때문인지 반 친구들을 위해 봉사하는 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더 잘하는 내가 대신해줄게 라는 마인드가 있었던 것 같다. 아무래도 내가 자꾸 과거의 일을 회상하면서 쓰다 보니 그때 당시에 대한 반성이나 고찰 등을 하게 되는데 돌이켜보면 고3 때는 나도 서툴고 친구들도 서툴었던 때가 아니었나 라는 생각이 든다. 서로가 인생에서 가장 예민한 시기를 보내면서 서로의 이해관계나 입장이 다를 수 있다는 점을 충분히 염두에 두지 못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공부에만 미쳐 있었기 때문에 주위를 돌아볼 여유가 부족했고, 공부가 가난한 인생을 바꿔줄 유일한 신분상승의 수단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는 친구들을 이해하지 못했었다.



그리고 그 당시에 내 성격이 좀 까칠하고 냉소적이었기 때문에 나를 무서워하는 친구들도 조금 있었다. 어떤 정도였냐면 당시 반에서 2등을 하던 친구는 나와는 다르게 성격이 착해서 가급적 모든 친구들에게 친절하게 대하고 상냥한 친구였던 반면에 나는 호불호가 확실하고 아닌 건 아니라고 면전에 대고 바로 얘기하고 또래 여자애들에 비해 이성적인 판단에 근거한 말을 자주 했기 때문에 팩폭 장인이라는 별명도 있었다.-후에 이 부분은 친구들 자소서 첨삭해 줄 때는 장점으로 작용한다. 대부분의 여자애들이 서로 기분 상할까 봐 제대로 된 지적을 해주지 못하고 이 정도면 괜찮네라고 하면서 제대로 된 자소서 첨삭을 못해주는 반면에 나는 객관적으로 뭐는 문제고 뭐는 잘했고 그래서 하고 싶은 말이 뭔지 모르겠다 등과 같은 뼈 있는 조언들을 해주었으니 말이다-


그래서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볼 때에도 나한테 물어보면 내가 너무 어렵게 설명을 해주고(이건 일부로 그런 건 아니다, 내 딴에는 그 정도면 이해했겠지 싶은 수준으로 설명을 했는데, 나는 나 혼자 공부는 잘했지만 남한테 설명하는 데는 재능이 없는 편이었다) 항상 내 공부를 하느라 바빠 보였기 때문에 친구들이 쉽게 뭔가를 물어볼 엄두를 내지 못했다. 그래서 나 대신에 반에서 2등 하는 착한 친구한테 대부분의 질문이 쏠렸고 그 친구도 모르는 문제일 때만 비로소 나에게 질문이 들어왔다. 근데 그것도 나에게 직접 다시 물어보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나는 무서우니까 2등 친구보고 대신 나한테 물어봐달라고 해서 내가 2등 친구한테 설명을 해주면 2등 친구가 다시 그 친구에게 설명을 해주는 식으로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는 친구들도 꽤나 있었다. 나랑 비교적 친한 애들은 내가 학원을 안 다니고 혼자서 공부하니까 나한테 공부계획 상담이라든가 과목별 공부 비법 같은 것들을 종종 물어보곤 했는데 그렇지 못한 친구들은 나에게 비법을 전수받은 친구들에게 가서 다시 비법을 전수받는 그런 방식이었다.



그런 내가 반장이 되고 고3이고 하니 학업 분위기를 조성해야겠다는 생각에 야자시간이 되면 아이들을 조용히 시키는데 주력했다. 처음에는 좋게 좋게 말하던 것이 3월 한 달이 지나갈 즈음에는 신경질적으로 변해 있었고 '왜 쟤들은 야자시간인데도 조용히 안 하지?'라는 생각에 불만이 가득 찬 목소리로 조용히 좀 하자고 나중에는 짜증을 내게 되었다. 그리고 쉬는 시간에 쪽잠을 자는 친구들도 있었기 때문에 학급 전체에 전달해야 하는 공지사항이 있으면 일단 친구들이 자리에 많이 앉아 있는 타이밍을 노렸고 그때 자고 있는 친구들도 있었으므로 칠판 한쪽에 여러 전달사항들을 정리해서 적어두곤 했다.



