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가출을 한 적이 있었는데 바로 2학년 겨울방학 무렵이었다. 곧 고3이 된다는 생각에 싱숭생숭했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에 지난 2년간 한 번도 흔들리지 않았던 진로에 대한 의문이 조금씩 피어나기 시작했다.
돌이켜보면 1학년 초반에 목표를 정해야 한다고 해서 한번 포항공대 기계공학과로 정한 뒤에는 일부로라도 의심을 안 하려고 살아왔던 것 같다. 공부하기에도 바쁜데 그런 거 고민할 시간이 어딨나 하는 그런 생각? 그래서 중간중간 다른 과에 대한 흥미가 생기려는 걸 나 스스로 제어하지 않았나 싶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내가 이때까지의 인생 중에서 가장 후회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고등학교 때 좀 더 학과나 진로에 대해서 민해 보지 않은 것이다. 이공계는 특히나 앞으로의 과가 인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데 그것도 모르고 그냥 막연히 기계를 좋아하고 어릴 때 장난감을 몇 번 분해하고 그대로 조립해 본 경험 정도로 내 적성이 기계공학이라는 안일한 판단을 해버린 것이다.
어쨌든 그 당시에도 갑자기 정말로 기계공학이 맞는지 급격한 의문에 빠져서 공부가 안되길래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서 고민의 시간을 가져야겠다고 생각을 했고, 평소와 다를 바 없던 금요일 밤, 야자를 마치고 집으로 가지 않고 부산으로 가는 버스에 무작정 올라탔다. 그리고 웃기게도 가출이면 부모님한테 말을 안 하고 가야 하는데 이대로 말없이 집에 안 들어갔다가 혹시나 나를 진짜로 안 찾을까 봐 부모님께 "생각할 게 있어서 오늘 집에 안 들어간다, 생각이 끝나면 들어가겠다"라고 문자를 남긴 채 부산으로 갔다. 부모님은 알겠으니 몸조심하고 잘 다녀오라고 했고 후에 물어보니 그냥 친구집 정도나 가는 줄 알았다고 하셨다.(우리 부모님은 어릴 때부터 우리의 자유와 선택을 매우 존중해 주는 편이셔서 선택도 내가 하고 책임도 내가 지는 그런 인생으로 교육을 받아 왔다. 그래서 다른 친구들이 중고등학교 시절에 통금이 있을 때도 나는 왜 늦는지만 미리 얘기하면 밤 12시에 집에 들어가도 부모님이 뭐라 하지 않는 환경에서 자랐다.)
어쨌든 그 길로 시외버스터미널에 가서 마산에서 부산 사상으로 가는 시외버스를 무작정 탔고, 부산에 도착하면 해운대에 가서 바다를 봐야겠다는 그 생각 하나로 출발을 했다. 하지만 사상에 도착하자마자 지하철을 타러 갔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야자를 마치고 오느라 시간이 늦었던 탓에 해운대 방면으로 가는 지하철은 막차가 지나가고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반대편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고 무작정 종점까지 도착했다. (사실 종점이었는지 내리라고 해서 내렸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도착해서는 이제 뭐 하지 하면서 멍을 때리고 있었는데 역무원 아저씨가 거기서 자고 있던 노숙자 분을 쫓아내는 걸 보고 나도 얼른 밖으로 나왔다.
나와보니 그곳은 지하철 2호선 종점역이라 그런지 몰라도 주위에 딱히 뭐가 없는 곳이었다.(지금은 확인해 보니 해운대 반대편 종점이 양산역인데 분명 양산역은 아니었는데 양산역 생긴 지가 얼마 안 된 건가? 내가 갔을 때는 2012년 겨울이었는데) 근처에 있던 버스정류장도 가보니 거기가 종점인지 기점인지 마지막 정류장인 것 같았고 주위에 언뜻언뜻 아파트 몇 채가 보일뿐 도시의 외곽에나 있는 고속도로로 진입하는 길처럼 생겼다. 일단 버스 정류장에 앉아 삼십 분 정도 멍하니 앉아있다가 어디라도 가보자는 생각이 들어서 지하철이 이어지는 방향 쪽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폰이 스마트폰이 아니었기 때문에 걸어가면서도 다시 돌아오는 길을 잊어버리면 안 되니까 기억할 수 있는 길만 따라서 쭉쭉 걸어갔다. 가다가 몇몇 행인분들을 만나기도 했는데 아무래도 교복 입은 여자애가 새벽 3시쯤에 가방 하나 달랑 메고 걸어 다니는 게 이상해 보이긴 하셨을 거다. 노래를 듣느라 mp3를 꼽고 있어서(와 엠피쓰리라니 추억 돋는다) 말을 걸진 않으셨지만 아마 가출청소년으로 보였을 거다. 어쨌든 길 따라 쭉 가니 아파트 단지들이 몇몇 나오기는 했지만 딱히 편의점도 없고 더 이상 가면 지하철역이랑 너무 멀어지는 것 같아서 다시 원래의 그 버스정류장으로 돌아왔다. 그때가 시간이 새벽 4시쯤.
