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기숙사는 일요일 밤에 입사해서 금요일 밤에 퇴사를 반복하는 시스템이었다. 그러니까 매주 주말에는 좋든 싫든 무조건 집에 가야 하는 시스템이었다. 따로 세탁시설이 있지도 않아서 초기에는 금요일 밤마다 일주일치 빨래와 주말 동안 공부할 것들을 바리바리 싸들고 집을 오갔는데 문제는 내가 평일에 거의 하루 3,4시간 꼴로 자다 보니 주말에 집에 가기만 하면 너무 피곤한 나머지 잠을 너무 많이 잔다는 것이었다.
어느 정도였냐면 금요일 밤에 야자 끝나고 집에 가서 자기 시작하면 일요일 저녁에 다시 기숙사에 가야 할 때나 일어나는 일이 자꾸 반복되었다. 주말은 학교 수업이 없는 온전한 내 시간으로 평일에 하지 못했던 공부에 하루 종일 시간 투자를 해야 하는데 이건 뭐 하루 종일 자고 있으니 이것 또한 해결책을 찾아야 했다. 등교라는 강제성이 없는 데다가 우리 부모님은 중학생 때부터 밤늦게까지 내가 공부를 하고 있으면 적당히 하고 자라고 건강을 더 중시하면서 오히려 나를 말리는 스타일이었기 때문에 이틀을 내내 잠만 자도 나를 깨우지를 않았다.
게다가 그때가 시기적으로 21번에 적었던 사건과 맞물리면서 나는 더욱더 공부를 할 의지가 충만해졌고 누구에게도 밀리지 않는 전교 1등이 되고 싶었다. 주말을 그렇게 날려버려서는 전교 1등이 절대 될 수 없었다. 특단의 조치를 내리기로 생각한 나는 그 당시 친구 중에 공부를 유달리 열심히 하는 친구에게 이 부분에 대한 고민을 토로했다. 이 친구도 같이 기숙사 생활을 하던 친구 중에 한 명이었는데 자기도 주말에 생각보다 공부를 많이 못하고 와서 속상하다고 공감을 했다.
이 친구랑 나랑은 2학년이 되면서 이과 영재반에 같이 편성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야자를 원래 교실에서 하지 않고 별도의 건물에 마련된 영재반 건물에서 했었다. 그리고 이 건물은 우리가 10시에 야자를 마치고 집에 가면 경비아저씨가 10시 10분쯤 와서 사람이 다 나갔는지 확인을 하고 문을 잠구는 곳이었다. 주말에는 모든 학생들에게 자습실로 개방이 되는 건물이었기 때문에 토요일 아침 7시쯤이 되면 경비아저씨가 다시 문을 열러 오신다.
우선 우리는 그 문이 안에서 열리는지를 확인했다. 경비아저씨가 열쇠로 문을 잠그고 난 뒤에도 문 위에 있는 잠금장치를 안에서 열면 나갈 수가 있었고 다시 들어와서 닫아놓으면 감쪽같았다. 그리고 경비아저씨는 교실에 불이 꺼져있으면 복도에서 교실창문을 바깥에서만 슥-보고 가시기 때문에 책상 밑에 숨어서 불을 끄고 있으면 모르실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우리는 먼저 몰래 불을 켤 용도로 스탠드를 구비하고, 각자 금요일에 기숙사에서 나올 때 베개와 담요를 챙겨 나와서 그 교실에서 의자끼리 3개 정도를 서로 이어 붙여서 그 위에서 몰래 잠을 자기로 결심을 했다. 처음 몇 번 시도로 경비아저씨의 패턴을 익힌 뒤에는 경비아저씨가 문을 열어주는 타이밍에 맞춰 이른 아침에 몰래 화장실에 가서 머리를 감은 후에 챙겨 온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고 엄청 일찍부터 공부하러 온 척 앉아서 공부를 했다.
우리가 그러고 있으면 진짜로 집에서 자고 아침 7시 즈음에 일찍 온 다른 친구들이 와서 "너네 벌써 와있었어?!" 하면서 놀랄 때는 그 친구랑 서로 눈빛을 교환하면서 씩-웃는 것에서 묘한 스릴과 쾌감까지도 느껴졌었다. 나는 이걸 부모님한테 말씀드려서 허락을 받았기 때문에 고1에서 고2로 올라가는 겨울방학 동안 거의 2달을 이렇게 학교에서 합숙 아닌 합숙을 했다.
나중에는 다른 영재반 친구들한테도 얘기해 줘서 한두 명이 같이 동참한 적도 있었는데 의자에서 자는 게 너무 불편하다고 한번 하고는 대부분 하지 않았다. 나랑 이 친구는 이 합숙 덕분인지 원래 이틀을 다 날리던 주말 중에 금요일 밤에 경비아저씨 가고 나서 자기 전에 3시간 정도랑 토요일 저녁에 집에 가기 전까지 12시간 정도는 적어도 공부를 하고 집에 가니까 공부시간이 늘어서 둘 다 성적이 많이 오를 수 있었다.
그래서 1학년때는 전교 20등 정도 하던 성적을 2학년이 되면서부터 이과에서 4등 안에 들게 올릴 수 있었고 그 상승세를 쭉 유지해서 마침내 고등학교 3학년 1학기 때는 한 과목을 제외하고 모든 과목 1등급을 받으며 압도적으로 전교 1등을 차지하게 된다.
우리 학교는 여고이기 때문에 이과의 학생수가 적어서 어떤 과목은 내신 1등급을 받으려면 정말 1등 딱 한 명만 1등급이 되는 인원수가 나오기도 했다. 30명 남짓이어서 4%가 1.2명에서 끝나기 때문이다. 나는 그런 과목들까지 모조리 1등급을 받아냈다. 중간고사 100점, 수행평가 100점, 기말고사 100점으로 등수를 볼 것도 없이 1등을 한 적도 있었고, 나는 수능에서 물리, 생물을 칠 예정이었음에도 화학을 칠 애들을 제치고 화학에서도 1등을 하기도 했다.
나중에야 졸업을 하고 나서 엄마가 우리 학교 선생님인 친구가 있어서 그때 얘기를 했더니 선생님들이 모를 줄 알았냐고 다 알고 있었는데 나쁜 짓하는 것도 아니고 공부한다니까 그냥 둔 거라는 말을 듣고 감쪽같이 속였다고 생각한 우리의 혹한기훈련은 끝이 났다. 비록 비밀엄폐에는 실패했지만 성적은 많이 올릴 수 있었으니 성공적이었다. 살면서 이때가 제일 열심히 산 때가 아닌가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