그러던 어느 날, 4월 사설 모의고사를 치고 난 후 사건이 터졌다. 모의고사 치는 날은 모의고사가 끝나면 채점해서 가채점표를 반장에게 제출하고 각자 자습을 하다가 6시가 되면 저녁을 먹으러 가는데, 그날도 여느 때처럼 가채점표를 모아서 교무실에 제출한 뒤에 자리에 앉아 오답노트를 만들고 있었다. 그 당시의 고3 4월 사설 모의고사는 내가 고등학교 3년 동안 학교를 다니면서 쳤던 모의고사 중에 가장 못 친 시험이었다. 끽해야 2등급 까지 내려가던 국어가 3등급을 찍어버렸고 수학, 영어 역시 4등급이 나오면서 나를 배신해 버렸다. 믿었던 과탐마저 3등급이 나오면서 평소에 1 2 2나 1 2 3 정도 맞던 모의고사 성적표가 3 4 4 2 3 이 되어버렸다. 한 번도 받아본 적 없던 등급합 15 이상에 제대로 멘탈이 깨진 나는 오답노트를 차마 만들 생각을 하지 못하고 자리에 멍하니 앉아 이걸 어떡해야 하나를 고민하고 있었다.



그때 평소 소위 일진무리로 불리던 친구들 중에 비교적 그 무리에서 착한 친구 한 명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우리 학교에서 일진이라 해봐야 그냥 선생님 말 좀 안 듣고, 치마 좀 짧게 줄이고 다니고 두발규정 좀 피해서 머리 기르는 정도였지 진짜 무슨 일진처럼 애들 삥을 뜯거나 구타를 하거나 이런 애들은 없었다.) 어쨌든 잠깐 할 말이 있으니 따라오라고 해서 나는 얘도 이번에 모의고사 성적이 안 나와서 상담을 하려는 건가 하고 아무런 의심 없이 따라갔다.



도착한 곳은 당시 교지편집부의 부실로 쓰이던 별개의 교실 하나였다. 들어가 보니 단체로 화장실 갔나-싶었던 자리에 없던 애들이 거기게 8명 정도 모여있었고 둘러앉아 있는 와중에 나는 자연스레 빈자리에 가서 이게 무슨 상황인지를 이해하려 애썼다. 나를 거기로 데려간 친구가 우리가 너한테 따로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불렀다고 운을 떼었고 옆에 있던 다른 친구가 그동안 니가 반장 하면서 우리가 쌓인 불만이 있는데 좀 들어보라고 불렀다고 했다.


나는 우선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거기 모여 있던 8명이 차례로 돌아가면서 각자 한두 개씩 나한테 불만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당시 나는 바로 옆 2반 반장이랑 비교가 많이 되고 있었는데 2반 반장은 나랑은 스타일이 전혀 달랐기 때문이기도 하고 2학년 때 3반 4반 애들이 올라와서 1반 2반이 된 거라서 서로 거의 반 구분 없이 서로서로 다 아는 사이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 불만들은 대체로 조용히 시킬 때 너무 강압적으로 얘기한다, 전달사항을 애들이 다 있을 때 얘기해주지 않는다, 옆반은 지각벌금 거둬서 간식도 사 먹고 하던데 우리도 그런 것 좀 하자는 등등의 것들이었다. 차분하게 맨정신으로 들으면 하나하나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고 납득이 가는 것들이었지만 갑자기 불려 간 밀폐된 공간 안에서 나에게 불만을 품은 8명이 차례대로 한 마디씩 던진다는 건 생각보다 더 엄청난 일이었다. 적어도 그 순간에 그 공간 안에서 내편은 아무도 없겠구나 싶었다. 나는 심리적으로 위축될 대로 위축되어서 여기 있는 모두가 나를 싫어한다는 느낌을 받았고 우선 알겠다고 답은 겨우 했는데 이걸 어디서부터 얘기를 해야 하나 하고 있을 때 저녁종이 쳤고 나를 제외한 나머지는 모두 저녁을 먹으러 급식실로 가버렸다. 나는 도망치듯 그곳을 빠져나와 다시 교실로 돌아가 원래 밥 같이 먹던 친구들한테 오늘은 안 먹는다고 하고 내 책상에 엎드려서 곰곰이 생각을 하기 시작했다.