이번에는 반대편으로 걸어가 보자 생각을 하고 걸음을 옮겼는데 반대편은 진짜 부산의 외곽으로 벗어나는 길처럼 비포장도로에 주위에는 점점 산이 나오고 족히 10년 전에 망했을 것 같은 분식집 간판 같은 것들만 보이길래 그 길 쪽으로는 조금만 가보고 금세 돌아왔다. 지금으로부터는 거의 13년 전의 일인데 아직도 그 풍경들이 기억이 난다. 그렇게 터덜터덜 다시 버스 정류장으로 돌아오니 그때 시간이 새벽 5시쯤. 지하철 첫차가 다시 올 때까지 여기서 버티고 있어야지 라는 생각에 자리를 잡고 앉아 그제야 원래 하려면 진로에 대한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비지엠으로는 지오디의 길을 틀어놓고 걸으면서 했던 생각들을 정리해 봤는데, 지금 당장은 선택지가 기계공학과 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미 1학년때 기계공학과로 진로를 정한 뒤에 입학사정관 전형을 노리고 있던 나는 각종 스펙을 모두 기계과에 맞춰서 쌓아왔고 이제 와서 다른 과로 바꾼다고 하면 남은 기간 동안 이렇다 할 스펙을 쌓기가 애매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계과를 안 간다고 하면 딱히 하고 싶은 과도 그때 당시에는 떠오르지 않았다. 친구들 중에서는 부모님의 강요에 못 이겨 본인이 원하지 않는 과를 쓰는 친구들도 있었지만 우리 부모님은 처음부터 나에게 공부를 하라는 것조차 하든 말든 니 자유라고 공부를 안 해서 나중에 볼 손해까지 다 내가 책임지라는 교육방식이었기 때문에 과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간섭이 전혀 없었다. 엄마가 교대를 추천하긴 했지만 나는 애들을 별로 안 좋아하고 공무원이라는 직업에도 큰 메리트를 못 느껴서 쳐다도 안 봤다. 무엇보다 친구들이 모르는 문제를 물어보면 설명을 해주면서 스스로 설명에는 그다지 재능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제일 후회하는 게 이때라도 진로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을 해보고 다른 과를 선택했으면 지금의 내 인생이 좀 달라졌을까라는 생각. 결국 나는 예전부터 원하던 기계공학과가 딱히 싫어진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하고 싶은 새로운 과가 새로 생긴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그대로 기계공학과로 결심을 굳히게 된다.
버스 정류장에서 그래, 결국 돌고 돌아 기계공학과니까 앞으로 수능까지 남은 1년 정도의 기간 동안 공부나 열심히 하자는 결론을 내리고 곧 지하철이 오면 그래도 부산까지 온 김에 해운대는 보고 집에 가야지-라는 생각을 하고 있을 무렵 버스 첫차가 다닐 시간이 되었는지 한 아저씨가 버스 정류장으로 와서 옆에 앉았다. 첫차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20분 남짓 남아서 그 아저씨는 교복 입은 내가 그 시간에 거기서 왜 그러고 있는지 궁금했는지 버스 기다리냐고 먼저 나한테 말을 걸었다. 나는 약간의 경계심이 있어서 아니오 라고 짧게 대답을 했고 아저씨는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럼 여기 왜 있어요?라고 묻길래 아, 가출한 건 아니고 생각할 게 좀 있어서요. 하고 말았다. 아저씨는 그 말이 진짜라고 믿은 건지는 몰라도 곧 첫차를 타고 갔고 나도 지하철역으로 다시 발검음을 옮겼다. 거기서 해운대 지하철역 까지는 거의 2호선의 끝에서 끝으로 가야 하는 거리라서 1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밤을 꼬박 새웠던 나는 지하철에서 잠이 들었고 해운대에 다 와갈 때쯤 겨우 깨서 해운대를 보러 갔다.
나는 마산에서 나고 자라서 친가는 마산, 외가는 부산이라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물을 봐야 생각이 정리가 되고 마음이 진정되는 스타일이었다. 강이든 바다든 하다못해 인공적으로 조성된 호수라 할지라도 어딘가 물이 고여있는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정리하는 게 일종의 힐링이었다. 이때는 물멍이라는 단어도 없었는데. 해운대에 도착한 후로는 근처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으로 출출함을 달래고 바다를 보며 잠시 멍을 때리다가 모래사장에 기계공학과를 쓰고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사상으로 가서 버스를 타고 집에 갔다. 금요일 밤에 집에 안 온다던 딸이 토요일 오전 10시쯤 집에 왔으니 부모님이 이것저것 물어볼 만도 했는데 그냥 잘 갔다 왔냐 한마디 하시고는 내가 멀쩡한 걸 보시고 평소처럼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지나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부산에 가서 바다를 본 다음에 찜질방이라도 가서 자려는 생각이 아니라, 처음부터 나는 밖에서 밤을 새울 생각으로 부산으로 향한거 였는데 참 겁이 없었구나 싶다. 결국 그렇게 내 처음이자 마지막 가출은 가출도 아닌 채로 마무리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