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죽을걸 그랬나?] #22. 소소한 일탈들

by 정별하

그렇다고 내가 학교에서 마냥 공부만 한 것은 아니다. 나도 나름의 일탈 아닌 일탈을 몇 번 해본 적이 있는데 한 번은 여름방학에 보충 수업이 끝나는 날까지 나가기로 한 진도를 다 나가면 이었나? 정확히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보충 수업 같은 반 친구들끼리 수박을 먹기로 선생님이랑 약속을 했었다.



진도를 다 나갔고 한 친구의 어머니께서 수박을 가져다주셨는데 문제는 수박을 썰 칼이 필요하다는 거였다. 교무실에 가봐도 조그마한 과도는 어딘가에서 나왔지만 수박을 썰 정도의 칼은 없었기 때문에 나는 친구들과 급식실로 향했고 아주머니에게 수박을 먹으려고 하는데 칼을 좀 빌려줄 수 있냐고 여쭤보았다. 아주머니는 조심해서 쓰라고 칼을 빌려주셨고 수박 퍼먹을 숟가락도 가져가라며 몇 개 챙겨주셨다.



칼을 받아 들고 다시 교실로 가는데 공교롭게도 유난히 그 쉬는 시간 따라 복도에 사람이 많았다. 학교에 칼을 들고 지나가니 다 나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처음에는 손에 칼을 쥐고 걸어가다가 아무리 생각해도 포즈가 너무 이상해서 상대방을 공격할 의사가 없다는 걸 어필하기 위해 칼날을 내쪽으로 향하게 해서 손잡이가 아닌 칼등을 들고 걸어갔다.



그것 또한 모양새가 상당히 웃겼는데 나는 중학생 때부터 같은 학교를 나온 친구들도 많았고 1학년때부터 반장도 하고 있었고 성적도 전교권이고 여러모로 나를 알아보는 친구들이 많았는데 그날은 뭔가 창피해서 후다닥 복도를 지나갔던 기억이 있다.



다행히 무사히 교실에 도착해서 수박을 자르고 준비해 온 숟가락으로 다 같이 수박을 퍼먹었는데 그게 학교에서 먹었던 간식들 중에 제일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다 먹고는 얌전히 칼과 숟가락을 급식실에 다시 반납을 했고 그렇게 학교에서 수박 먹기는 끝이 났다.






나는 1학년 2학기때 반장, 2학년 1학기때 반장, 그리고 3학년때는 1년 동안 반장을 했었는데 또 다른 일은 2학년 1학기때 반장을 할 때의 일이다. 1학년 때 나랑 친했던 친구 중에 2학년이 되면서 서로 문과/이과가 갈려서 자주 못 보던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반장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방송으로 각반 반장들을 소집했을 때 만나고는 했는데, 하루는 야자가 시작하자마자 각반 반장들을 소집한 적이 있었다.



가서 전달받은 사항은 친구들에게 전달할 만한 안건은 아니었고 방과후 학교에 대한 반장들의 의견을 물어보는 일이었고 약 30분 정도 진행한 뒤에 해산이 되었다. 그 친구랑 나는 해산 후에 교실로 가는 길에 율무차 한잔만 먹고 들어가자며 자판기로 향했고 사이좋게 한잔씩 뽑아 앉아 오랜만에 만난 수다를 떨기 시작했다.



오랜만이라고 해봐야 본지 이틀 정도 지났을 땐데 그땐 하루에도 얼마나 일이 많고 친구들한테 할 말이 어쩜 그리 많았는지 앉은자리에서 두 시간을 떠들다가 야자가 끝나는 종이치고 나서야 교실로 들어갔다. 그 사이에 감독 선생님이 다녀간 듯도 보였지만 반장소집이 아직 안 끝났을 거라 생각하시고 그냥 넘어간 듯했다. 그래서 결국 그날 야자는 통재로 빠져버렸다.



그런가 하면 아예 어느 날은 야자를 처음부터 안 하겠다고 선언한 날도 있었는데, 당시의 담임선생님이랑은 중학교 1학년때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었고 물리과목을 선택하는 사람이 거의 없는 여고에서 물리를 선택한 학생이었기에 더 친하게 지내는 것도 있었다. 향간에는 나랑 그 선생님이 아빠랑 딸 아니냐는 어이없는 소문이 돌 정도로 막역한 사이었다. 나는 정 씨고 선생님은 김 씨였는데도 말이다. 아마 소문의 출처를 짐작해 보자면 학교 앞 국숫집에서 한번 같이 국수를 먹은 적이 있는데 그걸 누가 지나가다가 본거 아닐까? 어쨌든 그 정도로 친했기 때문에 유난히 야자를 하기 싫던 어느 날 저녁을 먹고 담임선생님을 찾아갔다.



가자마자 대뜸 오늘은 야자 하루만 빼주세요.라고 얘기했고 선생님은 잠시 나를 쳐다보시더니 알겠다고 하시고는 외출증을 끊어주셨다. 어차피 나는 기숙사에 살고 있었어서 야자가 끝나는 시간에 다시 기숙사로 들어와야 했지만 적어도 야자시간 동안은 나에게 자유가 생긴 셈이다. 친구들 여러 명이서 그날은 단체로 야자를 째고 근처에 있는 대학가에 놀러 가서 포켓볼을 쳤다. 다른 친구들은 각자의 방법으로 야자를 뺀 상태여서 우리는 이러나저러나 몰래 도망 나온 게 아니기 때문에 그날 하루만큼은 걱정하지 않고 잘 놀다가 들어왔다.



막상 적어놓고 보니 겨우 이 정도 가지고 일탈이라고 할만한가 싶긴 하지만 또 다른 일탈도 뒤에 나올 예정이니 나를 너무 공부만 열심히 했던 애로 생각해주지는 말았으면 한다. 당시에는 명확한 목적이 있고 이뤄야 하는 목표가 있는 상태로 일종의 사명감에 사로잡혀 공부에 집중을 했던 건 맞지만, 공부밖에 모르는 학생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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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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