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집 근처에 있는 일반계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집이랑은 대략 걸어서 15분 정도의 거리였다. 가는 길이 대부분 오르막이라 아침마다 힘들기도 했고, 무엇보다 집에서는 온전히 집중해서 공부하기가 어려워서 나는 기숙사에 살기로 결심을 했다.
당시 부모님께서는 집도 가까운데 뭐 하러 돈 내고 기숙사에서 다니냐고 했지만 나는 학원을 안 다니는 대신 공부환경 조성을 위해 필요성을 설득했고 결국 1학년 2학기부터 졸업할 때까지 쭉 기숙사 생활을 하게 되었다.
우리 학교에는 총 3개의 기숙사가 있었는데 1, 2학년들이 쓰는 데레사관, 2, 3학년이 쓰는 향학관, 그리고 성적이 높은 순으로 1학년 2명, 2학년 2명, 3학년 4명 총 8명만 사는 월계관이 있었다. 나는 1학년때는 데레사관에 살다가 2학년이 되면서부터 성적이 올라 월계관에 가게 되었다.
내가 데레사관에 살 때의 일이다. 건물이 지어진 순서도 순서대로 데레사관, 향학관, 월계관이었기에 데레사관이 가장 낡고 오래된 기숙사였다. 총 3층 구조로 되어있고 1층, 지하 1층, 지하 2층 이렇게 3개의 층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지하 2층에는 사용하지 않는 방과 컴퓨터실이 있었는데 그 방을 사용하지 않게 된 이유가 거기서 어떤 언니가 자살을 한 이후로 귀신이 출몰한다는 소문이 생겨서라는 걸 들은 후로는 컴퓨터실에 갈 때마다 무서워서 후다닥 도망치듯 컴퓨터실 계단을 올라왔던 기억이 있다.
기숙사 생활을 시작한 후로는 나는 추가로 기숙사비가 들어가는 만큼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기숙사 생활에는 기숙사비뿐만 아니라 원래는 먹지 않던 아침급식비까지 포함이 되었는데 아침급식은 점심, 저녁에 비해 사람 수가 적기 때문에 단가가 높았다. 결과적으로 안내도 되는 돈이었던 기숙사비와 아침 급식비가 나로 인해 더 나가게 된 것이니 그만큼 더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기숙사 자습실에는 야간에 소등시간이 새벽 2시로 정해져 있었다. 당시 늦게까지 공부를 하고 잠을 조금만 자던 나는 새벽 2시가 되어도 더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처음에는 어쩔 수 없이 2시에 맞춰 자러 들어갔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공부시간을 확보할 방법을 찾기 시작했다. 그 무렵 같은 방을 쓰던 친구들 3명이 있었는데 그 친구들한테 이런 얘기를 했더니 자기들도 2시에 자는 게 가끔 아쉬울 때가 있다면서 방에서 몰래 공부를 더 하다가 자자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다.
당시 기숙사는 2시 이후로 방에서 안 자고 핸드폰을 하는 애들이 있을까 봐 사감선생님이 불시적으로 방문을 열어보고 가는 일도 있었기 대문에 몰래 공부를 하더라도 사감선생님이 계단을 내려오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으면 후다닥 다시 자는 척을 해야 했다. 우리는 방 밖으로 불빛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불을 켜는 게 아니라 책을 읽을 때 쓰는 불빛이 켜지는 책 크기의 전등을 이용해서 문제집을 풀거나 하는 식으로 공부를 했다. 하지만 이 방법은 공부에 열중하느라 발소리를 못 들어서 몇 번 들키게 된 뒤로 쓸 수 없게 되었고 그다음부터는 나는 혼자서 화장실에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화장실의 장점은 하다가 걸려도 볼일을 보고 있었던 척하면서 자연스럽게 다시 방으로 들어갈 수 있다는 점이다. 하지만 단점은 살짝 무섭다는 것이다. 지금보다 겁이 많았던 고등학생 시절, 특히나 나는 귀신들을 무서워했기 때문에 혼자 화장실에 있다 보면 가끔 무서운 기분이 들기도 해서 그럴 때는 그냥 들어가서 자기도 했다.
물론 나도 매일매일을 그렇게까지 열심히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 방에서 몰래 공부하는 거나 화장실에서 몰래 공부했던 때는 시험기간에 하나라도 더 봐야 하는데 어쩔 수 없이 자야 했을 때 선택한 방법이었고 시험기간이 아닐 때는 나도 주로 2시에 맞춰서 자려고 노력을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땐 참 간절했구나 싶다. 그렇게 몰래 공부를 할 정도로 공부에 열성적이었다니. 신기한 일이다. 기숙사에서 몰래 공부를 하는 것에 이어 내가 공부를 하려고 했던 또 다른 일이 있는데 그건 다음장에 이어진다.