하나하나 방금 들었던 말들을 곱씹다 보니 우리 반 애들 전체가 나를 싫어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고, 난 단지 반장의 의무를 이행했을 뿐인데 이렇게까지 욕을 먹을 일인가 싶은 생각도 들고 진짜로 내가 그 정도로 최악이었나 싶으면서 여러 감정들이 교차했고 저녁도 굶은 채 저녁시간 한 시간 내내 울었던 것 같다. 야자시간이 시작하고서도 나는 도저히 이 사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르겠어서 가만히 자리에 앉아서 울었다가 말았다가를 반복하다가 결국 야자가 끝나기 10분 전, 8시 50분에 일어나서 교탁으로 나갔다.



교탁에 서서 친구들을 보고 그동안 너네가 나한테 불만이 많았던 것 같은데 몰라줘서 미안하고 앞으로는 안 그러도록 노력하겠다는 말을 하는데 또 눈물이 나서 교탁에서 펑펑 울어버렸다. 내 말을 들은 반 친구들 중 3분의 1 정도는 난 너 안 싫어하는데 무슨 소리야?라는 표정이었고, 3분의 1 정도는 쟤가 갑자기 왜 이러지 라는 반응이었고, 나머지 그 나를 불렀던 3분의 1은 내가 우는 걸 보고 욕을 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나랑 친했던 친구 한 명이 그 꼴을 못 보고 있겠는지 9시 종이 치자마자 나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고, 나는 계속 울다가 다시 두 번째 야자를 시작하는 9시 10분 종이 울려서 그 친구를 일단 보내고 혼자 남아 계속 생각을 하다가 결국 10시에 야자가 끝나고서야 애들이 다 갔는지를 눈치로 살핀 후 가방을 챙겨 기숙사에 들어갔다. 후에 듣기로는 내가 친구 손에 끌려나간 이후에 쟤는 왜 갑자기 말하다가 우냐고 우리만 존나 나쁜년 만든다고 또 욕을 들었다고 했다.



기숙사에 들어간 나는 어차피 제정신이 아니어서 씻을 생각도 없었고 방에 멍하니 앉아 울기 시작했다. 다른 친구들이 있어서 안 울려고 해도 계속 눈물이 나왔다. 이런 게 말로만 듣던 은따인가 싶으면서 이제 겨우 4월인데 앞으로 남은 학교생활은 어떻게 해야 하지? 자퇴를 하고 검정고시를 친다음에 수능을 봐야 하나? 이런저런 생각에 쉴 새 없이 눈물이 나왔다. 기숙사에서 울고 있으니 야자를 마치고 돌아온 다른 반 친구들이 왜 그러냐고 나를 달래주었지만 나는 그냥 앞으로 학교 못 다닐 것 같다는 말만 하면서 계속 울었다. 결국 그날 밤에도 추가로 공부를 하지 않고 침대에 누워서 울다 지쳐 잠이 들었고 오지 않았으면 바랬던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교실에 들어가기가 너무 겁이 났지만 안 들어갈 수는 없었기에 일단 뒷문을 열었다. 나는 이제는 10년도 넘은 그때가 아직도 기억난다. 문이 열리는 드르륵 소리와 함께 안에서 들리던 떠드는 소리가 삽시간에 조용해지면서 내가 문을 연 순간 정적만이 감돌던 그 교실이.



3초의 정적 뒤에 그 무리들은 일부러 나 들으라는 듯이 더 크게 내 욕을 하기 시작했고 나는 일단 자리에 앉아서 mp3를 귀에 꽂은 채 볼륨을 높이고 책을 펼치고 앉아 있었다. 공부는 될 리가 없었으니 그냥 하는 시늉만 하고 앉아있었던 거다. 그날 아침 종례가 끝나고 어제 야자시간에 없었던 친구도 2명 정도 있고 해서 나는 어제 했던 말을 이번에는 울지 않고 차분하게 잘 전달했으며 앞으로 지각비를 걷어 간식을 사 먹자는 제안도 받아들여 그대로 추진하기로 하고 지각비를 어느 기준으로 걷으면 좋을지 등등을 논의했고 그때부터 우리 반은 반장이었던 나의 은따가 시작되었다.



내가 문을 열 때마다 교실 이일순간 조용해졌다가 다시 내 욕이 들려오는 건 기본이었고 복도를 지나가다가도 우연히 기둥 뒤를 돌면 내 욕을 하고 있던 무리들과 눈이 마주친다거나 하는 식이었다. 나는 겉으로는 평화를 유지하는 것 같았지만 속에서부터 자꾸 억울함이 밀려 올라오고 있었고 그래도 이런 걸 알아주는 다른 친구들이 있어서 버틸 수 있었다. 소문은 점점 다른 반에도 퍼지기 시작했고 문과 친구들마저도 너네 반 반장 왕따야? 이런 얘기를 하기 시작했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강의를 하다가 설명을 잘못하는 부분이 있어서 그건 이런 이런 거 아닌가요?라고 할 때도 걔네는 내가 나댄다고 나를 욕했고 그냥 난 뭘 하든 걔네의 욕상대가 되었다.



나는 더 이상 학교를 그만둘 생각은 안 했지만 걔네한테 억하심정이 날이 갈수록 쌓여가기 시작했고 내가 뭘 그렇게까지 잘못해서 욕을 들어야 하는지 점점 억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불만이 있으면 개인적으로 얘기하면 되는데 그렇게 무리를 지어서 나만 혼자 꼼짝없이 당하게 만든 게 괘씸했다. 그래서 공부로 특히, 내신 시험에서 성적으로 걔네들 중에 누구 한 명한테라도 지고 싶지 않았고 악착같이 공부를 했다. 그러는 동안 1학기가 끝났고 1학기 학기말 종례를 하면서 내가 한 과목을 제외하고 전부 1등급을 받아서 상장을 여러 장 받게 되었는데, 그때도 무리 중 한 명이 "그래 니 혼자 다 해쳐먹어라"라는 소리를 담임선생님도 있는데서 다 들리게 얘기할 정도였다. 순간적으로 나는 심장이 매우 빠르게 뛰면서 담임선생님의 눈치를 봤지만 소용없었다. 스승의 날에 우리가 준 편지를 학교 대청소날에 쓰레기 소각장에 버릴 정도로 우리한테 관심 없었던 선생님은 고작 뭐라고? 한마디 하고 없던 일처럼 넘기는 게 다였다.



어쨌든 내가 고3 1학기 내신을 중간고사에서부터 압도적으로 1등을 해버리면서 원래 내신으로 경쟁구도에 있던 앞에 나왔던 라이벌 친구와 다른 친구 중에 확정적으로 내가 4월 말즈음부터 서울대 지역균형 전형을 쓰게 되었다.



이때도 나는 "지는 서울대 붙어도 가지도 않을 거면서 라이벌친구한테 양보해 주지 욕심도 많다"는 이유로 욕을 들었고 덕분에 그 친구랑 잠시 사이가 어색해지기도 했었다. 참고로 나는 이걸 진짜로 양보해 줄 생각으로 작년에 서울대 지균으로 서울대를 간 선배언니한테 연락을 해서 이거 양보할 수 있는 거냐고 직접 문의까지 했었다. 하지만 어차피 전교 1등이 아니면 지원해도 서울대에서 걸러낼 거라고 큰 의미가 없다고 해서 내가 쓰기로 한 거였는데 걔네한테 이런 거까지 일일이 설명하고 싶지는 않았다. 게다가 본인들은 당사자도 아닌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냥 언젠가부터는 나의 모든 것을 꼬투리 잡아 까내리기 바빴던 것 같다. 어쨌든 나는 갑자기 서울대를 준비하게 되면서 수능에서 팔자에도 없던 과학 2과목 하나를 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고 단기간에 할 수 있는 것들 중에 찾다가 생물 2를 하기로 결심했었다. 물리 2나 화학 2는 고3 4월부터 부랴부랴 시작해서 과고 애들을 이길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생물 2는 생명공학 내용이 많아서 배우다 보니 생물 1과는 달리 재미도 있고 암기할 분량도 적고 뭔가 최첨단의 과학기술을 배우는 느낌이라 재밌었다. 그러면서 전에 들었던 진로고민이 다시 들면서 기계공학 말고 생명공학을 해야 하나 라는 생각도 잠시 했었다. 그리고 학교에서 정규 교과로는 2과목을 가르쳐주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학교에서는 전교에서 3~4명 정도만 과학 2과목을 각자의 방식으로 대비하기 시작했다.



난 물론 이때도 학원을 갈 수가 없었기에 인강을 이용해서 진도를 나가고 문제를 풀었는데 아무래도 늦게 시작한 만큼 과탐임에도 불구하고 시간투자를 많이 했어야 했다. 그 결과 정작 수능에서는 생물 2는 1등급을 받았는데 원래 준비하던 물리 1이 한 문제 차이로 3등급이 나와버렸고 서울대 지균은 과탐 두 개를 평균을 내는 게 아니라 둘 다 2등급 이내여야 과탐이 2등급 이내인 걸로 쳐줬기 때문에 최저를 못 맞춰서 면접조차 가지 못했다. 이 일을 가지고도 최저도 못 맞출 거면서 뭐 하러 자기가 기회를 가져갔냐는 비난여론이 있었지만 어차피 그해 수능은 우리 학교 애들 다 같이 상위권이 망했기 대문에 나 뿐만 아니라 이과에서는 어느 누구도 서울대 최저를 맞출 만큼의 성적이 나온 애가 없었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나는 수시로 썼던 대학들 중 가장 낮았던 대학에 합격하게 되었고 2학기가 되면서 얘네들끼리도 내부에 분열이 있었던 건지 뭔지 무리가 점점 쪼개지기 시작하면서 나한테 잘 보이려는 움직임도 몇몇에선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수시시즌이 다가오면서 자기소개서 첨삭이라든가 이런 부분에서 나의 도움이 필요한 애들이 있었고 이 즈음해서 시간이 지나면서 2반 반장이 원래의 그 스타일대로 하다가 도리어 욕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내가 다시 올라가면서 이런 아이러니한 현상이 발생하게 된 것이다. 뭐 그래봐야 내가 이미 받은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그리고 또 하나 웃긴 건 수능원서 접수를 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제 좀 있으면 모든 고3생활이 끝나갈 무렵 담임이라는 사람이 나를 불러서 왜 그런 일이 있었는지 자기한테 얘기를 안 했냐고 내가 다른 반 선생님을 통해서 그 얘길 들어야겠냐면서 끝까지 우리 반에 관심 없던 자기 탓은 안 하고 그걸 미리 말하지 않은 내 잘못이라고 나를 뭐라고 하는 참 교육인다운 면모를 보여줬다.



아니 그럼 자기는 다른 반 선생님도 그걸 알게 될 동안 도대체 뭘 했길래 알지도 못하고 있었냐? 수시 쓸 때도 다른 대부분의 애들이 담임선생님이 어떻게든 하나라도 못 도와줘서 안달이던데 나는 원서내고 각종 증빙서류 제출할 때도 니가 알아서 해야지 그런 걸 나한테 물어보느냐며 오히려 수업시간에 빠지고 자소서 쓰는 것도 다른 반애들은 잘만 빠지고 썼는데 나한테만 욕을 하고 우체국에 접수하는 것도 하나도 안 도와줘서 다른 반 선생님들이 의아해할 정도였는데 참 여러모로 고3은 나에게는 암흑기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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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12.14 기준 연재 잠정 중단. 중단이 끝나면 새 글로 돌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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